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물 - 이 세계] 이종형 포항시건축사회장

  •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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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16 07:42  |  수정 2017-12-16 07:43  |  발행일 2017-12-16 제8면
“주민안전이 우선” 회원 114명과 한달째 안전진단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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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포항시건축사회장이 지난 13일 ‘위험’평가를 받은 포항 북구의 한 원룸에서 안전점검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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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사람들의 안전이 우선입니다. 저희(건축사 회원)를 공무원으로 알고 있는 일부 지진피해 주민이 건축물 점검 결과가 못마땅해 심한 말을 퍼붓기도 하지만 우리는 올바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포항 출신인 이종형 포항시건축사회장(56·조은건축 건축사사무소 대표)은 지진피해 건축물에 대한 위험도 평가를 실시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포항시민의 안전’이라며 욕을 먹더라도 전문가로서의 소신을 지켜나갈 것임을 피력했다.

◆115명의 건물안전 지킴이와 독거노인

지진 당시 포항 북구지역에서는 시설물 피해가 속출했다. 주택·상가·공장 등 사유시설 피해만 2만8천여건에 달했다. 급박했다. 흥해지역 한 아파트는 건물이 비스듬히 기울면서 시민들이 더 이상 거주할 수 없을 정도였다. 또 원룸·주택 등 시설물 출입 가능 여부와 관련해 시민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건축물에 대해 조속한 점검이 이뤄져야만 했다.

건축 전문가로 구성된 포항시건축사회의 도움이 절실했다. 포항시의 요청을 받은 이 회장과 건축사 회원 114명은 건축물위험도평가단을 꾸리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들의 임무는 위험이 우려되는 건축물의 안전점검. 건축물의 뼈대를 이루는 중심 구조물에 피해가 생겼다면 출입을 통제해야 한다. 피해 건축물의 안전점검을 통해 ‘사용제한·가능’ 또는 ‘위험’을 판단했다.


“지진피해 건물 위험도 평가
불만 가진 일부 주민 심한말
그래도 전문가 소신 지킬 것”

포항건축문화제 성공리 개최
청소년 건축사 꿈 불어넣어



11·15지진 발생 후 포항지역 건축사들은 현재까지도 묵묵히 숨은 조력자 역할을 하며 빠른 복구에 일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 회장이 있다. 지난달 24일 안전점검에 나섰던 이 회장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낮에 안전점검을 위해 방문했다가 만난 하반신 장애를 가진 독거노인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노인의 집 벽 곳곳엔 균열이 있었다. 위험했다. 보일러 기름이 없어 난방도 되지 않았다. 이 회장은 대피소에 갈 것을 권유했지만 노인은 ‘불편할 것 같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노인이 위험하고 추운 집에서 홀로 밤을 보낼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도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튿날 서둘러 노인의 집을 찾았다. 회원들과 함께 곳곳에 생긴 균열을 막는 긴급 복구작업을 하고 나서야 이 회장은 마음을 놓았다. 독거노인의 집 안전점검은 봉사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됐다. 휴일도 가리지 않았다. 한 달 가까이 매달렸다. 생업까지 제쳐 놨다. 이 회장은 “114명의 회원이 밤낮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 건축전문가로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라며 “한 달째 자신들의 생업을 거의 포기하고 봉사하고 있는 회원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주민에게 욕먹더라도 소신은 지킨다

학창시절 이 회장은 기술 제도시간이 좋았다. 컴퍼스·디바이스 등 제도기구로 모눈종이에 설계하는 것이 적성에 맞았다. 포항고와 충북대(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6년 한 건축설계사무소 직원으로 입사해 실력을 닦았다. 1995년 포항에서 조은건축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해 현재까지 건축사 일을 하고 있다. 어느새 30년 경력의 전문가가 됐다.

선후배 건축사로부터 인간미 넘치는 겸손한 성품과 한결같은 노력을 인정받은 그는 지난해 1월1일부터 포항시건축사회 회장직을 맡아 오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포항 건축의 정체성 확립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포항건축문화제를 성공리에 치르면서 포항건축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특히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건축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유년시절 가졌던 건축사의 꿈을 이룬 그는 이제 고향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불태우고 있다. 재능 기부이긴 해도 애로점은 많다. 건물 곳곳에 균열이 생긴 곳도, 기둥이 부서진 곳도 서슴없이 들어가야 했다. 건물 뼈대에 해당하는 중심 구조물을 확인하러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기도 했다. 피해 건물의 응급조치를 하던 일부 회원들은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안전점검을 하면서 억울한 일도 많이 당했다.

이 회장은 “건축사는 건축물의 설계, 감리, 지도감독의 업무를 한다. 건축물 태생부터 구조까지 속속들이 잘 안다. 건축물 안전점검은 육안으로 보는 것이지만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평가를 내리게 된다”면서 “하지만 재건축을 원하는 일부 피해주민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건물이 ‘위험’평가를 받지 못했다며 우리에게 항의를 넘어 심한 말을 내뱉기도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순수하게 자원봉사를 하면서 의도치 않은 말을 듣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회원들도 같은 마음이지만 피해 주민의 입장을 생각하면 속으로 삼킨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지진을 계기로 포항지역 건축분야에 상당한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건축은 구조와 기능, 미를 함께 갖춰야 한다. 11·15 지진을 계기로 향후 지역에 들어서게 될 건물은 내진강화는 물론 도시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시설이 되도록 건축사회가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의 봉사활동은 복구가 마무리되는 그때까지 진행형이다. 건축사로서의 역할과 책임감을 갖고 끝까지 시민 안전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오늘도 불태우고 있다.

글·사진=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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