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쥐고 불 앞에 서는 순간 세상의 모든 걸 다 가진 기분”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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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2   |  발행일 2018-01-12 제35면   |  수정 2018-01-12
남성훈 ‘갓포요리전문 야사오미나미’ 셰프
■ 셰프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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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포요리전문점 ‘야사오미나미’의 남성훈 셰프는 직접 홀서빙을 한다. 일본 정통요리의 맛은 물론 수준 높은 서비스까지 함께 보여주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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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레스토랑이나 카페처럼 현대적인 멋을 풍기는 ‘야사오미나미’ 전경. 하지만 음식맛은 일본정통식을 고집한다.


흔히 ‘금수저’를 부러워하지만 과연 이들은 행복할까. 이것이 오히려 자신의 삶에 굴레가 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여기서 벗어나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한다. 남성훈 셰프(39) 역시 이들 중 한명이다. 남들이 보면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하겠지만 30여년간 아버지(남이식 <주>제일산업 대표이사)가 일궈놓은 사업을 물려받아야 할 상황이 힘겨웠다. 긴 고민 끝에 그는 용단을 내려 셰프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갓포요리전문점 ‘야사오미나미’(대구 수성구 달구벌대로 2346-10, 053-741-4396)를 열었다.

어떤 힘든 일이라도 이겨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시작하고 보니 식당이라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이 남 셰프의 솔직한 말이다. 그래도 그는 요리가 즐겁단다. 맛있고 건강한 요리를 만드는 과정부터 손님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를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과정이 그 정도의 어려움은 달게 삼키게 해준다. 또 손님들이 자신이 만든 요리의 참맛을 알아줄 때 그는 야사오미나미를 이끄는 셰프라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한다.


아버지가 일군 사업 이어받을 ‘금수저’
패션·요리 좋아하던 그에겐 외려 굴레
父 반대에도 의상 전공 관련 업계 취업

그 행복도 1년…아버지 권유로 加 연수
귀국후 아버지 회사서 8년간 일하던 중
여전히 적성에 맞지 않음을 자각 ‘사표’

日 공부 갔다가 음식에 빠져 진로 변경
조리사학교 졸업후 귀국 일식당서 3년
작년 대구에 日 정통 갓포요리점 오픈


▶대학에서 의상과를 졸업했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패션과 요리를 좋아했다. 요리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직장을 나가셔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요리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맛도 괜찮았던 것 같다. 그런데 요리는 일상생활에서 늘 하는 것이라 셰프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부모님께는 죄송했지만 고등학교 때 야간자율학습시간 등을 빼먹고 패션디자인학원에 등록해 디자인공부를 했다. 학교 공부는 지겨웠지만 패션디자인 공부는 너무 재미있었다. 앙드레김, 최복호 등 남자패션디자이너들의 마음을 알 듯했다. 패션이 너무 매력적이라는 것을. 그래서 부모님을 설득해 대학을 의상과로 정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없었는가.

“어머니는 늘 나의 편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지지해주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좀 실망하셨다. 당연한 반응이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일궈온 사업을 내게 물려주고 싶어하셨다. 하지만 내가 워낙 패션디자인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아버지께서 많이 양보해 허락해주셨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패션업체 등에서 근무하는 것도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는 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 것 같다. 아들의 결정에 동의해주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도 많이 나무라지 않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도록 해주신 것이 지금도 감사하다.”

▶패션업체와 아버지 사업체에서도 몇 년 근무했다고 들었다.

“졸업하자마자 최복호 패션디자이너가 꾸리는 사업체에서 1년간 근무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이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권해 퇴사하고 캐나다에서 1년6개월 정도 어학연수를 했다. 아버지는 미국 등에 수출할 때 언어소통이 안 돼 저의 도움을 받고 싶어하셨다. 내가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패션업체에서 근무하는 것에 큰 반대를 하지 않은 아버지의 심적 고통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학연수 후 마음을 고쳐먹고 아버지 사업체에서 8년간 근무했다. 아버지 밑에서 회사 일을 차근차근 배우면 나의 마음도 변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말인 것 같다.

