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세 번째 살인·강철비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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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15   |  발행일 2017-12-15 제42면   |  수정 2017-12-29
하나 그리고 둘

세 번째 살인
법정에서는 진실을 좇는 이가 없다

20171215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영화를 좋아했던 관객에게 한 피고인을 둘러싼 진실 공방을 담은 ‘세 번째 살인’은 어둡고 무거운 작품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그 생소함을 극복하고 나면 영화는 의외로 어렵지 않다. 영화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관객들이 섣불리 답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고, 영화가 서사와 형식에 그 무게를 고스란히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자신이 다니던 공장 사장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미스미’(야쿠쇼 고지)의 변호를 맡는다. 시게모리의 아버지는 미스미가 30년 전 살인을 저질렀을 때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았던 판사다. 그는 사회가 범죄자를 양산한다고 믿었던 시절의 온정적 판결이 또 한 사람의 죽음을 만들어냈다고 씁쓸해한다. 그러나 공장 사장이 중한 범죄를 저질러온 사람이라는 증언이 나오고, 애초에 범행을 자백했던 미스미가 말을 번복하면서 변호인단은 혼란에 빠진다. 그들 사이에서도 중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죽어도 마땅하다’는 말과 ‘죽어도 마땅한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사무라이의 칼날처럼 첨예하게 맞부딪친다. 이것은 공장 사장과 미스미 모두에게 적용되는 논쟁이며, 일차적으로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의 입장을 대변한다. 또한 이러한 쟁점은 사회 제도의 합리성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법정에서는 진실을 좇는 이가 없다”라는 역설적 명제와 함께 심판 하는 사람과 심판 받는 사람이 과연 본질적으로 얼마나 다른 존재인가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인간의 생사가 걸려 있는 사안인데도 자주, 혹은 깊이 다뤄지지 않는 주제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머릿속에 두서없이 쌓여 간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구형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에게 그럴 권리를 준 것은 또 누구인가. 여기에는 오류가 없는가.


‘가족 영화의 대가’ 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신작
두 남자 얼굴이 접견실 칸막이에 겹쳐지는 장면 압권



이렇듯 대답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질문들이 쏟아지는 것은 대개 법정이 아니라 시게모리와 미스미가 대화하는 접견실에서다. 그리고 상대방의 이성과 감성을 헤집어 놓는 것은 늘 미스미 쪽이다. 그는 처음에는 범행 동기에 대해서, 나중에는 범행 자체에 대해서 말을 바꾸며 자신의 변호인을 당황시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미의 화술에 압도된 시게모리는 그를 끝까지 믿어주고자 노력한다. 재판 과정에서 시게모리는 미스미를 통해 한 인간으로서는 선과 악, 어느 쪽으로도 기울 수 있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성찰하고, 변호사로서는 직업윤리와 의무에 대해 재고하게 된다. 접견실 신들은 다양한 각도와 사이즈로 촬영되어 대화에 긴장감을 불어넣기도 하고 내용에 힘을 실어주기도 하는데, 마지막 접견실 신에서 투명한 칸막이에 시게모리와 미스미의 얼굴이 한 방향으로 겹쳐지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살인범과 변호인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 이 하나의 이미지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함축한다.

미스미가 정말 범인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둔다면 석연치 않은 결말이다. 관객들은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고민하기보다 자신이 믿는 것을 진실로 받아들여야만 영화를 마음 속에서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세 번째 살인’의, ‘세 번째 살인’이라는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5분)


강철비
남북문제를 현실적으로 다룬 작품

20171215

북한 내부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자 최정예요원인 ‘엄철우’(정우성)는 총상을 입어 의식불명이 된 국무위원장과 함께 남한으로 내려온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가 먼저 엄철우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일념 하에 함께 작전을 수행한다.

외신에서 연일 무겁게 다루는 북핵 문제와 위험성을 정작 우리 국민들은 일상에서 얼마나 실감하며 살고 있을까. 아마도 이러한 질문이 ‘강철비’(감독 양우석)의 시작점이었을 것이다. 극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북한 내부의 쿠데타와 선전 포고, 이에 따른 남한의 선제공격 등은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이를 주시하는 국제적 시선을 감안할 때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다. ‘강철비’는 먼저, 경기 지역과 바로 맞닿아 있는 북한의 존재를 부각시킴으로써 불감증을 지적하고, 북한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중국과 미국의 정보요원들을 등장시켜 핵전쟁이란 국지적 규모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또한 쿠데타의 원인이 되는 핵무기에 대한 북한 내부의 분열된 시각, 정권교체기에 있을 수 있는 신구정권 간의 갈등 등도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 시의성 있는 소재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강철비’의 의의는 이미 충분하다.


쿠데타 발생한 北-핵전쟁 임박한 南 ‘한반도’ 배경
정우성·곽도원 브로맨스급 연기 호흡…양우석 감독


그러나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에게 보다 보편적으로 어필할만한 영화의 강점은 ‘의형제’(감독 장훈, 2010),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 2013), ‘공조’(감독 김성훈, 2016) 등의 흥행이 입증해왔듯 각기 다른 이념과 문화를 가진 남북한 사람들이 만나 서서히 친해지면서 우정을 쌓아가는 부분일 것이다. 이름도 같은 곽철우와 엄철우가 한 차에 타고 가족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나 잔치국수(혹은 깽깽이 국수)를 먹는 장면은 전반적으로 건조한 영화의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준다.

곽철우, 엄철우 캐릭터는 새로울 것 없지만 이들로 분한 곽도원, 정우성 둘의 호흡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특히 평양 방언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거친 액션 신들까지 무리 없이 소화해낸 정우성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동시대에 가져야 할 바른 역사의식과 함께 비핵, 반전, 평화 등의 구호를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장르: 액션,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39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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