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청도 매전면 용산리 불령사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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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2   |  발행일 2018-01-12 제36면   |  수정 2018-01-12
절벽 꼭대기엔 千佛千塔을 제 몸에 지닌 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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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령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탑. 문양전으로 쌓은 전탑으로 경북문화재자료 제294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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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령사 전탑을 이루는 문양전. 불상과 불탑 문양이 탑신을 이루어 천불천탑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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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각에서 대웅전 가는 계단 가운데에 배롱나무 한 그루와 부처상이 계곡 아래를 바라보며 서 있다. 왼쪽이 대웅전 건물.

지난 가을 이후 다시 청도 매전면으로 향한다. 하평리 은행나무를 지나며 심장이 멎는 듯 하다. 너는 잘살아 왔느냐. 검은 가지만 남은 거대한 나무는 지옥의 신처럼 자기검열을 강요한다. 좋지 않아, 라고 생각한다. 매전면소재지를 관통하는 동안, 2차로 도로의 소실점에서 불쑥 솟아난 처진 소나무 한 그루가 물귀신처럼 잡아끈다. 어떤 나무들은 사람의 혼을 앗아간다. 엉뚱한 길로 한참을 간 후에야 부주의를 알아차린다. 다시 매전면소재지에서 밀양 방향으로 접어든다.

호랑산으로도 불리는 해발 600m 효양산
계곡 옆 좁은 땅에 층층이 자리한 전각들
불심이 계곡에 충만하다는 뜻 ‘불령사’

곳곳 보물찾기하듯 놓인 작은 불상·탑
절집·마을 내려다뵈는 암벽 위 3층 전탑
탑·불상 문양 벽돌로 쌓아올려 더 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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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리 호랑산 혹은 효양산

남쪽으로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용산리, 불령사(佛靈寺) 이정표를 만난다. 용산리 초입은 마을 도로 확장 공사로 어지럽다. 마을 안에도 집 짓는 공사가 한창이라 한동안 트럭들과 교행한다. 소위 펜션형이라 할 만한 집들이 많이 보인다. 마을이 끝났다고 느껴질 즈음 다시 몇 채의 집들이 나타난다. 궁전 같은 집이다. 규모보다도 어찌 이 외진 땅을 알고 찾아들었을까 하는 놀라움이 더 크다. 그만큼 깊고 외지다. 산에서부터 차 한 대가 내려오더니 쌩 지나간다. 운전대 앞 회색 승복 자락을 얼핏 보았다. 스님의 출타다.

‘불령사 600m’ 표지판에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다. 대단한 된비알이다. 온몸에 힘을 꽉 들인 채로 앞만 보고 달린다. 주변을 돌아볼 여지는 전혀 없다. 이 산을 마을 사람들은 효양산(孝養山)이라고 부르는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호랑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해발 600m에 조금 못 미치는 높이로 기울기와 우거짐이 대단하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다. 생각지도 않게 제법 너른 주차장에 도착한다. ‘원효대사 구도의길’ 안내판, 불령사 표지석, 전기불사 공덕비가 가장자리에 서있다. 이곳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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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불상(위)과 손가락 두 마디만 한 탑이 놓여 있다.

계곡을 건너 절집으로 향한다. 꽤 넓은 계곡이다. 옹골찬 바위 무더기를 요리조리 피해 계곡물이 흐른다. 음지에는 하얗게 얼음이 얼었다. 강아지 두 마리가 포르르 달려온다. 순간 멈칫한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반드시 전탑을 보고 말겠다는 대단한 각오를 한다. 강아지들은 짖지도 않고 한없이 착한 눈으로 꼬리를 흔들며 잠시 따라오더니 절집 앞에서 멈춘다. 불령사, 불심이 계곡에 충만하다는 뜻이다.

◆불령사

절의 창건이나 연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없다. 다만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5년 원효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할 뿐이다. 그 뒤 긴 세월의 연혁은 비어 있다가 1912년에 낡고 허물어진 사찰을 봉주(奉周) 스님이 중창하고 1930년에 이종태(李鐘台) 주지가 중수했다고 한다. 이후 다시 허물어진 것을 1985년 지선 스님이 요사와 산신각을 지었고 2000년에는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 등을 새로 지었다.

