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구미 지산샛강 철새들과 대구경북 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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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5 07:47  |  수정 2017-12-25 07:47  |  발행일 2017-12-25 제15면
[행복한 교육] 구미 지산샛강 철새들과 대구경북 교사들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구미 금오여고 앞 들판을 흐르는 샛강이 있다. 주변 양어장에서 끊임없이 따뜻한 물이 흘러나와 얼지 않고 영양분도 풍부하고 물풀 뿌리도 넉넉하다. 이곳은 철새들의 낙원이 되었다. 이명박정부가 4대강 사업으로 바로 근처 구미 해평습지 모래밭을 파헤쳐버린 뒤부터 수천마리의 쇠기러기와 청둥오리, 흰죽지, 물닭들과 큰고니, 흑두루미, 재두루미는 느닷없이 삶의 터를 잃어버렸다. 2012년 물이 막힌 낙동강이 꽁꽁 얼어버리자 새들이 찾아낸 곳이 바로 이곳 지산샛강이었다. 환경운동연합 회원인 나는 먹이활동을 못하는 고니들을 위해 고구마 기부를 받고, 환경청을 찾아 호소도 하여 밤새 고구마를 잘게 썰어 샛강과 꽁꽁 언 낙동강 위로 걸어가서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과 시민과 함께 철새탐조 행사를 했다. 다시 몇 년 만에 찾은 작은 샛강은 어느새 고니의 호수가 되어 있다. 큰고니와 쇠기러기들은 한낮 동안 옛 해평습지로 날아간다. 하지만 모래밭은 사라져 버렸고, 대체할 모래밭도 찾을 수 없다. 별 수 없이 새들은 사라져버린 모래밭 대신 강 한가운데 생겨난 얼음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잠을 잔다. 잠은 쏟아지는데, 쉬어야 하는데 강가에 만들어진 작은 모래밭은 위험하니 얼음 위라도 별 수 없이 선택해야 한다. 4대강 사업이 만들어 낸 슬픈 풍경이다.

지산샛강에는 정확하게 셀 수 없지만 600여 마리나 되는 큰고니들이 온종일 노래를 부른다. 그 하얀 새들 사이에 새까만 솜뭉치 하나가 떠 있다. 수많은 카메라들이 모두 이 까만 새를 겨누고 있다. 어쩌다 고개를 들기도 하고, 큰고니 가까이 가보지만 큰고니들은 부리로 겁을 주거나 피해 버린다. 블랙 스완, 흑고니다. 흑고니는 호주 특산종이다. 큰고니나 겨울 철새들이 북쪽 시베리아 툰드라지대가 얼어버려 덜 추운 남쪽 우리나라와 일본을 찾았다가 봄이 오면 다시 돌아간다. 그런데 이 외로운 흑고니는 어디에서 왔을까? 전문가들은 사육되던 흑고니가 야생이 되었다고도 하고, 여름에 속초 영랑호에서 머물렀다고 하니 호주에서 온 것은 아닌가보다. 이 흑고니는 봄과 여름, 가을 동안 큰고니들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큰고니의 이동경로를 찾아 기다리다가 남하하는 큰고니를 따라 이곳까지 오지 않았을까? 나는 몇 시간을 기다려 흑고니도 큰고니를 따라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외로움에만 공감하고 딱 한번 날갯짓을 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해평습지로 가야 했다. 전국 동시 두루미 고니 모니터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페북에서 흑고니가 힘차게 날아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올려두어 보면서 참 다행이다 생각했다.

우동기 교육감이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나는 오랜 시간 글과 방송으로 우 교육감을 비판해왔다. 정말 이러다가 교사들의 교사 됨이 사라져버릴까 두려웠다. 나부터 이런 식의 교육 정책과 행정이 계속된다면 타 시·도로 가야겠다고 준비를 했다. 긴 세월 나는 마치 4대강 사업으로 서식처를 잃어버린 철새가 되어 버렸고, 점점 철새들 속 흑고니가 되어 버린 듯했다. 다른 많은 교사도 철새들처럼 습지의 오래된 너른 모래밭이 사라져버렸음을 아프게 인식하고 있다. 별 수 없어 꽁꽁 언 낙동강의 얼음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아래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을 견뎌왔다. 겨우 찾은 지산샛강은 그나마 죽지 않고 어린 자식들을 키워낼 수 있는 사회복지센터였을 것이다. 천연기념물이 된 일부 교사들은 타 시·도교육청의 혁신학교나 먼 나라 핀란드와 덴마크의 교육을 부러워하며 언제나 나도 저렇게 힘찬 날갯짓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기다려 왔다.

우리는 낙동강 해평습지를 복원해야 한다. 너른 모래밭을 철새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먼 남반구 호주 땅에서 강제로 이주당한 흑고니를 고향으로 돌려보내주어야 한다. 이게 어려우면 북반구의 북쪽에서 날아온 큰고니들도 흑고니와 짝을 맺거나 겨울 한철이라도 흑고니를 가족으로 받아주기를 기도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낙동강 구미보 아래 감천 하수지점이다. 이곳에 재두루미 부부가 월동을 하고 있다. 오래전 나는 해평습지에서 월동하는 수십마리의 재두루미와 흑두루미를 관찰했다. 텃새가 되어버린 중대백로를 피해 떨어져 먹이활동을 하는 재두루미의 우아한 모습과 붉은 머리의 멋을 감탄하면서도 그냥 또 미안해졌다. 교사인 나는 4대강 사업으로 파헤쳐진 낙동강에서 철새들에게 이렇듯 감정이입이 되어버렸다. 못내 서럽다. 그러나 나와 우리는 지지 않았고 희망을 잃지 않는다. 더구나 오늘은 기쁜 성탄절이다.

임성무 (대구 강림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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