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감독 임대형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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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15   |  발행일 2017-12-15 제43면   |  수정 2017-12-18
“웃기면서도 쓸쓸한…흑백이 영화의 정서에 가장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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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이하 ‘메크모)는 임대형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평소 잠들기 전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의 단편영화들을 재생해 놓고 잠들곤 했다는 그는 “웃기면서도 쓸쓸한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메크모’를 통해 구체화시켰다. 시나리오는 2015년 7월에 시작해 5일 만에 완성했다. 이미 2014년 중년의 남자가 등장하는 단편 시나리오를 써놓았기에 가능했다.

‘메크모’는 암 선고를 받은 시골 이발사 모금산이 마지막일지도 모를 크리스마스를 생의 클라이맥스로 만들 계획을 세우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흑백영화의 영상미와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하헌진의 블루스 음악이 어우러져 독특한 정서와 감흥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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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한 장면

임대형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발견한 ‘신성’이다. 1986년생으로 단편 ‘레몬타임’(2013)으로 데뷔했다. 이후 단편 ‘만일의 세계’(2014)로 제13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올해 공개되는 가장 낭만적인 데뷔작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메크모’ 역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진흥기구(넷팩 NETPAC)상을 포함, 카를로비 바리, 프랑크푸르트, 부에노스 아이레스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30대 초반 신인감독의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빛나는 낭만적인 영화라는 점에 그들은 주목했다. 특히 흑백영화라는 형식적인 외피 안에 추억의 향기, 낭만의 온도, 빈티지의 질감이 배어 있는 영상과 스토리텔링을 담백하게 담아냈다.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부터 다가온 이미지가 흑백이었다”는 임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도, 프로덕션 과정에서도 ‘메크모’의 세계는 언제나 흑백으로 구성돼 있었다”고 말했다.


2013년 단편 ‘레몬타임’ 데뷔 후 BIFF의 샛별로
직접 닷새 만에 완성한 시나리오로 첫 장편 연출
시골 이발사 모금산이 삶의 끝에서 펼치는 얘기
흑백 영상과 블루스 음악 어우러져 독특한 감흥

“촬영지 고향 금산·배우들 마스크까지 흑백이 제격
관객이 캐릭터 대사·감정에 집중하도록 돕기도
흑백 무성영화 형식의 영화 속 영화 ‘사제 폭탄…’
블랙코미디의 미덕을 끌어올려준 이 영화의 방점”


미적인 이유가 그 첫 번째다. “‘메크모’의 촬영지였던 금산은 내 고향인데,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원색이 많았다. 조악한 간판들에 빨강과 초록이 난무했다. 그러한 색깔이 영화의 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그는 흑백이 관객으로 하여금 캐릭터들의 대사와 감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는 점과 모금산 역을 맡은 기주봉의 마스크가 흑백과 절묘하게 어울렸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현장에서 컬러와 흑백을 대조해가며 모니터링을 한 적이 있다. 모금산의 얼굴은 흑백에 있었다. 배우 기주봉 뿐만 아니라 고원희, 오정환 등 젊은 배우들의 마스크도 흑백과 잘 어울렸다.”

사실 캐스팅은 상업영화든 단편영화든 모든 제작 과정을 통틀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부분이다. ‘메크모’ 또한 이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특히 모금산 캐스팅이 난관이었다. 크랭크인 날짜를 채 한 달 남겨놓은 상황에서 제작팀은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평소 염두에 둔 배우 기주봉을 캐스팅하기로 뜻을 모았다. “기주봉 선생님 소속사에 시나리오를 보내고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당시 선생님이 공연을 하고 있던 대학로 극장에 시나리오와 편지를 들고 무작정 찾아가는 고전적인 수를 썼다.”

1977년 극단 76 창립단원으로 데뷔한 40년차 베테랑 배우와 데뷔 5년차 신인 감독의 만남. 연배 차이도 무려 31년이다.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기우였다. 선생님 앞에서는 나이가 중요치 않았다. 비록 내가 까마득한 후배지만 디렉션을 잘 믿고 따라 주셨고, 대사의 어미라든지 디테일까지 다 상의를 해주실 만큼 되레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메크모’는 임 감독이 직접 대본을 썼기 때문에 연출시 이점이 많았다. 때문에 배우들과의 의사소통은 편했다. “나는 대사가 음정과 박자를 가진 멜로디라고 생각한다. ‘메크모’에서는 특히나 대본에서부터 정해진 명확한 톤이 있었다. 물론 배우에게 그 톤을 강요하지 않았고, 대신 배우들과 리딩을 할 때부터 현장에서 디렉션을 하는 순간까지 매우 세세한 대화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저예산 독립영화 감독의 현실적인 고민과 갈등도 맞닥뜨려야 했다. 저예산 영화의 맹점은 저예산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충분치 않고 분초를 다투는 바쁜 일정이라는 점은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 감독뿐만 아니라 스태프 모두를 긴장하게 만든다. 하지만 ‘메크모’의 경우에는 그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우리 팀은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치열한 준비를 했다. 나는 감독으로서 매 신, 매 쇼트마다 테이크를 6번 이상 넘기지 않고 최선의 결과물을 뽑아내겠다고 결심했고, 대부분 그 결심을 지켜냈다.”

