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다운사이징·찰스 디킨스의 비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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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2   |  발행일 2018-01-12 제42면   |  수정 2018-01-12
하나 그리고 둘

다운사이징
스스로 小人이 된 사람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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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저버린다고 하기엔 가혹할지 몰라도, 기대를 벗어난다는 표현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예고편이 문제다. ‘맷 데이먼’ 캐스팅도 처음부터 끝까지 짜릿하고 화끈한 할리우드 영화일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준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다운사이징’(감독 알렉산더 페인)은 환경오염, 인류존속, 자본주의, 빈부격차, 인종문제, 구호활동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진지하게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다. 스스로 작아진 인간들이 겪게 되는 ‘모험’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찬찬히 우리네 삶과 사회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인구과잉 해결책으로 개발된 인간축소 프로젝트
알렉산더 페인 감독 기발한 상상…맷 데이먼 주연



‘다운사이징’은 인구과잉으로 인한 식량부족과 환경오염에 대한 해결책으로 개발된 기술이다. 이것은 몇 시간 안에 키가 177㎝인 성인을 12.7㎝로 만들어 주는 획기적인 시술로, 이렇게 만들어진 소인들은 1억이 120억의 가치가 된 세상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막상 레저랜드(소인들이 모여사는 곳)로 들어간 ‘폴’(맷 데이먼)은 여기에도 노동의 고단함뿐 아니라 생로병사와 빈부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의 앞에 베트남 반체제 인사였다가 강제로 다운사이징을 당한 여성, ‘녹 란’(홍차우)이 나타나면서부터다. 녹 란이 데리고 간 빈민촌을 두리번거리는 폴의 눈은 마치 레저랜드를 처음 접하던 때처럼 놀라움으로 가득 찬다. 경이로움 대신 충격이 그 기저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각각 숙고해볼 필요가 있는 영화의 여러 주제 중에서 가장 깊숙이 파고드는 것은 인류를 위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돕는 녹 란은 인류구제라는 미명하에 허황된 꿈을 안고 레저랜드로 들어온 이들과 대비를 이룬다. 물론, 다운사이징의 개발자처럼 진심으로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는 이들도 등장한다. 그러나 북유럽 피오르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그들이 택하는 극단적인 생존 방식은 사실상 대단히 ‘부자연’스럽다. 아직 근육통조차 고치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동시대 관객들에게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결국 ‘작아질 수 있다면 작아지시겠습니까?’가 아니라 ‘지금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일 것이다. 너무 도전적이라서 심리적으로 부대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바꿔줄 동력임은 확실하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35분)


찰스 디킨스의 비밀서재
동화 ‘크리스마스 캐롤’ 탄생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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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典)’이 탄생하기까지의 뒷이야기는 관객들의 구미를 당기는 소재다. 성공적 사례인 ‘비커밍 제인’(감독 줄리언 재롤드)은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등을 저술한 제인 오스틴의 젊은 시절을 극화한 영화이며, ‘셰익스피어 인 러브’(감독 존 매든)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쓸 당시 셰익스피어의 러브 스토리를 담은 작품이다. 공히 작품에 영향을 미치게 된 작가들의 경험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증된 자료에 근거했다기 보다는 작품을 통해 작가를 상상해냈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찰스 디킨스의 비밀서재’(감독 바랫 낼러리) 또한 유사한 기획에서 시작된 영화로, 이번에는 디킨스의 작품들 중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사랑 받아온 ‘크리스마스 캐롤’이 탄생하게 된 비화가 소설만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성공 이후, 16개월 동안 세 편의 소설이 평단과 독자들에게 외면을 받으며 슬럼프를 겪고 있던 찰스 디킨스(댄 스티븐스)는 크리스마스까지 재정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위기에 놓인다. 골머리를 앓던 그에게 어느 날 유령의 환상이 나타나고, 우연히 묘지를 지나치는 경험까지 하게 되면서 ‘이기적인 인간이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몇 차례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그는 결국 6주 안에 소설을 완성시키고, 세월을 거치며 그 소설은 크리스마스를 낡은 종교 기념일을 넘어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가족 및 이웃과 함께 보내는 날로 재정립하기에 이른다. ‘The Man Who Invented Christmas’라는 원제는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작가 디킨스와 스크루지 캐릭터 내세워 즐거움 선사
CG 지양하고 유령까지 고전적 방식으로 처리 눈길



영화는 찰스 디킨스라는 작가와 스크루지라는 개성 있는 캐릭터를 앞세워 크고 작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우선, 해학을 담고 있는 디킨스의 전기 소설을 표방하듯 영화는 아기자기한 유머로 가득 차 있는데, 위대한 문호인 디킨스가 친근하고 다정한 이웃집 청년처럼 다가오는 것은 영화의 이러한 전반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재치 있는 상황 설정과 대사들이 디킨스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나 ‘크리스마스 캐롤’ 속의 어두운 장면들까지도 적절히 상쇄하며 밝은 톤을 유지시켜 준다. 또한 작은 디테일에도 디킨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묻어나는데, 그가 창조해낸 인물들이 서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장면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사회 계급의 문제를 다루었던 디킨스의 후기 작풍이 연상되고, 그가 버릇처럼 수집하는 이름 중에는 훗날 쓴 작품의 캐릭터 이름도 등장해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또한, 컴퓨터 그래픽을 지양하고 스크루지를 찾아오는 유령들의 모습까지 고전적 방식으로 처리한 점도 눈에 띈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정교하게 구현된 19세기 런던의 집이나 거리와도 괴리감 없이 잘 어울리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찰스 디킨스의 시선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 의의가 크다. 스크루지가 경험하는 꿈 속 신세계를 첨단의 기술(3D 애니메이션)로 보여주고자 했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크리스마스 캐롤’(2009)과 비교해 본다면 그 의도는 명확해진다. 이 영화에서 관객들은 그 시절, 디킨스의 상상 속에 구현된 것과 최대한 가까운 이미지로 인물들을 만나 볼 수 있다. 2018년에는 드문 영화적 체험이다.

작가의 경험과 상상력이 맞물려 한 편의 고전이 극적으로 완성된다는 서사 구조는 평범하지만 스크린에서 부활한 매력적인 찰스 디킨스부터 러닝타임을 꽉 채운 세심한 디테일과 유머감각까지, 즐길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판타지,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104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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