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감염불감증

  • 조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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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12   |  발행일 2017-12-12 제30면   |  수정 2017-12-12
[취재수첩] 감염불감증
조규덕기자<경북부/구미>

얼마 전 승용차를 몰고 구미 형곡동의 C대학병원 근처를 지나는 길이었다.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길가에 차를 세운 순간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한 의사가 하늘색 수술복과 흰색 가운을 입은 채 한 손에는 커피잔을 들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목에는 통상 수술실에서나 볼 수 있는 마스크가 걸쳐 있었다. 이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뒤따라오는 여직원과 웃으며 이야기도 나눴다.

의료진은 늘 병원균에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그의 옷차림은 일반인의 상식과 거리가 있었다. 순간 2015년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했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떠올랐다. 당시 병원 안팎에서는 감염 예방이 화두였다. 하지만 2년이 흐른 지금 C대학병원에서는 ‘감염불감증’이 여전했다.

기자는 가던 길을 멈추고 조금 더 지켜봤다. 5분 정도 지났을까. 근무복을 입은 여자 간호사와 흰색 가운을 입은 의료진을 잇따라 목격했다. 주변 한 상인은 “의사나 간호사들이 진료할 때 입는 옷을 입고 거리를 다니는 것을 자주 본다”며 “옷에 각종 병원균이 묻어 있을 가능성도 있는데 저렇게 다녀도 되냐”며 되물었다.

C대학병원의 감염불감증은 병원 내부에서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지난 3월부터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 이 병원은 곳곳에 환자 면회를 통제한다는 안내문을 커다랗게 붙여 놓았다. 보호자와 면회객의 출입을 제한하고 병원 간호인력이 24시간 간호·간병 서비스를 해 외부 감염병 유입의 위험을 줄이기 위함이다. 안내문에는 병동은 월~토요일 오후 6시, 일요일과 공휴일 오전 10시와 오후 6시에만 면회가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면회 가능 시간도 최대 2시간이다.

하지만 안내문 내용과는 달리 해당 병동에서 보호자와 면회객의 출입을 통제하는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다. 병동 상황을 확인하는 스테이션에 간호인력이 있었지만 출입을 통제하지는 않았다. 규정과 달리 면회객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병동을 드나들 수 있었다. 병실 안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규정상 면회가 불가능한 시간임에도 병실에는 가족 또는 면회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환자와 가족은 C병원의 안전불감증을 곧바로 지적했다. 환자 A씨는 “면회객 등을 통제해 감염병 유입을 차단하는 줄 알고 (이 병원으로) 왔는데 일반 병동과 똑같다”며 “메르스 때 대부분 환자가 병원 내 감염으로 전파된 사실을 벌써 잊은 것 같다”고 말했다.

C대학병원은 한 해 수십만명이 찾는 구미지역 최대 의료기관 중 하나다. 이 병원은 지난 2월 보건복지부로부터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돼 중증 응급환자의 최종 치료기관이자 재난거점 병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C대학병원에 거는 구미시민의 기대가 컸기에 이번 안전불감증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다가왔다.

기사가 나가자 구미시보건소는 구미지역 전체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병원 감염관리에 대한 지도·점검에 나섰다. C대학병원도 직원이 수술복이나 근무복을 입고 외출하는 것을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알려왔다. 감염병에 대한 안전불감증은 의료기관의 영원한 과제인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환자와 가족에게 신뢰받는 종합병원으로 탈바꿈하길 기대한다. 조규덕기자<경북부/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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