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같이 살아가는 법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12-19   |  발행일 2017-12-19 제31면   |  수정 2017-12-19
[CEO 칼럼] 같이 살아가는 법
김재경 <사>커뮤니티와 경제 소장

지난 13일 동구 LH천년나무에 위치한 동구사회적경제문화센터에서 작은 행사가 있었다. 주민과 함께 이 지역에 살고 있는 꽤 많은 발달장애청년, 또 가족과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입구에는 행사를 알리는 리플릿과 방명록,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소박한 뷔페음식이 정갈하게 놓여 있고, 다른 한쪽에는 머그컵, 손수건과 머플러, 천연비누, 다육도자기, 김치, 흑마늘엑기스, 사과즙까지 다채로운 종류의 물건들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었다. 무대 앞에서는 작은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전신화상으로 힘들어하는 민선이에게 힘을 주세요”라는 글귀가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또 행사의 의미를 알리는 내용이 있었다. ‘11번의 수술, 12번째 희망, 13일 수요일 오후 6~9시에’.

동구사회적경제협의회 회원이자 안심마을 공동체 마을주민으로 오랫동안 지역사회에서 작은 도서관운동을 비롯해 동네 일을 해오고 마을기업을 통해 주민들과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한 주민의 딸이 사고를 당한 것이다. 전신화상을 입어 현재 병원에서 13번의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자, 마을이 들썩였다. 주민들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결국 무상으로 상품을 기부하고, 1만원 티켓을 팔아 치료비를 지원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동구지역의 사회적경제기업들은 각기 사정에 따라 가진 만큼 내놓았다.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공연기부로, 생산품이 있는 사람들은 생산품으로 십시일반 내놓았다. 수익금 전액을 치료비에 보태기로 했다. 음식을 만들던 기업에서는 뷔페음식을, 천연염색옷을 해오던 기업은 괜찮은 옷들을, 미혼모를 위해 아이들의 옷을 만들어오던 곳에서는 손수건과 머플러 등을, 사과를 생산하던 이들은 사과즙을, 카페를 운영하는 기업은 더치커피를 내놓는 등 20개 넘는 업체의 다양한 상품 30여개가 기부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따스한 동참의 행렬에 너 나 할 것 없이 내놓고 나섰다. 연말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한마음으로 모여 이웃의 딸의 쾌유를 위해 정성을 모았다.

마음 아픈 일로 모였지만, 참 ‘빛나는’ 시간이었다. 마을의 발달장애인당사자연대와 마을 안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도 회의를 통해 티켓을 샀다. 동구사회적경제문화센터는 온전한 학교는 아니었지만 어른과 아이, 동네 주민들이 돕는 것을 배우고 서로를 살피는 작은 삶의 소통하는 학교로 다시 거듭나고 있었다.

그동안의 수술로 근 2억원이 들었다고 하는데, 후일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날 하루 1천700만원 정도를 모았다고 한다. 앞으로도 계속 수술을 받아야 해서 들어갈 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다들 이웃의 갑작스러운 불행에 내 일처럼 나서서 정성과 마음을 모았다. 기적 같은 일이다. 그동안 마을의 대소사에, 즐겁고 궂은 일에 같이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위기 극복을 위한 하나의 해법을 도출하고 실천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것들을 십시일반 내놓으며 그들의 이웃, 민선이를 기억하며, 시장과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해내고 있다. 자발적이면서 창의적인 활동으로 더불어 사는 정서적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지역 곳곳에 공동체적 삶을 생산하는 장소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곳들이 보인다. 자신의 이익에 배타적으로 골몰하는 삶의 태도 속에 무너져가는 마음들을 세우고 있는 마을들이다. 이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외면한 채 개인적이거나 처세론적인 해법에 의존해서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고 삶에 대한 진실한 소통을 독려하는 가운데 해법도 도출된다. 이번 행사를 소재로 글을 쓴다고 하니 한 동구주민이 “후원계좌번호도 쓰면 안 돼요?”라고 한다. 이것이 같이 사는 방법이다.
김재경 <사>커뮤니티와 경제 소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