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화의 패션스토리] 2017 F/W 트렌드 뒷이야기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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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2   |  발행일 2018-01-12 제40면   |  수정 2018-01-12
‘극과 극의 조화’…상식 깬 디자이너의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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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 있어서 창의력이란 무궁무진하다. 디자이너들의 창의력이 모든 대중을 이해시키거나 필수적으로 인정받을 필요는 없다. 디자이너의 사명은 그저 새로운 발상과 시선을 제안하고 대중들의 눈앞에 선사하면 된다. 각자의 취향이 있고, 대중은 그것을 선택해서 입으면 되는 것이다. 2017 F/W에서도 수많은 트렌드가 선보였고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이들 중 어떤 것들은 트렌드로 자리매김하지는 못했으나, 그저 디자이너의 창의적 발상이라 생각하며 한 번 보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것들도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훗날 다시 소환되거나 그 창의적 재해석이 기다려지는, 디자이너들의 기발한 상상력의 흔적을 살펴볼까 한다.

먼저 미우치아 프라다의 프라다 2017 F/W에서는 목가적인 무드의 니트 브라톱에, 발리나 보라카이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을법한 조개 목걸이를 매치했다. 이번 시즌 ‘프라다 컬렉션’이라 하면 퍼 모자와 슈즈, 그리고 소매부분을 풍성한 퍼로 장식했던 곰돌이 코트 정도는 상당수 사람들이 기억하나 조개목걸이를 기억하는 사람을 별로 없을 듯 하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렇듯 전혀 다른 느낌이나 주제, 또는 쉽게 연관 짓기 어려운 소재들이 만났을 때 일어나는 낯선 스타일에 대한 거리감을 깨뜨려 버리는 비상한 감각의 소유자다. 마치 어떠한 경계나 금기사항 하나 없는 천진한 아이의 눈으로 돌아간 듯 하다. 그녀가 보여준 그간의 행보를 보면, 신인의 강한 도전과 노장의 노련함까지 두루 갖춘 디자인의 아이템들이 다수 있었다.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라는 경의가 조금도 아깝지 않다.


프라다, 한겨울 니트에 조개목걸이 장식
구찌 역시 계절감 무시한 밀짚모자 매치
쿠튀르적 드레스에 펑키한 선글라스도

데님팬츠 허리춤·가슴 정중앙의 브로치
패딩 턱시도와 스케이트 구두 등 독특


미우치아 프라다에 견줄만한 인물로 독특한 발상이 늘 기대되는 구찌의 알렉산드로 미켈레. 그가 이번 F/W에서 메인 테마로 선보인, 루저 느낌의 ‘너드 판타지’ 뒤에는 놓치기에 너무 아까운 요소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여름에 주로 사용되는 밀짚으로 만든 모자를 F/W 시즌에 선보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챙이 아주 커다란 이 밀짚모자는 계절감을 무시한 채 새틴 슈트 또는 부츠 차림에 함께 매치됐고, 뱀부 손잡이가 달린 백 역시 턱시도와 함께 선보였다. 밀짚 소재는 겨울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에 맞서는 새로운 발상을 제시한 것이다. 화려한 쿠튀르적인 드레스 위에 우아함 보다는 펑키시한 무드의 선글라스를 매치한 점 또한 그다운 과감한 도발로 쿠튀르의 수공예적 정교함과 반항적이고 조금은 거친 이미지의 독특한 조합을 시도함으로써 특별한 잔상을 남긴 것은 틀림없다.

이참에 독특한 매치로 패션계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디자이너들을 살펴보자. 이번 시즌 최강 트렌드 중의 하나인 애슬레저 룩의 믹스. ‘애슬레저’ 스타일은 운동 선수들이 착용할 만한 편안한 느낌의 스타일을 뜻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선한 애슬레저 스타일을 꼽아보라고 하면 단연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스타일링이다. 풍성한 러플 장식 드레스에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스판 소재 타이츠를 매치해 우아하지만 위트 있는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지극히 여성스럽고 품격 있는 브랜드와 활동감을 상징하는 스포츠 브랜드의 만남에다 컬러는 모두 도시적이고 시크한 블랙으로 무장했다.

토가·르메르·필립 림 등 패션 메가 도시의 트렌디한 브랜드에서는 간결한 방식으로 그들의 창의력을 발산하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브로치를 의외의 곳에 달아 신선함을 주었는데, 데님팬츠의 허리춤이나 가슴 정중앙, 단추 바로 옆부분 같은 지점에 달아 아주 쉽게 독특한 패션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패션은 늘 일상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 힘을 실어주듯 이번 시즌, 가장 일상에 가깝고 평범하게만 느껴졌던 앞치마를 스타일링에 적용한 마라렛 호웰, 마리앰 나시르 지데 등 신인 디자이너들의 상상력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편 컬러 조합에 있어서 그들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선보인 디자이너들도 있다. 겨울에 쉽게 볼 수 없었던 형광색을 과감하게 적용한 마르지엘라와 코쉐, 그리고 푸치를 언급할 수 있겠다. 형광색은 사실 다른 컬러와 쉽게 융화되지 못해 스타일링에 활용하기에는 난감한 컬러다. 그런 어려운 컬러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디자이너들의 선구적인 마인드와 창의성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 형광 연두와 베이지와의 만남, 핑크와 형광 주황의 만남 등 기이한 컬러 조합이 자아내는 참신함은 이들의 도전적인 마인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등산화와 여성복의 만남을 이끌어낸 비비안 웨스트우드, 그리고 패딩 소재의 턱시도와 스케이트 구두를 만든 톰 브라운의 혁신적 창의성도 놓쳐서는 안될 부분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등산화 특유의 투박함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해 그녀의 해체주의적 드레스와 함께 매치했는데, 컬러풀한 끈과 흙색 가죽 등의 기묘한 조합은 역시 상식과는 충돌하며 끊임없이 기발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그녀만의 스타일과 어울림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조금은 마이너적이고 비상식적인 그들의 디자인 아이템들은 일반적으로 대중이 원하는 스타일에는 어긋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렌드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디자이너의 자질은 일단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잘 팔리는 옷을 만들고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겠지만,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디자이너들이 있음으로 인해 패션은 늘 새롭게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패션저널리스트 mihwac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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