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고등어’ 탄생지는 임동 챗거리장터…발효 정점서 소금을 만나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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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5   |  발행일 2018-01-05 제35면   |  수정 2018-01-05
■ 푸드로드…고등어가 간고등어가 되기까지
‘간고등어’ 탄생지는 임동 챗거리장터…발효 정점서 소금을 만나다
남안동IC 근처에 있는 <주>안동간고등어 작업장의 여성 간잽이들이 능수능란한 솜씨로 내장을 제거한 고등어의 복부에 소금을 치고 있다.
‘간고등어’ 탄생지는 임동 챗거리장터…발효 정점서 소금을 만나다
안동 정하동에 있는 ‘예미정’의 간고등어정식.

◆안동간고등어를 찾아서

간고등어를 찾아 안동으로 갔다. 남안동IC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주>안동간고등어 작업장. 해동해서 내장을 제거하고 물간과 습간 등 모두 10단계를 거쳐야 간고등어가 완성된다. 여성 간잽이가 고기 상태에 맞는 소금을 복부에 집어넣어 두 마리를 합쳐 한손으로 만든다. 보기는 쉬워도 일반인은 흉내도 잘 못 낸다. 요즘 고등어는 체장 21㎝ 밑으로는 못 잡게 돼 있다. 그런데도 고등어가 덜 잡혀 작은 놈도 나돈다. 안동간고등어는 일반 식당 것보다 큼지막한 게 특징이다.

일제 때 고등어 1번지는 통영에서 32㎞ 떨어진 국내에서 48번째로 큰 섬인 욕지도. 욕지도는 근대어촌 1호였다. 잡힌 고등어는 집집마다 있던 ‘간독’에 보관했다. 사방 3m, 어른 키 정도 깊이의 시멘트 독이었다. 거기에 천일염과 고등어를 번갈아 쌓아 염장했다. 지금은 호시절이 아니다. 고등어벨트의 축은 부산공동어시장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욕지도 좌부랑개는 일명 ‘고등어마을’로 불린다. 거기 가면 국내에 몇 안 남은 간독을 볼 수 있다.

고등어 산지 아닌 내륙 안동의 특산품
강구항서 염장해 가져와 먹던 데서 비롯
오십천 구간 지나 황장재·가랫재 넘어
지금은 임하댐에 수몰된 챗거리서 완성
간잽이 손에서 태어난 육지발효 ‘陸魚’

1997년 탈춤축제 론칭후 먹거리 재조명
이동삼을 보부상 간잽이 캐릭터로 연출
뼛속까지 배어든 짭조름한 맛으로 명성


◆간잽이 이동삼

이동삼. 제대 후 1960년대 후반부터 옥야동 중앙신시장을 거점으로 자전거 타고 간고등어를 배달하던 자전거짐꾼이다. 그런데 1999년 그에게 꿈같은 일이 벌어진다. 오늘의 안동탈춤의 모양새를 잡은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전 사무국장이던 권두현과 <주>안동간고등어 초대 대표이사 류영동 등이 ‘이동삼 간잽이마케팅’에 나섰기 때문이다. 1997년 안동탈춤페스티벌이 론칭됐고 관광객에게 어필될 수 있는 향토특산품이 절실했다. 고심 끝에 찾아낸 게 바로 간고등어였다.

고등어 산지도 아니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전통적인 ‘고등어문화’를 구축해낸 게 바로 안동이다. 안동이 만약 바닷가에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신드롬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간고등어를 위해 조물주가 생각 끝에 영덕과 안동 사이를 80㎞ 띄워 놓았는지도 모른다. 1년 전 개통된 안동~영덕고속도로. 이젠 1시간도 안 걸리지만 도보시대 그 시절에는 하루 만에 올 수 없는 거리였다.

영덕 강구항 선창의 고등어. 소·말달구지와 일반 지게보다 다리가 짧은 바지게에 실려 옮겨졌다. 특히 하절기엔 삼백리 넘는 길을 실온에서 옮길 수가 없다. 반드시 소금간을 해야만 했다. 간잽이는 투망을 지시하는 어선장 같다. 언제 소금을 투하해야 될지를 결정해야 된다.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절정의 맛을 잃어버리게 된다.

선창에서 고등어를 구입한 사람들은 당시 냉장고 구실을 했던 간독에 파묻어둔다. 이를 대구에선 ‘제자리간’이라고 한다. 찔깃한 자반고등어구이는 거의 육포 씹는 맛이다. 요즘 간고등어구이보다 몇배 더 딱딱하다. 이젠 식당에서 맛볼 수 없는 맛이다.

