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싱 스트리트’ 존 카니 감독(2016,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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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2   |  발행일 2017-12-22 제42면   |  수정 2017-12-22
소년, 소녀를 만나다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싱 스트리트’ 존 카니 감독(2016, 아일랜드)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싱 스트리트’ 존 카니 감독(2016, 아일랜드)

조동진 노래를 좋아했다. 10대 시절, 즐겨 듣던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아련한 슬픔에 빠지곤 했다. 특히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작은 배가 있었네…”라고 중얼거리듯 노래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더욱 그랬다. 작은 배로는 멀리 갈 수 없다고 노래하는 느릿느릿한 그 음성은, 내 모습이 마치 거대한 바다 위를 떠도는 조각배 하나라 일러주는 것 같았다.

음악 영화 ‘원스’와 ‘비긴 어게인’의 감독 존 카니의 ‘싱 스트리트’를 생각하면 거대한 바다 위를 작은 배를 타고 떠나는 마지막 장면부터 떠오른다. 비바람을 헤치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소년과 소녀. 그 모습 위로 흐르는 음악, 애덤 리바인의 ‘Go Now’는 그 장면을 더욱 잊을 수 없도록 만든다. 애덤 리바인은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지금 가지 않으면 절대 못 가니까”라고 절절하게 노래한다.

영화의 주인공 소년 ‘코너’는, 툭하면 소리치며 다투기 일쑤인 이혼 직전의 부모와 산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견뎌나가던 코너는, 위기에 몰린 가정 경제로 전학까지 하게 된다. 그런 그가 한 소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친구들을 모아 밴드를 만든다. 밴드 이름은 ‘싱 스트리트’, 음악 장르는 자칭 ‘미래파’다. 갓 전학 온 학교에서의 권위와 폭력 속에서 코너는 노래를 만들고 연주를 하며 자신을 찾고 성장해나간다. 그는 음악으로 폭력의 세계에 멋지게 복수를 하고, 영국으로 가는 것이 꿈이던 소녀 라피나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떠난다.

영화는 감독의 어린 시절을 그렸다고 한다. 가정환경이나 밴드를 했던 경험 등을 녹여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듀란듀란을 비롯한 80년대 음악들의 향연으로 가득한데, 감독 자신이 10대 시절 좋아했던 음악들이다. 복고풍 의상들과 매력적인 음악, 그리고 풋풋한 소년, 소녀의 사랑이야기는 무척 재미있다. 특히 음악 속에서 자신을 찾고 성장해나가는 소년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음악도,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역시 잊을 수 없는 건 거센 비바람 속에서 작은 배를 타고 가는 마지막 장면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작은 조각배 하나에 의지한 채 나아가는 인생이 어찌 두렵지 않을까. 하지만 머물러 있는 대신 두려움 속에서 모험을 택한 소년, 소녀의 모습이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한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명대사가 있다. 코너가 자신을 괴롭히던 폭력배에게 “넌 부술 줄만 알았지, 만들 줄은 모르잖아”라고 말하던 장면이다. 그건 마치 분기점 같았다. 여린 소년이 남자가 되는 길목으로 불쑥 들어서게 되는 순간 말이다. 자신의 이야기로 노랫말을 쓰고, 곡을 만들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폭력배는 신기하리만치 무력해져버린다.

올해 여름 하늘로 간 조동진도 노래를 만들던 사람이었다. 그가 만든 노랫말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했다. 그런 서정적인 노래를 만든 사람의 생애 역시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후일담을 들어보면 그가 아는 많은 이들이 사랑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의 누이는 그를 일컬어 ‘나무 같은 사람’이라 했다. 변함없이,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거다. 노래는 그렇게 만드는 이의 모습을 닮아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아주 오랜만에 조동진의 노래를 들었다. 날씨가 추웠다. 군고구마를 손에 들고, 눈이라도 내리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제비꽃’을 들었다. 마음이 따스해지고, 조금 슬퍼졌다. 라피나의 대사처럼 ‘행복한 슬픔’이었다. 그리고 알았다. 그건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라는 걸. ‘제비꽃’의 노랫말처럼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알겠다. 이건 누군가가 빈정대듯 말하던 ‘소녀감성’이란 것을. 하지만 어쩌랴. 소년, 소녀의 감성이 아니고서 어찌 삶의 아름다움을 투명하게 느낄 수 있을까. 그 마음이 아니고 어찌 감히, 작디작은 배 하나로 거대한 바다를 항해할 생각을 하겠는가. 그러니 부디 이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하겠다.

이제 코너와 라피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인 나는 한편으로 이들의 모험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본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기억해야 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 또한 선택이라는 것을. 후일 돌아보면 이 둘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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