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새마을과 원전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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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15   |  발행일 2017-12-15 제23면   |  수정 2017-12-15
[조정래 칼럼] 새마을과 원전

영남대 박정희새마을연구원이 올 한해 개점휴업 상태였다. 내년 사업도 기약하기 어렵다. 핵심 요원인 상근 연구원들이 대부분 연구원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이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후폭풍으로 느닷없는 유탄을 맞은 여파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새마을운동이 적폐로 몰렸다. 정부의 무상원조를 전담하는 외교부 산하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새마을’이란 이름이 붙은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중단하거나 그 명칭을 빼기로 했다. 지방정부도 이러한 시류에 편승해 현 정권의 눈치를 보기 십상이다.

원전 역시 문재인정부의 탈원전정책의 직격탄을 맞았다. 원전의 절반이 위치해 있는 경북은 졸지에 ‘원전의 메카’에서 기피·위험 시설의 본고장으로 전락했다. 신고리 5·6호기는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대로 건설을 재개하게 됐지만 울진 신한울 3·4호기와 영덕 천지 1·2호기 건설계획은 백지화됐다. 문재인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발판 삼아 오히려 탈원전 정책에 가속도를 냈다. 원전 찬성론자들은 이를 두고 ‘살을 받고 뼈를 내줬다’고 자탄했다. 울진과 영덕 등 원전건설 예정지역과 주민들은 경기침체, 재산권 침해 등으로 인한 엄청난 불이익을 감내해야 한다.

대구경북이 문재인정부 들어 야심차게 추진되고 있는 각종 정책의 타깃이 됐다. 새정부가 박근혜의 텃밭을 겨냥했거나 정조준을 한 건 아님이 분명하다. 경위와 과정에 의도가 없었다 한들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됐으니 문재인정부를 향한 TK 민심이 고울 리는 없다. 중앙정부의 부당한 지시와 시민단체의 불합리한 요구에는 ‘노(No)’ 하는 게 민심에 순응하는 미래지향적 자세다. 새마을이든 원전이든 도매금으로 폄하·폄훼돼선 안된다. 국내에서 찬밥 신세인 새을운동과 원전기술이 해외에서는 세계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다.

죽어가던 새마을운동이 기사회생하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지난달 필리핀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아웅산수지 등 각국 정상들에게서 한국이 자국의 새마을운동을 도와줘 고맙다는 인사를 듣고 난 후 “지난 정부 사업이라도 성과가 있다면 발전시키라”고 지시했다. ‘새마을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이는 새마을운동과는 다른 원조사업이긴 하지만 어쨌든 새마을에 부정적 인식을 일신하는 계기는 됐다. 원전 비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최근 영국 무어사이드 원자력발전소 사업권 인수를 위한 배타적 협상권을 확보했다.

새마을운동과 원전 ‘다시, 제대로’ 보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들이 공과 구분없이 자행돼 온 ‘전 정권 지우기’의 희생양이 돼선 곤란하다. 새마을운동이 국내에선 소외계층 돌봄, 한 자녀 더 갖기 운동, 친환경 가꾸기 등 공동체운동으로 명맥을 유지해오는 수준이지만 해외에선 대한민국 명품 브랜드로 통한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 70여개 개도국들은 새마을운동을 배우고 성장 모델로 채택하고 있다. 코이카 원조는 다른 나라도 다 하니까 차별성이 없지만 새마을운동은 어느 나라도 흉내낼 수 없는 ‘언터처블’ 대한민국의 최고 브랜드이자 ‘학문 수출 1호’이기도 하다. 필리핀 엔드런(Endern) 대학은 새마을 경제개발학과를 설치하고 있고, 새마을운동 기록물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유산이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공과 논쟁은 있을 수 있고 오히려 많을수록 좋다. 개도국의 눈높이에 의하면 새마을운동만큼 가성비 높은 원조수단은 없다. 가난과 기아, 그리고 질병에서 해방만 시켜주면 됐지 관변의 냄새가 나든 전체주의의 뉘앙스가 풍기든 그게 뭐 대수일 것인가. 조금 살게 됐다고 ‘과거는 모른다’ 하는 건 어려웠던 시절, 아비어미의 빠진 뼛골은 송두리째 잊은 채 제 잘난 양 배를 두드리고 있는 어린 아해들의 배은망덕이다.

새마을운동 중단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무덤에 침을 뱉는 게 아니라 누워서 제 얼굴에 침을 뱉는 어리석음이다. 새마을운동과 원전기술은 첨단 반도체와 비견되는 수출용 ‘킬러 콘텐츠’다. 정부는 물론 시민단체도 자해적 딴죽걸기를 당장 멈춰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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