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등에 탈 것인가 먹힐 것인가 <끝>] 그레이트 중국 등장 예고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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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12   |  발행일 2017-12-12 제6면   |  수정 2017-12-12
위안화 국제화, 10년내 세계 GDP 20% 차지…中 팍스 시니카 꿈
2017121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소프트 파워’(문화적 영향력) 난국에 빠져들고 있는 사이 ‘팍스 시니카’(Pax Sinica·중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달 필리핀 드라 살레 대학의 리처드 헤이다리안 교수는 “미국은 여전히 상당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무역과 투자라는 핵심적인 대결에서는 힘을 잃고 있다”면서 “중국이 세계화와 다자 외교의 수호자로 떠올랐다”고 주장했다. 국내 전문가들 역시 중국이 이미 ‘투키디데스의 함정’에서 벗어났다며 그레이트 중국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급부상한 신흥 강대국이 기존 강대국 위주의 세력 판도를 뒤흔들면 양측이 무력충돌로 치닫게 된다는 의미다.

위안화 3분기 무역결제 규모 3조
거래센터 서울 등 15개국 설립
세계 기축통화화 시도 이어져
첨단산업에 막대한 예산 투자
우주개발·4차산업서도 앞서가


◆투키디데스 함정에서 벗어난 중국

1980년대 일본·독일과의 무역에서 큰 손해를 보고 있던 미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엔화와 마르크화의 가치를 높이고 달러화 가치를 낮추기로 각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과 합의한다. 이른바 ‘플라자 합의’다.

이 합의로 엔화는 1달러당 120엔대까지 올라간다. 엔화 가치가 100% 정도 상승한 것으로, 일본 상품의 가격이 세계시장에서 두 배나 오르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플라자 합의에 참여했던 일본 관료는 “머리에 총을 들이대지 않았을 뿐”이라며 미국의 횡포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이후 일본은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장기 불황의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미국은 플라자 합의를 빌미로 엔화를 절상시켜 일본을 20년간 죽여놓았고, 중국이 부상하자 워싱턴은 세계무역기구(WTO)와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해 베이징을 견제했지만, 중국은 투키디데스 함정을 벗어났다. 중국 GDP(국내총생산)가 미국의 61%까지 올라갔다”고 주장했다. .

이뿐만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중국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미국은 25%에서 22%로 하락한 반면, 중국은 6%에서 13% 정도로 2배 이상 커졌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고경영자인 니콜라스 아구진은 “기업 혁신 등에 힘입어 10년 이내에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4분의 1을 중국 기업이 차지하고, 10년 내 중국 경제가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상하는 위안화

세계적 리서치 회사인 게이브칼의 루이-빈센트 게이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일(현지시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등은 중국이 수입하는 원자재 가격을 떨어뜨리고 중국의 완제품 수출을 늘리는 것이 목적이며, 이 통로를 지키기 위해 해군과 공군도 투입될 것”이라며 “시 주석이 구상한 제국은 위안화를 세계 기축통화 및 교역 통화로 만들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따라서 향후 위안화가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실제 시진핑 집권 이후 위안화의 국제화에 주력하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위안화 무역결제 규모는 2010년 3분기 1천264억위안에서 올해 3분기에는 3조위안을 넘어섰다. 위안화 거래센터도 2003년 홍콩을 시작으로 프랑크푸르트, 파리, 토론토, 서울 등 15개국 주요 도시에 설립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이후 28개국과 3조1천592억위안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위안화 거래 여건 개선은 물론 국제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지난해 1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과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도 위안화 결제가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 ‘브릭스판 세계은행’인 신개발은행(NDB)의 준비통화도 위안화를 기본으로 하고자 합의했다.

장리칭 중국 중앙재경대 교수는 “중국이 지금처럼 한 걸음 한 걸음씩 신중하게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해 나간다면 늦어도 20년 안에 위안화는 주요 국제통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프로젝트가 단기적인 도전을 받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위안화의 기축통화 등극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세계시장 흔드는 차이나 머니

중국 자본의 세계적 영향력 또한 커지고 있다. 중국이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에서부터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돈을 투자하며 세계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작년 차이나 머니가 미국에서 사들인 자동차부품업체는 모두 7개사 16억달러 상당으로 2014년 기록했던 사상 최고치를 넘어섰다.

또 2013년 중국의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는 미국의 전자상거래업체 ‘숍러너’(Shoprunner)를 약 2천억원에 인수했고, 인터넷 서비스 및 게임 서비스 전문 기업인 텐센트의 경우 지난해 핀란드 게임개발사 ‘슈퍼셀’의 지분 84%를 86억달러에 인수했다.

중국은 우주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2014년 기준 중국의 우주개발 예산은 45억6천900만달러로 미국(347억4천200만달러)과 러시아(87억2천800만달러)에 이어 세계 3위에 달한다.

더구나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대부분 우주개발 국가들의 관련 예산이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에 반해 중국은 매년 5억달러가량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우주 굴기에 나서는 이유가 국방력 강화에 있다고 본다. 우주 발사체는 곧 미사일이기 때문이다.

산업에 미치는 파급 효과도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주개발의 경제적 효과는 투입 비용 대비 직접 효과가 1.75~3.4배, 간접 효과는 4배 이상에 이른다. 최근 연평균 성장률이 6%대로 가라앉고 있는 중국 경제에 우주산업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전략이다. 중국 궈진 증권은 최근 중국의 우주항공산업 규모가 2020년에 134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밖에 중국은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도 미국과 패권을 다투며 리딩 국가의 위치에 올랐다. 장병규 청와대 4차산업혁명 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의 전장에서 가장 두려운 상대는 중국”이라며 “5년 전까지는 우리가 나은 영역이 있었지만 이젠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AI) 모두 한참 앞섰고 미국도 중국을 따라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중국의 부상은 한국에는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이 잘살았을 때 한국도 잘살았다. 중국이 발전할 때 최대 수혜국은 한국이었다”며 “중국이란 용에 올라탈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율곡이 일본에 대항하려면 10만명을 길러야 한다고 했지만 13억 중국을 이기려면 중국통 100만명은 길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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