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진태役 박정민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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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2   |  발행일 2018-01-12 제43면   |  수정 2018-01-12
“완성된 영화 보는 내내 눈물…너무 슬프고 엄마 생각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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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이 말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한물간 전직 복서 조하(이병헌)에겐 하나부터 열까지 보살핌이 필요한 서번트 증후군 동생 진태가 있다. 헤어진 지 17년 만에 우연히 만난 엄마(윤여정)에게 몸을 잠시 의탁하기 위해 따라나선 집에서 처음 마주했다. 엄마 곁에서 늘 껌딱지처럼 붙어 지내온 진태에게도 난생 처음 보는 형은 두렵고 낯선 존재다. 게임을 잘 하고 라면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은 피아노인 진태의 삶에 분명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그런 진태를 통한 가족의 치유와 화해를 다뤘다. 지난해 ‘동주’로 신인남우상 6관왕을 석권했던 박정민이 진태 역을 맡았다. 최적의 만남인 셈이다. 박정민은 “읽자마자 너무나 하고 싶었다”며 “연기 생활에 있어 가장 특별한 경험”이라고 했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이해도가 높고, 치열한 준비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캐릭터를 완성해왔던 그에겐 분명 가슴 뛰는 도전이었을 듯하다. 이번에도 그는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사실적인 서번트 증후군 연기는 물론 모두가 반신반의했던 피아노 연주 장면에선 마치 건반 위에서 춤을 추듯 했다. ‘불가능은 그저 하나의 의견일 뿐’이라는 알리의 말이 고스란히 박정민에게 적용되는 순간이다. 함께 호흡을 맞춘 이병헌과 윤여정이 이구동성으로 “재능도 특별하지만 노력과 성실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찬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게 박정민은 누구보다 근사한 연기를 해냈고,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자신의 필모를 장식했다.

▶서번트 증후군 연기와 수준급의 피아노 연주까지 보여줬다. 준비하면서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 같다.

“촬영하기 전까지는 부담감이 없었다. 시나리오를 너무 재밌게 읽었고 게다가 이병헌 선배님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기회여서 무조건 해야겠다는 의욕만이 앞섰다. 그런데 막상 촬영이 시작되니까 그 때부터 부담감이 막 밀려왔다. 나만 좋다고 덜컥 결정하면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하는 내내 고민했다. 게다가 피아노 연주까지 내가 직접 하겠다고 던져 놓은 상태라 이를 수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준비과정이 필요했다.”

▶이병헌뿐 아니라 윤여정 선생과도 호흡을 맞췄다. 캐스팅 조합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물론이다. 하지만 두 분과 연기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적어도 초반까지는 그랬다. 전에는 (강)하늘이나, (이)제훈이, (강)서준이 등 또래들과 주로 했기 때문에 실수해도 부담이 없고 아무래도 편했다면 이번에는 완전히 달랐다. 대본에 나온 그대로 연기를 해야 될 것 같았고, 전처럼 미리 준비하거나 즉흥적인 애드리브는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그런데 기우였다. 한번은 무심결에 애드리브를 툭 던진 적이 있는데 선배님이 흔쾌히 받아주는 거다. 순간 힘이 났다. 특히 이병헌 선배님은 내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모두 받아주었고, 하지 말라는 얘기는 절대 안했다. 그러다 보니 선배님을 대하는 게 편해졌다. 그렇게 선배님은 촬영하는 내내 내 마음속의 ‘갓병헌’이었다.”


한물간 전직 복서 형-서번트증후군 동생
17년만의 만남 통해 가족 화해 다룬 영화
대선배 이병헌·윤여정과 연기 호흡 척척

피아노에 천재적인 서번트 증후군 연기
“읽자마자 너무 하고파” 가슴 뛰는 도전
자신만의 色 입히기 위해 특수학교 봉사
“난생 처음 만져본 피아노 6개월 맹연습”
대역·CG 없이 수준급의 연주 실력 발휘



▶극 중 피아노 연주를 대역이나 CG 없이 본인이 다 소화했다는데 어떤 연습과 준비과정을 거쳤나.

“첫 미팅을 할 때 감독님에게 내가 다 해보겠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피아노 건반은 그 때 처음 만져봤다. 미팅 후 바로 피아노 학원에 등록해서 6개월을 연습했다. 솔직히 나 스스로도 해낼지 몰랐는데 극 중 한지민 선배와 연주한 ‘헝가리 무곡’은 엇비슷하게 연주가 가능할 정도가 됐고, 쇼팽과 차이콥스키 곡도 초반 어느 정도까지는 칠 수 있게 연습해 놓았다. 물론 곡에 맞춰 손동작을 연기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며 다들 놀라셨다. 사실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진태의 손동작은 일반인과 달라서 어차피 대역을 쓸 수가 없었다.”

▶극 중에서 보여준 서번트 증후군 연기 또한 사실적이었다. 그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통해 체득한 건가.

“특수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그들을 따라해볼 생각으로 봉사활동을 한 건 아니고 일반인과는 다른 그들만의 특징을 제대로 관찰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원봉사를 담당하는 선생님이 오시더니 반 아이들의 특징적인 행동은 따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럴 의도는 없더라도 함께 생활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먼저 자폐증 연기를 했던 분들도 분명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했을 테고, 그렇다면 비슷한 연기가 나올 수도 있겠다고 편하게 생각했다. 어차피 박정민 만의 연기는 따로 보일 것이고, 괜히 다른 것을 추구하려다가 자빠지는 우를 범하기는 싫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게 있다면.