불령사의 건물들은 계곡 옆 좁은 땅에 층층이 자리하고 있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오른쪽에 나무빛깔 고운 승방과 용왕각이 자리한다. 옆으로 난 계단이 대웅전으로 향하는데 가운데에 배롱나무 한 그루와 아름다운 부처상이 계곡 아래를 바라보며 서 있다.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다. 기둥을 세워 만든 앞마당에 가건물을 세워 두 개의 건물이 밀착해 마주보고 있다. 그사이 좁은 길을 통과해 다시 계단을 오르면 산신각이다. 기단을 돌로 촘촘이 쌓아 마치 석성 같다. 산신각 옆 바위벼랑 아래 놓인 나무의자 하나가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곳곳에 손가락 두 마디만 한 탑이 보물찾기처럼 놓여 있다. 다시 계단을 오른다. 탑이다.

◆천불천탑, 불령사전탑

기암절벽 위 가장 높은 자리다. 가장 넓고 깊은 시선을 가진 자리다. 불령사 전각들의 지붕과 저 아래 아스라한 마을까지 눈길이 닿는다. 탑은 3층의 전탑이다. 탑을 이루는 하나하나의 벽돌마다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벽돌을 ‘문양전(文樣塼)’이라 한다. 절 아래에서 벽돌을 구워 신도들이 한 장씩 옮겨와 탑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대략 옥개에는 암벽 위에 정자가 올라 있는 문양이다. 탑신 받침에는 당초문양이 새겨져 있다. 탑신을 이루는 하나의 전(塼)에는 불탑과 불상이 번갈아 배치되어 있다. 불상은 연화 대좌 위에 앉아 있고 몸 전체를 감싸는 광배를 갖추고 있다. 불상의 머리에는 큼직한 육계를 두었으며, 법의는 한 줄기의 옷자락이 배에서 흘러내려 대좌까지 이른다. 불탑은 3층이며 탑과 불상 사이의 여백에는 구름이 흐른다. 불령사 전탑은 수많은 탑과 수많은 불상을 제 몸에 지녀 천불천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양식으로만 보면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원형은 알 수 없으나 탑의 모습이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사진은 일제 강점기 때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때 탑은 3층이다. 이후 파괴되었는데 일제에 의한 것이라 여겨진다. 한동안 무너진 채 방치되었던 탑은 1968년에 5층으로 세워진다. 그리고 2009년에는 완전히 해체하여 현재의 3층으로 보수했다. 오래된 전을 최대한 사용해 복원했다고 한다. 마주보는 자리에 탑을 보수하는데 동참했던 이들을 기리는 공덕비가 서 있다. 전탑은 우리나라에서 드물다. 문양전으로 쌓은 전탑은 더욱 희귀하다. 탑은 새것의 느낌이 물씬 난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천개의 불상 하나하나 불탑 하나하나가 커다랗게 자라나 주위를 가득 채우는 느낌이 든다. 잘 살아, 그럴 수 있을 거야, 라고 말하는 듯한 따뜻한 포위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매전면의 처진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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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인 매전면 처진 소나무. 수령 200년 정도로 추정.

매전면소재지를 거의 벗어날 즈음 오른쪽 길 아래에 자리한다. 청도 유천을 향해 큰 몸을 끌고 가다 지친 듯 그 자리에 서있는 나무 한 그루다. 수령은 200년 정도로 추정되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옛날 어느 정승이 이 나무 옆을 지나는데, 갑자기 큰절을 하듯 가지가 밑으로 처지더니 다시 일어서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무 옆은 공터인데 원래 고성이씨의 선조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무는 묘소 둘레에 심은 도래솔로 1940년경까지는 2그루가 더 있었다고 한다. 몇 년 전 묘지는 이장을 해가고 지금은 나무 홀로 서 있다.

☞ 여행정보

청도읍에서 운문·경주 방향 20번 도로를 타고 간다. 매전면소재지에서 밀양방향 58번 지방도로로 가다 용산리 방면으로 우회전해 용산리 삿갓마을 안길을 따라 계속 오르면 된다. 산길이 좁고 가팔라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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