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자녀 관계 갈등해결

  • 최은지
  • |
  • 입력 2018-01-08 07:59  |  수정 2018-01-08 08:00  |  발행일 2018-01-08 제19면
“자녀와 친구 사이 갈등, 지나친 개입보다 기다림 필요”
20180108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며칠 전 초등학생 딸을 둔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격앙된 목소리로 왕따 때문에 딸이 학교 가기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학교폭력 아니냐? 신고해서 벌 줘야 하지 않느냐?’ 흥분해서 당장 학교로 찾아갈 기세였습니다. 친구에게 흥분하지 말고 딸과 차분히 대화하면서 전후 사정을 알아보라 했습니다. 우리 딸은 피해자고 왕따시킨 친구들이 무조건 잘못했기 때문에 알아볼 필요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딸과 대화를 하라고 여러 번 말하자 마지못해 그리하겠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한참 뒤 친구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목소리는 차분해졌더군요. 딸이 친한 친구에게 다른 친구랑 놀지 말라고 했고, 친구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조금 다투었다고 합니다. 다투고 난 뒤 다른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친구 모습에 화가 나서 왕따 당했다고 말했다 합니다. 왕따라는 말만 듣고 감정에 치우쳐 딸 친구를 나쁜 친구로 단정한 자신이 부끄럽다고 하네요. 다음 날 딸이 먼저 사과하고 둘은 예전처럼 친해졌다고 합니다.


“서로 화해하며 넘겼던 작은 일도
자칫 어른들 감정싸움으로 확대
자녀 스스로 해결하도록
잠시 지켜보고 대화하며 넘겨야”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처럼 자녀에 대한 부모의 걱정은 모두 같습니다. 하지만 예전보다 자녀 수가 적고 부산 여중생 집단폭행 등 학교폭력이 흉포화되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지나치거나 잘못 표현되기도 합니다.

예전에 읽은 ‘싸움구경’이라는 동화책이 생각납니다. 엄마들의 지나친 사랑과 감정싸움으로 아이들은 힘들어하고, 그런 엄마들의 싸움을 아이들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순수한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동화책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새로 이사 온 시우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장난꾸러기 유민이는 시우를 처음 만날 날부터 ‘이보시우, 어디 가시우?’ 이런 식으로 이름 말장난을 쳤지만 악의가 없어 둘은 금세 단짝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장풍쏘기 놀이를 하다 시우가 실수로 넘어져 얼굴을 크게 다쳤습니다. 상황을 모르는 친구들은 평소 장난기 많은 유민이가 시우를 밀어서 다친 것으로 이해하고 선생님께 말하였습니다. 시우 엄마는 크게 다친 시우를 보고 어떤 상황에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인지 알려고 하지 않고 유민이를 나쁜 아이로 단정 지어 버립니다. 이 일로 시우 엄마와 유민이 엄마는 서로 서운한 감정을 느끼고 결국 어른들 싸움으로 번집니다. 아직 둘은 단짝이지만 엄마들 감정싸움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나중에는 스포츠 캐스터가 되어 엄마들 싸움을 중계놀이까지 합니다. 두 가족은 우연히 식당에서 만나게 되었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사이 좋게 노는 시우와 유민이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넘깁니다.

아이싸움이 어른싸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걸로 이해하고 넘어가던 일도 자녀가 적은 요즘 부모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폭행, 집단 따돌림 등 학교폭력으로부터 불안한 요인도 있지만 내 자녀만을 위한 지나친 사랑이 어른들 감정싸움으로 커지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 학교폭력위원회 개최 횟수가 대폭 증가하였습니다. 게다가 가해학생 연령이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낮아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학교폭력이 하나둘 드러난 영향도 있겠지만, 예전에 서로 화해하며 넘겼던 작은 일까지 학교폭력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나 담임교사는 사건을 은폐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학생 간 중재보다 매뉴얼에 따라 사안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지금까지의 도덕 교육은 내가 남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쳤습니다. 이제는 내가 아닌 우리 속에서 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실수할 수도, 피해를 주고받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있어 이런 실수는 더 자주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학교폭력은 관계 갈등에 대처하는 방식이 서툴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가해학생 처벌에 무게를 둔 응보적 생활지도로는 관계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자녀의 모든 걸 해결해 주기 위해 급하게 나서기보다 자녀 스스로 관계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잠시 기다리며 대화하는 건 어떨까요?

신민식<대구학생문화센터 교육연구사·교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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