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나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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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3   |  발행일 2017-12-23 제23면   |  수정 2017-12-23
[토요단상] 나훈아
노병수 칼럼니스트

가수 나훈아가 11년 만에 개최한 콘서트가 단연 화제다. 그는 지난 11월 서울 올림픽홀에서 열린 ‘드림콘서트’로 눈부신 컴백을 했다. 오랜 잠적생활 탓에 뇌졸중 등 온갖 구설에 시달리던 그가 불세출의 콘서트를 직접 기획하고 연출했다. 전성기를 뛰어넘는 농익은 가창력으로 무대를 장악함으로써 모든 소문을 잠재웠다. 가왕(歌王)이란 말이 거저 나온 소리가 아니었다. 이 콘서트는 짜임새 있는 작은 공연으로 재편되어, 부산을 거쳐, 지난 주말 대구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그의 공연은 티켓 오픈에서부터 난리가 났다. 티켓팅이 ‘피켓팅’이 되었다. 말 그대로 ‘피를 부르는 티켓팅’이었다. 아이돌 콘서트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열기(熱氣)였다. 티켓을 독점 판매했던 Yes24는 오픈하자마자 서버가 다운되는 소동을 겪으며, 서울공연 9천석이 불과 7분 만에 매진되었다. 부산과 대구도 비슷한 시간대에 매진됐다. 표를 예매한 사람의 절반 이상이 뜻밖에도 30대 젊은이들이었다. 인터넷에 서툰 부모를 대신해서 자식들이 뛰어들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이번 콘서트는 실로 엄청난 볼거리를 제공했다. 칠순의 나훈아는 펄펄 날아다녔다. 온갖 연주자, 춤꾼들 다 데리고 나와 탭댄스, 지르박에 우리 춤까지 추었다. 노래도 트로트에 국한되지 않았다. 동요로 시작해서, 팝송에다 타령까지 불렀다. 사회자도 없고, 찬조가수도 없었다. 오직 혼자서 죽기 살기로 노래를 불렀다. 한복에서 정장까지 별의별 옷이 다 등장했다. 그 옷들을 전부 무대에서 벗고 입었다. 하얀 이를 내밀며 짓는 ‘썩소’도 여전했다. 관중은 함께 울었고 함께 웃었다.

구수한 입담도 살아있다. 부산 사투리가 일단 먹힌다. “오늘 내가 전부 알아서 할 끼이께네, 엑스포 쇳대 잠가뿌라.” “대구만 오면 어린장이 하고 싶어지내예.” 이상하게 말재주가 있다. “나보고 국회의원 하라 카는데, 그라면 노래는 누가 부르노? 이 아주무이들은 우짜노?” “나보고 뇌경색 걸려서 걷지도 못한다 카는데, 쎄가 만발이나 빠질 사람들이제, 지나 잘 하지.” 자기 광고도 잘 하고. “근대 내 마이 안 늙었지예?” 그러고는 ‘씨익’ 웃는다. 관중이 넘어간다. 정녕 미워할 수 없는 사내다.

진행을 이어가는 기교도 탁월하다. 무대에 죽은 북한 김정남의 사진이 나온다. “김정남은 노래방 가면 내 노래 ‘고향으로 가는 배’를 10번 정도 부르면서 펑펑 울었다 아입니꺼.”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른다. “미국에서 고속도로를 운전하며 라디오를 트는데 내 노래 ‘사나이 눈물’이 나온다 아입니꺼. 차 세워놓고 따라 부르며 정말 많이 울었어예.”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른다. 공연은 ‘청춘을 돌려다오’에서 절정에 오른다. 러닝에 찢어진 청바지가 여기서 나온다. 서울공연 때는 아예 윗옷을 찢어버렸다.

공연이 끝나자 관람객 모두가 10년은 젊어진 얼굴이었다. 힘없는 노인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야기꽃이 만발했다. “한 사람이 기절했다더라.” “내 옆의 아줌마는 공연 내내 목 놓아 울기만 하더라.” 이런 얘기들은 약과다. “내년에는 티켓이 백만 원이라도 온다.” “나훈아 봐야 해서 죽지도 못한다.” 이제 부끄러움은 저리 가고 없다. “나는 요실금 팬티까지 입고 왔다.” 그 설레에 엄마를 모시고 왔던 한 처녀의 말이 압권이다. “내가 잘 따라왔지, 아빠하고 왔으면 엄마는 이혼당했다.”

나훈아를 뽕짝 가수라고 우습게 보는 사람은 없다. 최고의 클래식 마니아도 그의 공연은 높이 산다. 그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내년에는 전국 18개 도시로 확대투어를 계획 중이란다.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노병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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