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신춘문예와 예일청년시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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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3   |  발행일 2018-01-13 제23면   |  수정 2018-01-13
[토요단상] 신춘문예와 예일청년시인상
박재열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신춘문예의 계절이 지나갔다. 문학청년이라면 대부분 연말연시에 열병을 앓게 된다. 연말이면 신문사마다 신춘문예작품공모 공고가 뜨게 되고 문학청년은 그간 밤을 새워 갈고닦은 작품을 신문사에 보내고 그 뒤부터는 밤낮 좋은 소식 오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필자도 40여 년 전 몇 번 절망의 고배를 마신 뒤 한 해 당선의 영광을 안았는데, 그때는 천지가 다 내 발 밑에 녹아 있는 듯한 유치한 느낌이 들었다. 신춘문예제도는 필자 같은 20대 문학도의 열정과 설렘에 걸맞은 것이었고, 상금 또한 가슴 뿌듯한 것이었다.

기존의 문학 작품보다 신춘문예작품을 읽는 기쁨이 더 큰 것은 우선 그 작품들이 신선하기 때문이다. 신춘문예작품은 미인대회와 비슷한 데가 있어서 작품 하나하나를 두고 보면 죽은 데가 없고 이미지나 아이디어가 참신하여 빛을 발한다. 시든 산문이든 상관이 없다. 마음이 밝아지고 기쁨이 일어난다.

올해 각 신문사의 시 당선작들을 일별해 보니 경향 면에서는 예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 작품들은 조금은 산문적 발상을 밑에 깔고 있었으며, 이미지의 충분한 비약이나 신선도에서 크게 놀라움을 주지 못했다. ‘수다 떠는’ 인상을 주는 시도 더러 있었다. 자칫 자잘한 일상적인 것을 다루다가 보면 혼자 주절거리는 모양새가 된다.

당선된 시는 심사자의 성향과도 관계가 있었다. 그 작품들을 보면서 심사위원들의 아류 시를 보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심사한 시인들은 자기 시 경향의 시를 선호한다는 말이 된다. 당선작을 널어놓고 누가 심사했을 것 같으냐고 물으면 상당히 맞힐 것 같다. 심사자는 응모된 작품이 얼마나 자기 시와 닮았느냐를 볼 것이 아니라, 이 시인이 얼마만 한 시적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를 할 텐데 말이다.

필자가 미국의 한국계 시인인 캐시 송(Cathy Song)을 처음 만난 것은 1983년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전해 ‘사진 신부(Picture Bride)’라는 시집을 내어 미국의 시단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녀는 미국 국무부의 프로그램으로 대구에 와서 당시 미국공보원에서 강연을 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한말 때 하와이로 간 이민자였다. 그가 결혼할 때는 한국에서 부쳐 보낸 신부의 사진만 보고 정혼했고, 신부를 하와이로 데려갔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사진 신부’라는 시의 내용이었고 또 그날의 강연 내용이었다.

무명의 시인이었던 송 시인이 일약 미국의 시인 스타덤에 오르게 된 것은 그녀가 통과한 등용문이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예일대 출판부에서는 매년 1인당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공모하여 심사를 거친 뒤 당선원고는 한 권의 시집으로 출판해주고 있다. ‘예일청년시인상(Yale Series of Younger Poets Award)’ 사업인데 현재 100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녀는 이 엄청난 상을 수상한 것이다. 신춘문예 같은 것이 없는 미국에선 가장 통과하기 힘든, 하늘의 별 따기 관문이다. 원로 생태 시인 더블유 에스 머윈(W. S. Merwin), 미국의 페미니스트 시인 에이드리엔 리치(Adrienne Rich), 또 가장 난해한 포스트모던 시로 유명한 존 애시베리(John Ashbery) 등 미국의 기라성 같은 시인들이 이 상으로 세상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

우리나라에선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 그 등단과 함께 시단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시인의 역량이 모자라거나 시단 생태계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예일청년시인상’의 경우 처녀 시집부터 곧 정평 있는 고전 시집 취급을 받는다. 그만큼 시적으로 성숙한 시인만이 그 상을 수상한다는 말이 된다. 그런 것에 비추어 볼 때 신춘문예는 신문사가 벌이는 화려하고 가슴 설레는 행사지만 점점 이벤트성 연례행사로 변모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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