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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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15   |  발행일 2017-12-15 제37면   |  수정 2018-06-15
세계에서 가장 큰 거울 위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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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우유니 소금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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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해가 떠오르는 우유니의 일출이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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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 강한 선인장들을 만날 수 있는 잉카와시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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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된 열차가 버려져 있는 기차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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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 국립공원의 ‘돌나무’.

우유니로 가는 길은 간단치 않다. 볼리비아 최대의 도시 라파스로부터 남쪽으로 불과 200㎞ 떨어져 있지만 장장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안데스 산맥의 해발 3천653m 알티플라노 고원에 얹혀 있는 데다 굽이 길에 비포장 도로투성이니 그럴 만도 하다. 또 우유니 사막은 여행사 투어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짧게는 한나절에서 길게는 3박4일 정도의 투어가 일반적이며, 7명 정원의 지프 차량을 이용한다. 지프의 운전사는 가이드 겸 요리사로서 전 일정의 숙식을 책임진다. 나는 다음 일정이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이었기 때문에 우유니에서 출발하여 칠레로 가는 2박3일 투어를 예약하였다.

오후 8시, 라파스에서 우유니 행 저녁 버스를 탔다. 하루를 온전히 버스에서 자야했으므로 편안 복장에 일찌감치 안대를 두르고 잠을 청했다. 오전 6시쯤 우유니에 도착하여 사막에서 구할 수 없는 각종 생필품을 쇼핑하고 길거리 음식으로 아침을 때운 후 본격적인 투어에 나섰다.

안데스 산맥 해발 3653m 고원에 위치
2만년 前 지각변동으로 솟아오른 바다
빙하기 거치며 건·우기 사막·호수‘변신’

우기가 갓 끝난 4월 초 호수·사막 공존
까마득히 펼쳐진 땅·하늘의 데칼코마니
낙조 땐 온통 붉게 물들며 또다시 하나
밤이면 땅에 다소곳이 내려앉는 별 장관
소금호텔은 건물·의자·침대까지 소금


우유니 사막은 소금이 모래처럼 뒤덮인 소금사막 지대와 야생동물 보호구역인 국립공원 지역으로 양분할 수 있다. 소금사막 지대는 건기에만 사막이 되고 우기에는 소금호수가 되어 세계에서 가장 큰 거울로 변하는 곳이다. 이곳은 2만 년 전에 지각변동으로 솟아올랐던 바다가 빙하기를 거쳐 거대한 호수가 되었고, 이후 건조한 기후 때문에 물은 모두 증발하고 소금 결정만 남아 형성된 곳이다. 소금 총량은 최소 100억t으로 추산되며, 두께도 얕게는 몇 십 m에서 깊게는 120m나 된다고 한다. 또 국립공원 지역은 빙하성 퇴적물로 형성된 구릉과 화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호수와 야생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먼저 소금사막 지대로 향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우유니 마을에서 멀지 않은 ‘기차무덤’이었다. 1950년대에 운행하던 기차들을 폐기한 곳인데, 고스란히 녹을 뒤집어쓴 기차와 지평선을 향해 뻗어있는 철로가 오랜 세월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 같아서 안쓰럽고 쓸쓸하다. 근처의 콜차니 마을은 원래 소금을 채취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지금은 기념품을 판매하는 작은 가게들이 늘어서서 관광마을처럼 변했지만 여전히 이 마을의 주요 산업은 소금 채취와 가공이다.

콜차니 마을을 벗어나 조금 달리다 보니 차츰 먼지바람이 잦아들고 땅의 색깔도 하얗게 변해 갔다. 파란 하늘 끝으로 펼쳐진 하얀 도화지! 소금 위를 미끄러지는 자동차의 바퀴소리와 일행들의 감탄소리만이 메아리도 없이 소금밭 위로 떨어졌다. 차에서 내려 직접 소금을 밟으니 육각형의 소금 결정과 거기에 반사된 햇빛이 만들어내는 순백의 천지가 나의 온 감각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시커먼 피부 때문에 눈동자가 더욱 형형해보이던 현지 가이드 겸 기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우리를 물이 고인 곳으로 안내했다. 우기가 갓 끝난 4월 초의 이 광활한 사막에서 우리는 사막과 호수를 다 맛보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발등을 겨우 덮을 만큼의 물이 까마득히 펼쳐져 소금호수를 만들고 있는 곳이었다. 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았다. 나 아닌 나도 거꾸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엄청난 데칼코마니라니. 소금 입자가 가하는 고통과 높은 해발이 만들어내는 추위에도 한동안 맨발로 첨벙거리며 감탄의 의식을 펼쳤다.

