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인터넷 거래 기술의 진보를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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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7   |  발행일 2018-01-17 제30면   |  수정 2018-01-17
추가 프로그램 설치않고도
간편한 연말정산 가능해져
행정프로세스 자체를 개선
모든 온라인 민원서비스에
확대 적용되기를 희망한다
[수요칼럼] 인터넷 거래 기술의 진보를 환영한다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국세청이 매년 운영하는 연말정산 간소화 공제자료 조회 및 발급 서비스가 이번 주부터 시작되었다. 세금신고를 위해서 전국의 납세자들은 매년 이런저런 추가프로그램을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해야 했고, 이 프로그램들은 윈도 운영체제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매킨토시나 리눅스 운영체제 이용자들은 아예 사용할 수도 없었으며, 윈도 운영체제 이용자들조차도 프로그램 설치과정에서 겪는 온갖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많은 고충을 겪어왔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완전히 바뀌었다. 공인인증서를 웹브라우저에 저장해 둔 이용자들은 어떠한 추가 프로그램도 설치할 필요 없이, 그리고 자신이 사용하는 운영체제나 웹브라우저가 무엇이건 간에 연말정산 공제자료를 간편하고 신속하게 조회하고 증빙서류를 온라인으로 내려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의 고충과 울분이 시원히 씻기는 기분이다.

이런 변화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공약한 내용을 착실히 실천해 나가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는 어떠한 부가 프로그램 설치도 이용자에게 요구하지 않도록 설계를 바꾸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 뭐 그리 대수로운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의 인터넷 거래 기술과 보안 기술은 그동안 부가 프로그램 설치라는 잘못된 기술 경향의 볼모로 잡혀 있었다. 이른바 보안을 위한다는 그럴듯한 핑계로 이용자에게 프로그램 설치를 강요함으로써 이용자는 자기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프로그램을 자신의 컴퓨터에 마구 설치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습관에 길들여져 왔다. 내가 공격자라면 내가 나눠주는 프로그램을 군말 없이 설치하도록 길들여진 이용자가 많은 상황을 가장 반길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설치하는 부가 프로그램들 중 하나라도 장악하는 데 성공하는 공격자는 국민 대다수의 PC를 일거에 장악할 수 있게 된다는 점 또한 심각한 국가 안보 위협 요인이다. 뿐만 아니라 비표준적인 추가 프로그램을 설치해야만 거래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웹사이트는 전 세계 이용자를 상대로 영업하고 성장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국내 업계가 어째서 이렇게 불행한 기술 선택을 했는지 그 원인을 제대로 밝혀내는 작업은 앞으로 본격적 연구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동안 부가 프로그램에 의존해서 구현되어 왔던 공인인증서가 한몫을 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처음부터 정부의 개입과 인위적인 진흥·장려·촉진 정책에 기대어 출발한 공인인증제도는 그동안 국내 인터넷 기술 및 보안 기술 생태계를 왜곡해 왔다. 인증 서비스에 국가가 이런 식으로 개입할 경우, 그러한 서비스는 오로지 국내에서만 인정받을 뿐 전 세계로 진출할 가능성이 없다. 국가를 초월한 인터넷 세계에서 전 세계 이용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으려면 정부의 권위에 기대기보다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술력을 확보하고 인증 업무의 신뢰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앞으로 인증서비스에는 더 이상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야 세계로 진출할 만한 수준의 인증서비스가 국내에도 등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연말정산 자료 열람 및 발급 서비스뿐 아니라 전자정부가 제공하는 모든 온라인 민원 서비스도 앞으로는 어떠한 부가 프로그램도 설치할 필요 없이 제공되기를 희망한다. 행정안전부의 일부 관리들은 각종 증명서 출력 과정에는 문서 위조를 방지하기 위한 보안 프로그램의 설치가 필요하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언제나 있어왔던 문서 위조를 프로그램 하나 설치함으로써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못 순진하다. 만일 그런 신통한 프로그램이 정말 있었다면 이미 전 세계의 모든 정부나 기업이 앞다투어 사 갔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애초에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마치 달성할 수 있는 것처럼 국민을 속이기보다는 종이에 인쇄된 증명서를 아예 제출하지 않아도 되도록 행정 프로세스 자체를 개선하는 것이 전자정부의 진정한 임무다.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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