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안동 권정생 동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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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2   |  발행일 2017-12-22 제36면   |  수정 2017-12-22
‘강아지똥’ ‘몽실언니’ 가 반기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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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동화나라. 건물 앞마당에 그의 대표작인 ‘강아지똥’ ‘엄마 까투리’ ‘몽실언니’의 조형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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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꽃을 피게 하는 것은 바로 네가 하는 거야.’ (동화 ‘강아지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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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탑동 빌뱅이 언덕 흙집에서의 권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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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나기 50일 전에 쓴 두 번째 유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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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밖 데크 주변으로 여러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일직면 소재지를 지나며 조탑동을 가늠해 본다. 아마도 저어기 즈음. 지난 여름에도 일직교회 담벼락에는 넝쿨 장미가 피었겠지. 빌뱅이 언덕 흙집 마당에 앵두는 많이 열렸을까. 지금은 많이 싸늘하겠다, 그 집. 지난 가을 그 집에 다녀온 지인이 말했다. “집이 회초리다”라고. 타인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어떤 삶이 있다. 마음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양심에. 그래서 그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사실 불편하다.

2007년 세상을 떠난 동화작가 권정생
2014년 폐교인 일직남부初 리모델링
그의 삶·작품세계 담은 어린이문학관
별세 2년 전·50일 전 쓴 유언장 큰 울림

조탑동 빌뱅이 언덕 흙집서 車로 10분
동화나라 맞은편은 몽실이 살던 댓골마을


◆권정생 동화나라

권정생. 3년쯤 전에 그 집에 갔었다. 그해 곧 ‘권정생 동화나라’를 연다고 했다. 그 집이 있는 조탑에서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인 망호리, 2009년에 폐교된 일직남부초등학교는 지금 어린이문학관인 ‘권정생 동화나라’로 변신해 있다. 인세를 모두 어린이에게 돌려주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설립되었고 동화나라는 그 일환으로 2014년에 건립되었다. 생각보다 큰 건물이어서 살짝 놀랐다.

건물 상단에 민들레를 꼭 껴안은 채 비를 맞으며 땅 속으로 방울방울 스며들고 있는 강아지 똥이 있다. “너의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으로 들어와야 해. 예쁜 꽃을 피게 하는 것은 바로 네가 하는 거야.” “내가 거름이 돼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 동화 ‘강아지똥’의 내용이 떠오르며 마음이 촉촉해진다. 강아지 똥을 생각하며 미소 짓게 만들다니, 거 참, 결국 적당한 단어를 못 찾게 만드는 사람이다.

입구에 실내화가 마련되어 있다. 낮은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맨 아래 칸 슬리퍼를 신는다. 역시 차갑지 않다. 복도 벽면에는 그의 약력과 사진, 초등학교 아이들이 그린 듯한 그림들, 그리고 그가 쓴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책을 판매하는 곳과 마음껏 동화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실도 있다. 전시실은 교실 2개 정도를 이어 붙인 규모다. 출간된 도서와 친필원고가 있고, 바느질 도구, 학적부, 유언장과 통장들, 낡은 고무신, 열댓 권의 일기장, 막대기에 비료포대를 씌워 만든 부채 등이 전부다. 비료포대는 자신이 부채가 될 줄 알았을까. 강아지 똥은 꽃을 피우고 비료 포대는 바람이 되었구나. 유품이라는 것이 너무 적다. 그런 삶이었다.

◆권정생

권정생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노동징용으로 일본에 끌려왔던 아버지는 거리 청소부였다. 아버지는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낸 헌책들을 모아 고물장수에게 팔곤 했는데 어린 정생은 그 곁에서 ‘이솝이야기’ ‘행복한 왕자’ 등을 읽으며 글자를 익혔다. 1946년, 정생의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가난은 여전했고, 이어 6·25전쟁이 터졌다. 전쟁 후에는 부산에서 재봉틀 가게 점원으로 일했다. 틈틈이 헌책방을 찾아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죄와 벌’ 등을 읽었고, 포장지를 모아 글을 썼다.

