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대의 시간을 담은 건축] 서울 ‘마포 문화비축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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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5   |  발행일 2018-01-05 제38면   |  수정 2018-01-05
기름 탱크를 문화로 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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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해체 후 콘크리트 옹벽 안에 투명 유리 벽체와 지붕을 구성, 과거의 옹벽과 암반 지형 모습을 볼 수 있는 ‘T1 파빌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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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에서 해체된 철판을 재활용해 신축한 ‘T6 커뮤니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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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탱크 내부 형태를 따라서 계획된 ‘T2 공연장’. 휴게쉼터로 이용된다.

서울 마포구 매봉산 자락 월드컵터널 옆에 있는 과거 오일쇼크 시대 유산인 석유비축기지의 오일탱크를 재생, 역사적 의미를 보존하며 대중과 함께하는 문화공간이 만들어졌다. 과거의 흔적을 기억하게 하듯 ‘문화비축기지’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수차례 오일쇼크는 그 당시 세계 경제에 치명적이었다. 특히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의 오일쇼크는 경제발전 속도에 큰 제동을 걸었다.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에너지 확보와 비상시를 대비, 석유수급 및 가격 안정화를 위한 대책이 필요했다. 전국 곳곳에 군사비상시설에 버금가는 석유비축기지와 탱크를 건설해 오일쇼크를 대비했다.

마포구 매봉산 자락 월드컵터널 옆
1978년 유사시 석유공급 위해 건설
40여 년 접근 통제된 석유비축기지
2000년 폐쇄 후 방치…작년 탈바꿈

땅 속 5개 콘크리트 탱크 그대로 활용
과거 땅 흔적 살린 전시·공연장으로
커뮤니티센터는 철판 재활용해 신축


◆상암 석유비축기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석유비축기지는 1978년에 건설한 유류 저장시설이다. 당시 석유비축기지는 지름 15~38m, 높이 15m 탱크 5개에 6천907만ℓ의 석유를 비축했다 한다. 이 보관량은 서울시민의 한 달치 사용량이었다. 비축기지는 1급 보안시설로 분류되는 통제구역으로 40여 년간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됐다. 석유비축기지는 매봉산 돌산 속에 묻혀 있었다. 휘발유·디젤·벙커씨유 등의 탱크는 폭격이나 지진 등 천재지변 발생 시 견고한 암반 속에서 잘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상암동 난지도 일대는 혐오시설인 서울시의 쓰레기처리장이었다. 이곳의 개발은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장 건설 부지를 물색하던 중, 과거에는 도시 외곽지역이었으나 이미 도심지 안으로 둘러싸이고 포화상태가 되어버린 쓰레기 하치장을 흙으로 덮어 공원화해 월드컵경기장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문화비축기지(북측)에서 5~10분 거리에 있는 서울월드컵 경기장(동측), 평화의공원(남측), 하늘공원 월드컵 골프장(서측) 일대는 과거 쓰레기처리장 위에 건설한 친환경 공원과 시설이다. 월드컵 경기장 시대를 위해 1급 보호시설과 혐오시설로 관리되던 이 일대는 2000년부터 지도 판도가 바뀌는 대규모 공사가 시작됐다.

◆건축설계와 현장성

월드컵 경기 개최를 위한 안전상의 이유로 2000년 12월 석유비축기지를 폐쇄한다. 이후 그 주변공간은 임시 공영주차장 등으로 사용됐다. 방치된 폐산업시설이 되어버린 이곳의 활용방안에 대해 2014년 시민이 참여하는 국제 아이디어 건축공모전이 열렸다. 16개국 227명의 작품이 경쟁해 선정된 당선작의 제목은 ‘땅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이다. 설계자(RoA건축)는 ‘과거 비축기지를 만들 당시의 공사과정과 땅에 새겨진 흔적을 되짚어보고 보존하고자 했다’는 의도를 밝혔다. ‘과도한 건축물 설계를 배제하면서 원래부터 지니고 있는 지형의 잠재력을 최대한 찾아냈다’는 심사평이 나왔다.

설계과정은 땅속에 묻혀 있던 5개의 거대한 콘크리트 탱크를 그대로 노출하고 땅의 흔적을 드러내면서 문화공간으로 재생하는 작업이었다. 과거에 있던 건축을 되살리는 재생으로, 토목구조물을 그대로 보존하며 문화공간으로 재생하는 작업이었다.

기존의 5개 원형 콘크리트 구조물 탱크는 공연장·전시장 등으로 활용됐다. 또한 새롭게 신축한 1개의 메인 탱크는 커뮤니티센터로 쓰였다. 임시주차장이던 넓은 야외공간은 문화마당으로 조성됐다. 14만㎡ 규모에 총사업비 470억원이 투입됐다. 2015년 말부터 공사를 시작한다. 재생의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이뤄진 설계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시민의 의견을 설계과정에 반영하기도 한다. 40여 년 전 새겨진 흔적과 기억을 발굴하듯 매봉산 자락을 조심스럽게 파내고 콘크리트 탱크 원형을 찾아내는 현장은 마치 문화재 발굴과 다름이 없는 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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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구성

문화비축기지는 1개의 외부공간과 6개의 시설공간으로 구성된다. 공간의 명칭은 과거 ‘오일TANK’, 현재의 ‘문화TANK’를 표현하는 이니셜T에 일련번호 T0~T6로 했다.

△T0 문화마당= 탱크의 비어진 원형을 상징하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대규모 행사가 열리는 야외공간이다. 축구장 22개가 들어가는 크기의 마당이다.

△T1 파빌리온= 탱크 해체 후 남은 콘크리트 옹벽 안에 투명 유리 벽체와 지붕을 구성, 과거 옹벽과 매봉산 암반 지형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공간.

△T2 공연장=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입체 경사로를 따라 연결되는 탱크의 상부는 야외무대, 하부는 공연장으로 구성했다. 평소에는 열린 휴게쉼터공간.

△T3 탱크원형= 40년 전의 석유비축기지 조성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류저장탱크 본래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기억의 박물관.

△T4 복합문화공간= 기존 탱크 내부의 독특한 형태를 그대로 살린 공간으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문화공간.

△T5 이야기관= 과거의 석유비축기지가 현재의 문화비축기지로 바뀌는 스토리를 기록해 보여주는 공간.

△T6 커뮤니티센터= T1 T2 탱크에서 해체된 철판을 재활용해 신축한 건물이다. 운영사무실 강의실 카페테리아 등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

문화비축기지에는 새롭게 지은 건축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6개의 탱크 공간을 돌면서 시간성 안에서의 문화예술을 경험한다. 공간재생 과정에서 옹벽구조물과 송유관 계기판은 물론 무심히 자란 나무와 이끼까지 수십 년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살리도록 기획됐다. 하지만 옛 산업시설과 근대건축이 꼭 문화시설이어야 하는 것인가? 문화 이외의 기능과 지역성에 필요한 공간은 없는 것인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한터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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