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대구 .12] 신천변 용두바위와 용두산

  • 임훈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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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6   |  발행일 2018-01-16 제14면   |  수정 2018-01-26
옛 선비도 탄복한 용두산 자락 용두바위…용이 신천 물 마시는 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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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남구 봉덕동의 한 고층건물에서 내려다본 용두산 자락의 모습. 옛 사람들은 용두산의 형상을 보고 ‘용 한마리가 신천에 머리를 대고 물을 마시고 있는 형국’이라며 영험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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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산 북쪽 끝단에 자리한 용두바위. ‘용의 머리’를 닮아 용두바위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현재는 신천좌안도로의 건설로 신천과의 연결이 끊어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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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 도심구간 상류 유역에 자리한 파동 바위그늘. 선사인들은 바위그늘 앞을 동물의 가죽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덮어 비바람과 추위를 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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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좌안도로 아래 구 도로가 지나는 장암교 인근에 하식동굴이 자리하고 있다. 하식동굴 또한 바위그늘과 마찬가지로 선사인들의 거주지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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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옛 사람들은 신천에 용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용을 닮은 산줄기는 신천 상류의 서편을 감싸안은 채 대구도심의 남쪽을 지키고 있고, 거대한 바위절벽은 신천과 맞닿아 민초들의 기도처가 됐다. 이러한 믿음은 ‘용두바위’와 ‘용두산’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천은 선사인들의 터전이기도 했다. 신천 상류 파동의 신천변에는 바위그늘 유적 등 다양한 선사시대 흔적이 발견돼 대구지역 역사 연구의 소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대구 유림 詩 파잠팔경에 등장
신천의 또 다른 이름 용두방천
2007년 신천좌안도로 건설때
용두바위와 신천 단절 아쉬움

용두산 곳곳에 선사인의 흔적
북단 토성 삼국시대 축조 추정
바위그늘서 구석기 유물 출토
장암교 인근엔 하식동굴 두 곳


#1. 용두낙조의 아름다움

대구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신천의 도심 구간 상류에는 옛 선비들마저도 그 아름 다움에 탄복했다는 용두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대구시 남구 봉덕동 고산골 입구 신천변에 자리한 거대 절벽바위인 용두바위는 앞산의 일부인 용두산 자락의 끝부분에 위치해 있다. 용두바위는 조선 말기 대구의 유림들이 파동과 신천 일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파잠팔경’이라는 시(詩)에 ‘용두낙조’라는 문구로 등장한다. ‘용두’, 즉 용두바위에서 해가 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표현한 것이다.

용두바위는 신비롭게 여겨지는 상상 속 동물인 용(龍)과 밀접한 관련이을있다. 이름 또한 ‘용의 머리’라는 뜻에서 비롯됐다. 용두바위는 남에서 북으로 뻗어내려온 용두산 자락의 최북단에 자리해 있다. 하천의 침식작용에 의해 깎여 형성된 바위인 하식애(河蝕崖)로 높이는 5~10m다. 과거에는 물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하식동굴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동굴은 기도 장소로 활용됐다고 전해진다. 용이라는 존재가 품은 신비감 때문인지 과거에는 길일을 택해 용두바위에서 기도를 올리는 이들이 많았다. 신천이 ‘용두방천’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용두바위 때문이라고 한다.

용두산은 남쪽의 가창면에서부터 남구 봉덕동의 고산골 입구까지 이어져 있다. 산의 형태는 거대한 용이 산 아래로 뻗어내려오는 모습으로, 산의 능선은 하늘로 승천하려는 용의 등처럼 굽어 있다. 인근 고층건물에서 용두산과 용두바위의 모습을 바라보면 용의 형상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산줄기는 마치 거대한 몸체를 자랑하는 용의 모습처럼 역동적이면서도 압도적이다. 용두산과 용두바위를 두고 ‘용 한 마리가 신천에 머리를 대고 물을 마시고 있는 형국’이라 평했던 옛 사람들의 상상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2. 신천과 단절된 용두바위

