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쏙쏙 인성쑥쑥] 옳은 말을 들으면 곧 행동해야 할까(聞斯行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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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18 08:00  |  수정 2017-12-18 08:00  |  발행일 2017-12-18 제19면
[고전쏙쏙 인성쑥쑥] 옳은 말을 들으면 곧 행동해야 할까(聞斯行諸)

둘째 손자가 태어났습니다. 출생 날 병원 유리창 너머로 봤을 때와, 한 달 만에 집에서 아기를 보니 머리 크기가 많이 커졌습니다. 머리 크기 증가는 수초화(髓化)와 시냅스 밀도 증가라고 합니다. 수초화란 신경세포가 지방성 물질(미엘린)로 둘러싸이는 것인데 증가할수록 정보 전달 속도가 빨라진다고 합니다. 아동발달심리학자들은 수초화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여섯 살, 첫째 손자가 유치원에서 귀가했습니다. 며늘애가 유치원 가방을 받아서 물병을 꺼내는가 싶더니 종이쪽지를 들고 유심히 살핍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훈아, 이 편지 누가 준 거니?” 하고 묻습니다. 손자는 “부끄러워!” 하고 그냥 웃기만 합니다. 며늘애가 건네준 쪽지엔 ‘재훈아 아나조 사랑해조 이수선이가’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수초화의 증가로 정보 전달 속도가 빨라진 것일까요? 며늘애가 웃으며 시부모의 눈치를 살피는 듯합니다.

시골 필자의 집은 동네 서당이었습니다. 동지가 가까운 이맘때쯤이면 할아버지가 매기는 학동들의 성적은 대부분 ‘통(通)’이었습니다. 가장 낮은 점수는 ‘불(不)’입니다. 할아버지는 학동이 가끔 공부에 진도가 늦으면 “문리가 늦게 터지는 사람도 있어. 천 독 하면 문리가 터져” 하였습니다. 그러면 학동은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서당 교육은 지정의를 바탕으로 개별화된 공부를 합니다. 학동들 능력에 따라 문답을 합니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 공서화와 함께 있었습니다. 자로가 문을 열고 들어와 “문사행저(聞斯行諸)” 하고 여쭈었습니다. 즉 “옳은 말을 들으면 곧 행할까요?”라는 뜻입니다. 공자는 “집에 부형이 있으니 먼저 여쭈어보고, 부형이 시키는 대로 행하여라”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곧이어 염유가 들어와 역시 “문사행저(聞斯行諸)” 하였습니다. “그래, 들은 대로 곧 행하라”고 공자는 대답하였습니다.

순간 공서화는 몹시 당황하여 “감히 묻습니다. 선생님의 대답이 두 사람에게 다릅니다. 어찌 그러하신지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공자는 “자로는 행함이 지나쳐서 물러나게 하였고, 염유는 행함에 항상 주저하므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였느니라” 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자로는 성격이 급하고 난폭한 무뢰한이었습니다. 남보다 앞서려는 용기와 적극성을 가진 돈키호테형 성격이었습니다. 이런 자로를 공자는 덕으로 훈도(薰陶)하였습니다. 차츰 자로는 스승을 헌신적으로 섬겼고, 공자도 자로를 매우 사랑하였습니다. 반면 염유는 우유부단한 햄릿형 성격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동일한 질문에 공자는 개별화하여 지도하였습니다.

수초화로 정보 전달 속도가 빠른 손자가 쪽지를 가방에 넣고 온 것은 ‘문사행저(聞斯行諸)’입니다. 아이에겐 능력에 따른 지도가 필요합니다. 순간 “어떻게 할지 아이에게 물어봐” 하고 할머니가 며늘애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속담에 ‘아이 병엔 어미만 한 의사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발달하는 아이들의 지도는 언제나 ‘책대로 공식대로 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할 듯합니다. 박동규 (전 중리초등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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