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공연여행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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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2 07:50  |  수정 2018-01-12 07:50  |  발행일 2018-01-12 제16면
[문화산책] 공연여행 Ⅱ
백운선<연극배우>

공연자인 나를 섭외하는 등 공연의 실무를 담당한 교사는 1학년 담임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영주는 벌써 겨울이에요. 추우시죠?” 그제야 나는 긴장감이라 여겼던 오싹함의 정체가 추위였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호쾌한 웃음이 매력적인 선생님의 안내로 오늘의 공연장으로 들어선다.

공연장인 다목적실은 교실 두 개를 합한 크기의 작은 강당이다. 연한 황톳빛 마룻바닥에 햇살이 가득 들어와 있다. 내가 추울까봐 걱정인 선생님은 커튼을 확 열어젖히고 난방기부터 켠다. “제가 사실은 서울 국립극단 야외무대에서 둥둥님 공연하는 거 봤거든요. 매진돼서 공연은 제대로 못 보고 소리로만 들었어요. 꼭 우리 아이들한테 둥둥님 공연 보여주고 싶었어요. 정말 영광이에요.” 나는 주책없이 눈물이 핑 돈다. ‘아… 인연이 돌고 돌아 또 이렇게 만나지는구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관객들 중에 이렇게 나의 공연을 기억해주는 이가 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감동이 일었다. “강당은 마음껏 쓰고 필요한 게 있으면 편하게 인터폰으로 저 부르면 돼요. 지금 수업 중이라 또 들어가봐야 하거든요. 우리 새끼들 정글북 틀어주고 나왔는데 잘 보고 있나 가봐야지요. 하하하.” 선생님의 말에서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자, 그럼 준비를 시작해볼까? 대구에서부터 나를 따라온 은색 캐리어 가방을 연다. 이 가방 속에는 나의 작은 무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간혹 내가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본 이들은 입을 쩍 벌리고 묻곤 한다. “아니, 그게 거기에 다 들어가요?” 물론이다. 나는 이 가방에 넣어서 다닐 수 있는 세트와 소품만을 사용한다. 조립식으로 만든 종이 세트를 차례차례 무대 위에 설치하고 소품들을 제 위치에 두고 혼자서 리허설을 진행한다. ‘옆집 사는 연극쟁이 둥둥’은 독립공연예술가다. 말 그대로 혼자 창작하고 제작한 1인극 공연으로 전국을 유랑한다.

약속한 공연시간 10분 전. 드디어 다목적실 출입문이 열린다. 유치부, 초등 전 학년, 선생님 등 60명의 관객이 순식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120개의 눈동자가 나만을 쳐다보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음악이 재생되고 공연이 시작된다. 내가 첫발을 내딛기가 무섭게 관객들은 박수로 나를 맞이한다. 웃겨도 박수를 치고, 슬퍼도 박수를 치고, 속이 시원하면 더 큰 박수를 친다. 나는 그야말로 박수 소리를 먹고 자라는 식물처럼 의기양양하게 40분의 공연을 무사히 마친다. 내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지만 가슴에는 시원한 바람이 일렁인다. 어린 관객들은 나에게 “진짜 연극 처음 봤어요” “둥둥 배우님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넨다. 나는 “고마워 얘들아, 오랜만에 최고의 관객을 만났단다”라고 화답한다. 가을의 끝자락이었다.
백운선<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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