“사업체를 경영하는 것이 나의 적성에는 도무지 맞지를 않았다. 매일 출근을 했지만 아버지와 직원들께 죄송할 정도로 건성으로 일했던 것 같다.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으니 대충 일을 하였고 직장에 나와있는 것이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 당시 사업체에 100명 가까운 직원이 있었는데 솔직히 이들을 먹여 살릴 자신이 없었다. 내가 혼자 장사를 할 경우엔 안되면 나 혼자 고통을 당하면 되는데 아버지의 회사를 잘못 경영해서 사업이 망하면 그 직원과 가족들을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다고 열심히 할 마음도 없었으니 수백번 고민 끝에 회사를 나왔다. 아버지가 많이 말렸는데도 도무지 마음이 돌아서지를 않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아버지에게 많이 죄송하다.”

▶요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패션디자인과 관련한 일을 해도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에서 나온 뒤 결혼하고 곧바로 일본으로 갔다. 일본에도 제품을 수출하던 아버지가 일본어는 물론 우리보다 앞서있는 일본의 문화에 대해 공부를 하고 오라는 배려였다. 그런 공부를 하다보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한 것 같다. 그래서 일본에 머물며 일본의 여러 문화와 그들의 삶 등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러던 차에 일본이 한국보다 음식문화가 발달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요리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오사카의 쓰지조리사전문학교에서 1년과정을 졸업하고 귀국해 서울의 여러 일식당에서 3년 정도 일했다. 그러니 일식당 경영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 정도 붙었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하자 싶어서 지난해 서둘러 가게문을 열었다.”

▶식당이 아담하지만 현대적이면서도 깔끔하다. 이렇게 인테리어를 한 이유가 있는가.

“일본음식문화의 특징은 맛도 중요시하지만 음식을 편안하면서 품위있게 먹을 수 있는 서비스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는 점이다. 예전에 비해 한국 요리의 맛이 상당히 높아진 것 같다. 하지만 친절 등의 서비스, 식당의 인테리어 및 음악 등에는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 야사오미나미에서는 맛과 함께 이러한 제반 서비스를 최상으로 제공하려 한다. 그래서 직원 교육은 물론 인테리어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다.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스피커를 최고급으로 설치했으며 음악 선곡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손님들의 반응은 어떤가.

“솔직히 말해 아직까지 이러한 특색을 잘 못느끼거나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는 분들도 있다. 인테리어나 음악 등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또 꿇어앉아서 메뉴를 받으며 외투를 벗겨서 옷걸이에 걸어주고 음식을 드신 후 나갈 때 문앞까지 배웅을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도 있다. 일본 정통요리를 하다보니 입맛에 안맞아 하거나 양이 적다는 분들도 있다. 아직까지 맛, 양, 가격 등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분들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최근 서서히 입소문이 나고 있는 것 같다. 한번 와 본 분들이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오셔서 야사오미나미만의 음식은 물론 서비스를 즐기는 분들이 늘고 있어 다행이다.”

▶갓포요리를 전문적으로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갓포(割烹)에서 갓을 의미하는 ‘割’은 자르고 쪼개고 다지는 등 칼로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말한다. ‘烹’은 끓이거나 삶거나 조리거나 하는 등 불로 조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칼과 불로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칼 쓰는 기술과 불 다루는 기술 등이 뛰어난 조리를 의미한다. 전문 조리사가 만든 고급요리라 할 수 있다. 야사오미나미에서는 뛰어난 맛과 품질의 일본 정통요리를 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식재료부터 식기까지 대부분의 물품을 일본에서 수입해서 쓴다고 했다.

“일본 정통요리를 추구하는 만큼 가급적 일본의 맛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아버지께서 취미로 사진을 찍는데 일본에서 찍은 사진작품들도 걸어두었다. 한국이지만 야사오미나미에 들어오는 순간 일본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했다.”

▶앞으로의 식당 운영계획에 대해서도 생각해둔 것이 있을 것 같다.

“현재는 일본 정통요리를 선보이지만 식당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정통요리에 나만의 창작을 곁들인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려 한다. 지금도 정통요리를 하면서 틈나는 대로 야사오미나미만의 요리를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식당 개업 후 4~5시간 이상 자본 기억이 없다. 늘 바쁘고 고민스럽다. 좀더 건강하고 맛있고 개성 있는 일본 요리를 보여주기 위해 메인요리는 물론 밑반찬류, 후식 등도 식당에서 직접 만들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재미있다. 칼을 쥐고 불 앞에 서는 순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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