안타깝게도 지금 용두바위는 신천과 단절돼 있다. 신천좌안도로가 건설되면서 용두바위와 신천 사이에 고가도로가 놓였기 때문이다. 2007년 신천좌안도로 건설공사 당시에는 바위의 일부가 잘려나가는 수난도 겪었다. 지금의 용두바위 주변은 콘크리트 옹벽으로 둘러쳐져 있어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렵다. 무속의 흔적으로 보이는 낙서만이 바위에 남아 과거 이곳이 영험한 기도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도로 탓에 용두바위가 신천과 분리돼 있는데, 이는 목마른 용이 힘을 쓰지 못하는 형국이다. 상징적으로나마 용두바위와 신천을 연결해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두산 북단에는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용두토성도 남아있다. 고산골 입구에서 20여분 용두산을 오르면 도착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 토성의 흔적은 희미하지만, 토성 터 곳곳에 자리한 바위들은 옛 산성의 흔적을 보여준다. 용두토성은 대구와 청도를 잇는 주요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용의 모습을 한 용두산 끝단의 고산골과 신천 동신교 북단에서는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기도 했다. 용두바위 인근 고산골 공룡공원에는 모형 공룡이 전시돼 대구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용두바위와 용두산은 용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3. 선사인의 흔적을 더듬다

용두바위에서 수성구 파동의 신천 상류로 올라가면 선사인의 흔적과도 마주할 수 있다. 파동의 용두산 자락 아래 신천변에는 거대한 바위 하나가 버티고 서 있다. 파동 바위그늘(巖陰, rock shelter)이다. 바위그늘은 바위의 상부가 돌출돼 그 아래에서 사람이 거주할 수 있을 만큼 너른 공간이 나온다. 선사인들은 바위그늘 앞을 동물의 가죽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덮어 비바람과 추위를 피했다. 파동 바위그늘은 가로 8.5m 높이 3m의 화강암으로, 신천과 약 30m 떨어진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2000년 국립대구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한 결과 파동 바위그늘 아래 땅속에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맨 위층에서는 조선과 고려의 도자기 조각이, 그 아래층에서는 삼국시대 토기 조각이 출토됐다. 또한 신석기와 청동기의 유물이 발견된 것은 물론, 맨 아래층에서는 구석기 시대 석기가 출토됐다. 당시만 해도 파동 바위그늘 출토 유물이 구석기 때의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2006년 달서구 진천동에서 구석기 유물이 대거 발견되면서 파동 바위그늘의 역사 또한 구석기 시대까지 확장됐다.

바위그늘 중앙부 상단에는 사람이 뚫은 것으로 보이는 둥근 구멍도 하나 있다. 옛사람들이 바위구멍에 나무를 꽂아 지붕을 덮고 거주공간을 확장하는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거대한 바위그늘 아래로는 신천이 유유히 흐른다. 선사인들은 신천과 그 주변에서 수렵·채집 활동을 하며 삶을 이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파동의 신천 상류지점에는 바위그늘 외에도 다양한 선사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파동 바위그늘에서 상류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신천좌안도로 아래 구 도로가 지나는 장암교 인근에 하식동굴이 있다. 15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높이의 바위절벽 아래 자연침식으로 형성된 2개의 동굴이 자리하고 있다. 동굴은 음푹 파여있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구조다. 장암교 인근의 하식동굴은 파동 바위그늘과 유사한 목적으로 이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동굴에는 누군가가 기도를 올린 흔적이 남아있다. 향과 불을 피운 탓인지 동굴 내부는 검은 그을음으로 덮여있고, 작은 제단도 마련돼 있다.

신천 상류 주변 바위절벽의 암석이 신천 주변에 산재한 고인돌의 재료로 사용됐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신천 유역 상당수 지역에서 고인돌이 발견되는데, 대봉·봉산동 등 신천 서편과 파동·상동 등 신천 동편에서도 다수의 고인돌이 확인됐다. 전영권 교수는 “파동 신천변의 바위절벽에는 암석을 채취한 듯한 흔적이 남아있다. 신천변 산기슭 기반암에 발달한 판상절리 지형의 구조적 특성은 고인돌을 생산하기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파동 주변에 형성된 판상절리는 판의 형태로 떨어져나가는 형태여서, 암석 가공 기술이 떨어지는 선사인들도 쉽게 활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인돌을 조성하기 위해 잘라낸 바위는 겨울철 신천이 얼었을 때 운반한 것으로 보인다.

글=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도움말=전영권 대구가톨릭대 교수
공동 기획 : 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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