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희의 독립극장] 상영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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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7   |  발행일 2018-01-17 제30면   |  수정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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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극장 대표

2017년 말, 비교적 잠잠하던 극장가는 ‘강철비’를 시작으로 ‘신과 함께’ ‘1987’까지 매주 개봉된 영화들로 들썩였다. 그중에서 ‘강철비’는 대구에서 촬영을 했다기에 잔뜩 기대를 하고 보러 갔다. 역시 157억원이라는 제작비를 들인 영화답게 엄중한 한반도의 현실감각과 극적 재미를 모두 지닌 상업영화로 잘 만들어졌다. 그런데 극장 문을 나서면서 괜스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영화가 대구의 흔적을 싹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주 촬영장이었던 국립대구과학관은 개성공단으로 변해있었다. 영화 ‘강철비’는 대구를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세트장이 필요했던 거다.

‘강철비’가 한창 촬영 중일 때 두 편의 장편영화가 대구 청년감독에 의해 제작되고 있었다. 한 편은 유지영 감독의 ‘수성못’이다. 영화는 대구를 벗어나 서울로 가려는 20대 여성의 고군분투기를 그리고 있다. 다른 한 편은 고현석 감독의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이다. 서울에서 내려와 대구에서 사는 부부의 하루를 그린 영화로, 대구에서 사는 느낌을 촘촘하고도 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세상을 향한 태도다. 극적인 영화는 인간이 처해있는 조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전달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제작비가 많고 잘나가는 상업영화는 대구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처해있는 조건 따위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 두 영화 모두 반가운 소식도 가져왔다. ‘수성못’은 봄에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은 가을에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나란히 선정되어 전국적인 공감을 얻기도 했다.

그럼에도 두 청년의 영화는 세상에 진짜 빛을 아직 못 봤다. 영화는 제작이 끝이 아니다. 영화는 다른 예술과는 또 다른 방법으로 관객과 만나야 비로소 진짜 영화가 된다.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영화들이 그랑 카페에서 처음으로 대중과 만났던 1895년 12월28일을 영화 탄생일로 기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제작이 끝난 영화는 감독의 손을 떠나 마케팅과 배급을 준비하면서 서서히 관객들과 만날 채비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교적 작은 상영관에서 개봉하는 독립영화의 경우에도 최소 2천만원 정도의 배급 비용이 필요하다.

두 청년감독과 함께 후배 감독들도 커 올라오고 있다. 그들의 단편영화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장센과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단편영화제의 칸이라 불리는 클레르몽 페랑 단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아 오는 2월 프랑스로 간다.

21세기 문화의 꽃이라 불리는 영화를 창조할 수도 없고,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길도 열어주지 않는 도시가 무슨 문화 창조도시인가. 눈을 감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구의 청년영화인들을 이대로 그냥 떠나보낼 순 없다. 떠나보내고 후회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봐야 한다. 오오극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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