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핫 토픽] 서울대 출신 스님과 갭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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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2-22

서울대 출신으로 화제를 모았던 일묵·종원·명인 스님(왼쪽부터) <궁리출판사 제공>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 8명이 1996~97년 잇따라 출가(出家)하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기사는 “엘리트들이 승려가 되겠다고 출가한 사실은 학벌과 학력을 신앙시하는 우리 사회에 파문을 일으킬 조짐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보장된 모든 혜택을 버렸고, 자신들의 결심을 알리는 편지 한 장만 남겼다”며 보도했다. 또 이들 중 한명이 “어릴 때부터 모범생으로 서울대에 입학했고 박사과정에 진학했지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출가 배경을 밝힌 내용도 실렸다. 출가 4~5년 전부터 불교에 깊이 빠져 있던 이들은 1994년 불교서클 ‘청정회’를 만들어 수행을 했다고 한다.

승려가 된 후에 한 인터뷰가 알려지기도 했다. 특허청 사무관 출신인 종원 스님(정치학과 87학번)은 “지식은 장신구에 불과하고, 학벌·고시는 인생의 한 과정일 뿐이었다. 출가는 일생의 중요하지 않은 곁가지를 쳐내고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직접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겨울철은 최소 12년간 준비해온 입시의 막바지 시즌이다. 수능 성적표가 배부되고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지원할지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 치열한 입시전쟁을 대비하며 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20일 ‘갭이어(Gap year)’가 실시간 검색어로 떠올랐다.

갭이어는 학업을 중단하거나 병행하면서 다양한 체험을 통해 향후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기간이다. 영국 등 서구에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1년간 봉사, 여행, 진로탐색을 하며 쉼표를 찍는 곳이 많다. 배우 엠마 왓슨과 해리 왕자도 갭이어를 가졌다. 또 세계 주요 대학들은 입학 전 갭이어 프로그램을 경험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빠르면 유치원 때부터 조기 교육에 매달리는 한국의 학생들에게는 낯선 단어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학원과 학교, 집을 오가며 삭막한 시간들을 보내고, 부모들도 함께 입시지옥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힘들지만 당연히 거쳐야 할 시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학생이 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휴학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갭이어는 본래 취지와는 동떨어져 있다. 휴학생 중 남학생의 96%는 군대를 가기 위해서, 여학생은 64%가 취업이나 자격시험 준비에 더 매진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한다고 한다. 어렵게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지만 절반 가까이는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일자리를 찾는 희한한 현상마저 지속되고 있다.

쉬지 않고 달리는 자동차가 고속도로 위에서 연료가 떨어지거나 고장이 나면 낭패다. 연료가 떨어지기 전에, 고장이 나기 전에 휴게소에 들러 짧은 여유를 가져야 자동차는 더 오래 가고 멀리 간다.

윤제호 뉴미디어본부장 yoon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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