열아홉 살 때 병이 찾아왔다. 폐결핵. 1년쯤 후엔 늑막염까지 덮쳤고 스물둘부터는 신장결핵, 방광결핵으로까지 번졌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그는 가족들을 위해 집을 떠났다. 대구, 김천, 상주, 점촌, 문경 등지를 떠돌았다. 온몸에 열이 끓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부고환 결핵이었다. 집으로 돌아왔고, 그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서른. 콩팥을 떼어냈다. 방광을 들어내고 소변주머니를 달았다. 의사는 2년도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는 1968년부터 조탑동 일직교회 문간방에서 16년을 살았다. 혼자 병을 앓으며 매일 새벽 종을 울렸다. 밤이면 글을 썼다. 그곳에서 태어난 작품이 ‘강아지똥’이다. “열에 들뜬 몸으로 써 나갔다. 아침에 보리쌀 두 홉을 냄비에 끓여 숟가락으로 세 등분으로 금 그어 놓고 저녁까지 나눠 먹었다. 강아지똥은 50일간의 고통 끝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1969년, 제1회 기독교 아동문학 현상모집에 ‘강아지똥’이 당선되었다. 상금 1만원으로 새끼 염소 한 쌍과 쌀 한 말을 샀다.

◆조용하고 생각에 젖을 수 있는 곳

전시실에는 선생이 1983년부터 2007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살았던 조탑동 빌뱅이 언덕의 흙집이 재현되어 있다. 두 칸 방이 있는 작은 집이다. 방 하나엔 책이 산더미로 쌓여 있었고, 다른 방 하나는 부엌이자 침실이자 집필실이었다. 내부의 물품들은 실제 선생의 유품이라 한다. 책장과 앉은뱅이책상이 가구의 전부지만. 그는 아동문학가인 이오덕에게 “이사 온 집이 참 좋습니다. 따뜻하고, 조용하고 마음대로 외로울 수 있고, 아플 수 있고, 생각에 젖을 수 있어요”라고 편지를 썼다. 그 집에서 그는 가난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달 생활비 5만원은 빠듯하고 10만원은 너무 많다고 했다.

전시실의 마지막 공간에는 선생의 유언장이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과 50일 전에 쓴 두 개의 유언장이다. 언제나 첫 번째 유언장에 마음이 갔는데 오늘은 두 번째 유언장에 더 오래 서 있다.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베트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펜 끝을 쫓는 눈이 떨린다.

현관 밖에 데크로 된 전망대가 있다. 맞은편에 보이는 마을이 소설 ‘몽실언니’의 몽실이가 살던 화목리 댓골마을이다. 나지막한 언덕에 평범하지만 예쁜 집들이 올라서있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늘어서있는 은행나무가 앙상하다. 종지기였던 옛날, 시멘트 담장을 세운다고 교회 울타리의 나무들을 베어낼 때 그는 마지막 남은 한 그루를 끌어안고 엉엉 울어버렸다지. 그의 눈물로 그 나무는 살아남았다. “바위 벼랑 위로/ 흘러가는 구름이/ 자꾸 눈앞을 어지럽힙니다./ 어머니/ 배가 고픕니다.”(권정생의 ‘딸기밭’ 중) 권정생 동화나라는 따뜻하고 조용하고 생각에 젖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선생님, 몹시 싸늘합니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중앙고속도로 남안동IC로 나가 조금 직진하다 5번국도 의성 방향으로 간다. 일직면소재지 지나 곧 오른쪽에 권정생 동화나라 이정표가 있다.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있어 찾기는 쉽다. 권정생 동화나라는 월요일 휴관이며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관한다. 관람료는 무료다. 남안동IC를 나오면 곧바로 권정생의 조탑동 집 이정표가 있다. 가까우니 들러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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