“진태가 행복해 보였으면 했다. 내가 담당했던 아이들은 항상 웃고 즐거워 보였다. 진태는 여기에 더해 피아노 잘 치고, 게임 잘 하고, 라면도 끓일 줄 아는 아이지만 그 외의 것들은 다 서투른 친구로 보였으면 했다. 그리고 많은 환우와 그들의 가족, 그들을 돌보는 복지사 선생님들이 이 영화를 보고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다. 너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게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했다.”

▶완성본을 처음 본 소감은 어땠나.

“영화를 처음 볼 때마다 늘 하는 버릇이 있다. 나 스스로를 검열한다. 내가 얼마나 실수했는지 그것을 찾아내느라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본다. 그래서 첫 영화를 보고 나면 항상 기분이 좋지 않다. 잘 한 건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실수한 것만 크게 보인다. ‘동주’ 때도 그래서 많이 속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느 순간 내가 울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슬펐고 엄마 생각도 많이 났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휴먼 드라마지만 유머적인 코드도 제법 많았다. 대사인지 애드리브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였는데 그만큼 배우들의 호흡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다. 알게 모르게 즉흥적인 애드리브가 있는 편이다. 예를 들면, 이병헌 선배님이 나에게 권투를 가르쳐주는 신에서 내가 잽을 날리다가 선배님의 코를 강타하는 장면이 있다. 초반에 찍은 건데 그 신을 찍으면서 선배님과 좀더 편해지는 계기가 됐다. 그 장면은 형제가 가까워지는 몽타주신이었고, 대본에도 ‘형이 복싱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지문만 간단히 써있었다. 그런데 선배님이 너무 맨숭맨숭하니 대사를 넣는 게 좋겠다고 하면서 다양한 애드리브를 구사했다. 나도 맞장구를 칠 요량으로 애드리브를 툭 던졌는데 그게 빵 터졌다. 무엇보다 내가 존경하는 선배님과 합을 맞췄고 그 분이 내 애드리브에 응해줬다는 게 기분이 참 묘했다.”

▶고려대 인문학부를 자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다시 입학했다. 계기가 있었나.

“계기가 된 건 박원상 선배님을 만나게 되면서부터다. 중학교 때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는 강원도 별장에서 선배님을 우연히 만나게 됐는데 어린 마음에도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그 때 배우라는 직업을 깊이 생각하게 됐고, 배우는 아니더라도 이 분야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다. 부모님에게는 연기를 하겠다고 하면 반대가 심할 것 같아 처음에는 방송국 PD가 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결국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말에 한바탕 난리가 났지만 이후 영상원에 입학했고, 군 제대 후 연출에서 연기로 전과를 했다. 한번은 영상원 입학 후 박원상 선배님을 만나러 대학로에 간 적이 있는데 당시 문소리 선배님과 ‘슬픈 연극’이라는 2인극을 하셨다. 너무 재밌어서 매일 찾아갔고, 그러다가 그 연극의 스태프를 하게 됐다. 그리고 이후 영화 ‘파수꾼’으로 데뷔를 했다.”

▶지금은 연재가 끝난 모 잡지에 오랫동안 글을 기고했다. 글 속에서 YG와 드라마 ‘미생’에 출연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했는데 가수의 꿈도 있었던 건가.

“(웃음) 그건 아니고 예전에 중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농담삼아 말했던 거다. 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학교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었다. 인기를 얻고 싶었다. 그래서 ‘YG오디션이라도 봐야 되는 거 아냐’라고 말했던 거를 써놓은 거다. 난 노래를 못해서 절대 가수가 될 수 없다. ‘미생’의 경우도 그 드라마에 아는 친구들이 많이 나오니까 출연하고 싶은 바람을 써놓은 건데 당시만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러브콜이 끊이지 않을 만큼 주목받는 배우가 됐다. 연기자가 되기로 하면서 세운 목표가 있다면.

“‘들개’ ‘파수꾼’ 등 예산이 적은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들을 주로 했다. 그 영화들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좀더 많은 사람이 봐주면 기분이 어떨까였다. 누군가에게는 건방지게 들리고 오해를 살 만한 얘기지만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배역이나 비중에 상관없이 상업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그게 어떻게 보면 목표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상업영화의 주연을 맡고 보니 생각만큼 날아갈 듯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짊어져야 할 책임감과 부담감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특히 영화 ‘변산’을 찍으면서 그런 부담감이 상당했다.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부분이 많아서 힘들었고 무너질 것 같은 순간도 많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내가 힘들어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까 되도록 즐기면서 행복하게 하자였다. 사실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건방진 얘기다. 일이 없어서 괴롭고 힘들었던 예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행복한 순간인데, 내가 정말 배가 부르구나라며 반성을 하게 된다. 지금은 어떤 상황에서도 늘 고맙고 행복해하면서 즐겁게 연기하는 것이 목표다.”

글=윤용섭기자 hhhhama21@nate.com
사진제공=김현수 dada24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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