영덕 오십천 구간을 지난 간잽이들은 황장재를 넘는다. 황장재 초입에는 원전리 주막촌이 있었다. 이제 그 언저리에는 ‘환희식당’이 있다. 황장재를 내려오면 청송의 명물 신촌 약수촌이 나온다. 일행은 여기서 목을 축이고 영덕~안동 중간 지점인 진보면 월전리 마방 봉놋방에서 하루를 묵는다. 돈이 없으면 고등어를 숙박료로 대신 내기도 했다. 그땐 간고등어가 화폐 구실을 했다. 간잽이는 바람과 햇살 정도를 봐가면서 짚으로 만든 거적을 열기도 하고 덮기도 했다. 습도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월전리에서는 고등어를 풀지 않는다. 안동으로 가야 제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월전리에서 다시 백리를 더 가야 한다. 다시 가랫재를 지나면 안동간고등어 탄생지가 나타난다. 바로 ‘임동 챗거리장터마을’이다. 지금은 임하댐에 수몰돼 사라지고 없다. 캠핑장이 들어서 있다. 아무튼 강구를 떠난 고등어도 이 지점에 오면 퀴퀴한 냄새를 피워문다. 내장을 제거하고 빈 복부에 굵은 소금을 집어넣는다. 무르기에 따라 소금의 양도 달라진다. 소금이 한쪽으로 쏠리면 안된다. 왼손으로 대가리를 꽉 잡고 오른손은 힘을 빼고 손목의 감각으로 소금을 친다. 간고등어는 마치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가 최대 소비처인 나주로 오면서, 동해 묵호·주문진 등지에서 잡힌 참문어가 태백선에 실려 영주로 오면서 특유의 향미를 갖게 되는 것과 비슷한 구도였다. 육지가 발효시킨 ‘육어(陸魚)’같다.

그런데 딱 닮은 고등어길이 일본에도 있다. 거리도 똑같다. 이 무슨 한·일 간 ‘고등어 우정’이란 말인가. 일본 후쿠이현의 오바마(小濱)에서 교토에 이르는 구간이다. 옛날 일본에서는 동해의 일본쪽 앞바다 와카사(若狹)만에서 고등어를 잡아 그것을 교토까지 등짐으로 운반했다. 한 사람이 등짐으로 운반하는 양은 30㎏ 남짓. 일본의 경우 생선을 염장하지 않고 그대로 교토까지 가지고 왔다. 그 고등어가 바로 시메사바가 되고 그 맛을 니시키시장 한편에 있는 ‘이요마타’가 고수하고 있다. 1617년 개업해 400년째 영업 중이다. 이들은 2월에 고등어를 소금에 절여 나무통 안에 넣었다가 여름장마 때 꺼내 먹기도 했다. 현재 일본 최고의 고등어는 오이타현의 사가노세키 바다에서 잡힌 ‘세키사바’. 한 마리에 3만원 정도.

◆ 문화콘텐츠마케팅 대상이 된 간고등어

간은 소금에서 온다. 전라도 신안군 천일염이 경상도로 오는 건 너무 힘겹다. 거의 낙동강 하구 부산시 사하구 명지에서 생산된 낙동강 자염이 주류를 이룬다. 낙동강 소금배는 낙강과 동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 나루터인 개목나루에서 멈춰선다. 더 위로는 강이 험하고 수심이 얕기 때문이다. 낙강은 황지에서 발원하고 동강(반변천)은 일월산에서 발원한다. 낙동강 소금배의 북방한계선은 바로 안동. 안동시에서 그걸 기념하기 위해 두물머리에서 축제도 벌였다.

하지만 임하댐으로 인해 챗거리간고등어문화도 수장돼 버렸다. 간잽이의 명맥도 끊어졌다. 그렇게 뉴밀레니엄을 맞이할 즈음 안동에서 새로운 문화콘텐츠마케팅상품이 등장한다. 그게 바로 간고등어였다. 처음에는 이동삼이 아니었다. 한 할머니를 간잽이로 내세웠다. 그런데 할매 집안에서 반대를 했다. 할매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고심 끝에 대타를 찾았다. 그가 바로 이동삼이다.

짐자전거를 몰던 이동삼에겐 간잽이 근육이 완벽하진 않았다. 그래서 칼을 갈아야 했다. 몇몇 멘토가 있었다. 39년째 중앙신시장에서 ‘신시장해물’이란 어물전을 꾸려가는 김영자씨(71) 등이 그에게 소금 치는 법을 수시로 가르쳐주었다.

문어와 돔배기 등 안동 제사에 빠져선 안되는 ‘제물고기’를 잘 다루는 고디 아줌마들은 그가 나중에 한국 최고의 간잽이 모델로 대박칠 줄 몰랐다. 정말 사람 팔자는 알 수가 없다. 나중엔 안동간고등어를 띄우기 위해 5명이 모여 도원결의를 한다. 일단 옥야동 중앙신시장 앞에 컨테이너를 갖다놓고 ‘안동식품’이란 간판을 걸었다. 마케터들은 이동삼을 간잽이 캐릭터로 연출했다. 보부상이 사용하던 패랭이를 쓰게 하고 민복도 입혔다. 그리고 수시로 상회 앞에 앉아서 소금을 뿌렸다. 관광객에겐 그 광경이 특별하게 보였다. 사극배우처럼 보였고 그게 재밌어 소리소문없이 많이들 찾아갔다. 이동삼은 나중에 <주>안동간고등어 핵심 멤버로 영입된다.

이동삼은 안동역 근처에서 ‘일직식당’을 꾸려갔다. 안동간고등어 마케터들의 배려였다. 그도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가업을 이었다. 식객의 만화가 허영만이 지난해 네이버를 통해 K-fish 웹툰 ‘안동간고디’를 연재했다. 포스트 안동간고디 마케팅의 신호탄으로 보인다. <주>안동간고등어의 파워가 기반이 돼 안동종가음식산업화사업단을 탄생시킨 ‘예미정’이란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었다. 퓨전 한옥레스토랑 같은 예미정에서 간고등어정식을 받았다. 부산고갈비와 달리 간고등어는 오븐에서 곱게 굽혀나온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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