의외로 나를 깨운 감각은 허기였다. 시간은 벌써 오후 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점심을 위해 들른 곳은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소금호텔이었다. 지금은 휴게소로 이용되는데, 건물은 물론 테이블과 의자, 침대까지 거의 모든 인테리어를 소금을 이용해 만들었다.

호텔 앞에는 각 나라의 여행자들이 직접 달아 놓은 다양한 국기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우리의 태극기도 그 속에서 힘차게 날리고 있다. 그 앞의 이색적인 탑은 죽음의 자동차 경주로 불리는 ‘다카르 랠리’가 이곳에서 개최되고 있음을 알리는 기념비였다. 모두가 길이지만 어떤 길도 없는 이곳에서 벌이는 경주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조금 높은 저 잉카와시 섬에 오르면 길이 보일까? ‘섬’이라고 불리지만 물이 없는 지금은 선인장 언덕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소금 더미 속에서 용케도 뿌리를 내린 선인장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몇 백 년 동안이나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거대한 선인장 군락을 보며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어느새 꼭대기에 이르렀다. 눈 내린 호수처럼 새하얀 지평선이 내 눈길을 붙잡으며 복잡한 생각들을 내려 주었다.

숙소로 가는 도중 햇빛이 순해지기 시작하였다. 우유니의 낙조였다. 소금과 하늘을 구분 짓는 하얀색과 푸른색 사이로 붉은 물감이 풀리 듯 함께 물들어갔다. 그렇게 해는 하늘에서도 지고 땅에서도 져갔다. 그 속에서 나도 온통 붉게 물들며 하늘과 땅과 내가 하나임을, 동등한 존재임을 확인하였다. 물아일체(物我一體)라는 말이 적절치 않다 해도 다른 말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해가 저물고 별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 때쯤에야 숙소에 도착했다. 역시 소금 벽돌로 지은 소금호텔이었다. 침대나 탁자, 의자는 물론 바닥도 모두 소금을 깔아놓았다. 기사들이 준비한 저녁을 먹고 우리는 다시 별빛 투어를 나갔다. 반달이 떠 있는 사막의 하늘에는 숨어 있는 별들이 더 많았지만 달빛에 적셔 별빛을 칠한 소금 도화지는 기이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물이 고인 곳곳에는 다소곳이 별도 내려앉아 있었다. 그렇다. 우유니에서의 별 감상법은 땅을 보아야 한다. 다음날 새벽의 일출 투어도 우유니의 하루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아니 어떻게 위대해지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온전히 24시간 동안 소금사막 지대에 머문 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구릉과 화산 지대로 옮겼다. 이곳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어서 더욱 아름다운 곳이었다. 흙먼지 날리는 거친 오프로드의 질주를 받아주는 넉넉한 곳이며, 비쿠냐나 야마 떼 같은 예기치 않은 생명체들이 물끄러미 사람 구경을 나오는 곳이다. 구름이 머무는 거대한 화산과 콜로라다(붉은), 베르데(녹색의), 블랑카(흰색의) 등의 이름을 단 여러 개의 호수와 그 위에 노니는 플라밍고 군락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호수마다 쌓인 침전물과 국지적으로 자생하는 조류(藻類)의 색깔이 이처럼 비현실적인 물빛을 만든 것이다.

화산으로 인해 생성된 거대한 기암괴석들도 이 지역의 볼거리이다. ‘살바도르 록(Salvador Rock)’이라는 별명답게 초현실주의 예술가인 살바도르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기기묘묘한 형상들은 자연이 만든 예술작품이다. 특히 나무의 형상을 꼭 닮아 돌나무로 불리는 괴석은 이름 그대로 사막에서 자라는 나무 같다.

해발 4천500m의 콜로라도 호수 부근에서 두 번째 밤을 보냈다. 다음날, 명징한 새벽하늘을 이고 더욱 낮게 내려앉은 별빛을 받으며 해발 5천m 가까운 오야게 활화산을 찾았다. 멀리서부터 화산 가스가 매캐한 유황냄새를 풍기며 솟구치고 있었고, 뜨거운 간헐천에서는 물안개가 피어났다. 특히 노상온천에 발을 담그고 떠오르는 해를 마주한 경험은 벅찬 감동이었다. 해가 오르면서 베르데 호수의 아름다운 물빛이 일렁였다. 그리고 서서히 해발 5천920m의 우뚝한 리칸카부르(Licancabur) 화산도 모습을 드러냈다. 꼭대기에 만년설을 이고 있는 모양새가 마치 흰 수염을 단 신령 같아서 절로 경외감이 들었다. 이 경외감은 투어의 마지막 시간, 볼리비아의 끝이자 칠레의 처음이라고 하는 국경까지 이어졌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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