하지만 언제나 의외의 상황은 있는 법. 만제(유재명)의 치킨집에서 모금산과 자영(전여빈)이 다육 식물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신에선 테이크가 무려 26번째까지 진행됐다. 피로에 누적돼 있던 배우들은 반복되는 롱테이크에 지쳐 계속 NG를 냈다. 새벽 3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다음 날이 휴차이긴 했지만 모두가 지쳐있는 상황. 결국 임 감독은 더 이상 테이크를 계속 가는 것이 의미가 없겠다는 판단하에 만제의 리액션 쇼트를 활용해 그 롱테이크를 둘로 쪼개기로 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감독으로서 타협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타협은 포기가 아니다. 감독은 멀리 넓게 볼 줄 알아야 한다.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영화라는 점은 감독에게 이외에도 많은 타협할 거리들을 제공한다. 감독은 그럴 때마다 최선의 선택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임 감독은 준비하던 첫 장편영화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경험도 겪었다. 덕분에 ‘영화란 무엇인가’ ‘왜 영화를 찍으려고 하는가’와 같은, 본질적이지만 결코 어떤 멋진 답도 내놓을 수 없는 우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하지 못하는 시간을 꽤 오래 보냈다. 이제 그 해답을 찾았는지 궁금했다. “아직도 해답을 내릴 수 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앞으로도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과정을 반복해야 할 것 같다.” 분명한 건 그런 지난한 시간과 과정을 보냈기에 ‘메크모’가 이렇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메크모’는 장르적 실험으로 볼 수도 있지만 영화 만들기의 방법과 태도에 대한 임 감독의 생각이 일정 부분 스며든 작품이다. 모금산의 일기가 시나리오가 되고, 평범한 이발사 모금산이 배우가 되며, 영화의 제작진도 모금산과 그의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가 전부다. 영화 만들기가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는 지극히 사적인 매체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개인의 경험과 역사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관객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각자의 역사 속에서 영화를 본다.”

이 영화의 방점은 흑백 무성영화 형식을 차용한 영화 속의 영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다. 재기 넘치는 이 아이디어는 ‘메크모’가 지향하는 블랙 코미디의 미덕을 한층 끌어올렸다. 임 감독은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의 희비극을 레퍼런스 삼아 엉뚱하지만 사려 깊고, 담담하지만 경쾌하며, 슬프지만 유머러스한 화법과 스타일을 101분의 러닝타임 속에 자신만의 인장처럼 오롯이 박아냈다. “‘메크모’는 메타 영화다. 메타 영화라는 것이 단지 영화를 찍는 영화 혹은 영화 속에 영화가 등장하는 영화만을 일컫는 말은 아닐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처음으로 내가 공부했고 경험해온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메타의 형식을 빌리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 단편 무성영화는 ‘메크모’에서 가장 공들여 만든 신이기도 하다. 리얼리티를 깰 정도로 지나치게 웰메이드여서도, 감상에 방해가 될 정도로 지나치게 아마추어틱해서도 안 되었다. “그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극중에서 실제로 예원(고원희)이 들고 다닌 8㎜ 캠코더를 이용하여 촬영하는 대신, 8㎜ 캠코더로 촬영한 영상을 스크린에 영사하여 재촬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번거로운 과정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색다른 룩을 찾기 위해 어떤 시도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소멸되지 않고 남아있는 그 무엇에 대한 무한한 동경은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이는 시간이 경유한 만큼의 이야기, 역사를 만들고, 노스탤지어를 강화하며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흑백의 무성영화라는 고전극의 형식을 빌려 빛바랜 일기장의 한 페이지를 넘기듯 내보인 감독의 시도는 그 점에서 특별하고 흥미롭다.

임 감독은 차기작으로 엄마와 딸의 여행을 다룬 한·일합작 영화를 준비 중이다. 또 오래전 써놓은 케이퍼 무비 장르의 시나리오도 있다니 기대된다. “어떤 감독이 되겠다는 얘기를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다만 세상에는 할 만한 이야기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바람이라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현실을 날카롭게 반영하면서 인간에 대한 호의를 잃지 않는 영화들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다.”

글=윤용섭기자 hhhhama21@nate.com
사진제공=필앤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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