[밥상과 책상사이] 입시철 斷想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12-11 08:01  |  수정 2017-12-11 08:01  |  발행일 2017-12-11 제19면
[밥상과 책상사이] 입시철 斷想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반에서 늘 1등 하던 아이입니다. 중3 겨울 방학 때 갑자기 남편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까지 저와 아이들은 궁하지 않게 살았습니다. 제가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아이들 기죽지 않게 키우려고 발버둥쳤지만 결국은 소용이 없었네요. 부모 지원 풍족하게 받는 아이들이 아무 걱정 없이 공부에만 전념하는 것을 보며 아이는 힘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공부를 해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고, 수학은 갈수록 어려워진다며 모든 면에서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선생님, 형편이 어려워지면 머리도 잘 안 돌아가나 봅니다. 내신 관리 제대로 못했으니 교과전형으로는 갈 데가 없고, 학종으로 몇 군데 내봤지만 미리 준비하고 투자한 것이 없으니 합격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요.

#아이 아빠는 마흔 중반에 조기퇴직 당하고 아직 제대로 된 일자리를 못 찾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저런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제가 고생하는 것은 괜찮은데 부모의 무능력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밀어주지 못한 게 미안합니다. 여름에 수시 준비를 할 때, 다른 아이들은 여기저기 컨설팅 같은 것을 받으며 자기소개서를 잘 작성했겠지요. 우리 아이는 형편 안 된다며 모든 것을 본인이 직접 썼습니다. 그러니 돈 주고 도움 받은 아이들과 어떻게 비교가 되겠습니까.

학생부종합전형이 처음 도입될 때 우리 교육 현실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 제도가 계층이동의 통로를 막는 역기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예고했다. 일부 사람들은 학종이 가진 자들에겐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악용되고, 가지지 못한 자들에겐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절망감만 부추기는 그림의 떡이라고 말한다.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데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제도는 원점에서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교육이 가장 공정하고 확실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다. 지금이라도 교육당국과 대학은 예측 가능한 기준을 제시하고 평가 과정의 투명성에 대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정성적 평가에 대한 수험생, 학부모의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013년 8월 미국과 영국의 과학자들은 ‘경제적 궁핍은 사고능력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인도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궁핍한 시기인 사탕수수 수확 직전과 비교적 풍요로운 시기인 수확 직후의 지능지수(IQ)는 최대 13포인트까지 차이가 난다고 발표했다. 경제적 궁핍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계산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정상적인 사고력까지 저해한다고 그들은 설명했다. 가난으로 인한 생활고는 두뇌 회전의 속도를 낮추고 사람의 시야까지 좁게 한다는 것이다. 무항산 무항심(無抗産 無抗心), 경제적으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과 제대로 된 마음의 안정을 누리기 어렵다는 말이다. 맹자 양혜왕 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가 유난히 와닿는 요즘이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시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