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유승민과 안철수의 시대는 올까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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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7   |  발행일 2018-01-17 제31면   |  수정 2018-01-17
[박재일 칼럼] 유승민과 안철수의 시대는 올까

영화 ‘1987’ 속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그 시대의 정치적 화두는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겠다는 직선제였다. 이즈음 좌파 운동권이 상당한 힘을 키워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중산층 넥타이 부대들이 대거 거리로 뛰쳐 나와 주먹을 쥔데는 직선제란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편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구성하고 직선제 개헌(改憲)을 ‘시대적 어젠다’로 던진 정계 양대 거목 YS(김영삼)·DJ(김대중)의 추진력도 큰 엔진이었다. 직선제를 골간으로 한 1987년 6·29선언(전두환이든 노태우든 누가 선언했든)은 그래서 탄생했다. 새 지평이 열렸다.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유승민의 바른정당이 뭉치겠다고 하니 떠오르는 인물이 양김(金)이다. 영원한 라이벌 양김은 한때는 뭉치고 한때는 떨어지면서 대한민국 정치 뇌관을 건드렸고, 결국 시차를 두고 대통령이 됐다. 이들처럼 유승민·안철수는 성공할 수 있을까.

정치 상식으로 보면 안철수·유승민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함께 다음 대선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인물이다. 8개월전 대통령 선거에서 어쨌든 3, 4위를 지켰다. 최근 여론조사도 고무적이다. 야권의 대표 인물로 이들을 지목한다. 대선이 다가오면 대중은 백마 타고 온 새 인물을 갈구한다고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다. 최소한 지금쯤 국민 뇌리에 박힌 인물, 손가락 안쪽에 드는 인물이 대중의 선택을 받기 쉽다.

성공요인의 또 다른 변수는 미래비전이다. 정치는 늘 직선제 같은 비전을 에너지로 쓴다. 안철수·유승민은 제3지대를 말한다. 풀어쓰면 개혁적 보수, 합리적 진보로 뭉쳐 새 정치를 실천하겠단다.

이들의 정치 이념은 사실 양면적이다. 불가능한 듯하면서도 한편 가능해 보인다. 상품 가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민주화시대의 지도자들이 내걸었던 화두처럼 강력한 에너지를 품기에는 다소 현학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화학적 융합을 이끌 수 있느냐의 1차 관문이다.

현실적으로 강한 정치적 장애물이 없다는 점도 오히려 장애물이다. 영화 1987처럼 대중의 눈물까지는 아니더라도 함께 할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불확실하다. 그들이 말하고 비판했던 박근혜식 전 근대적 통치방법과 불소통은 이미 감옥에 가 있다. 학생 운동권을 권력 핵심으로 한 문재인 정권은 1년이 채 안됐다.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뜻이다. 더구나 문 정권의 대척점은 오히려 자유한국당 홍준표의 몫이 되기 쉽다.

정치 공학적으로도 두 사람은 지금 아슬아슬하다. 안철수는 고향인 부산을 떠나 사실상 엉뚱하게 호남을 정치적 근거지로 터를 잡아 성공하는 듯했지만, 지금 바른정당과 통합의 와중에 이젠 호남과 결별해야 할 수 있다. 그의 상왕(上王)이라 조롱받던 호남의 패자(覇子) 박지원은 안철수의 새 정치를 거의 썩은 정치라고 맹비난하는 상황이 됐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화두를 던졌던 유승민도 비슷한 처지다. TK(대구경북)의 적자(嫡子), 대구의 아들이라고 자부했지만 그의 바른정당에 몸담은 TK 국회의원은 아직 없다. 새누리당을 함께 탈당하자고 먼저 깃대를 들었던 부산의 김무성은 오히려 변신해버렸다.

향후 정치 일정도 두 정당의 통합에 시너지효과를 내기에는 불리한 요소다. 올해는 지방선거의 해고, 총선은 아직 2년여 남아 있다. 올해 선거가 총선이었으면 이들의 결합을 놓고 기성 정치인들은 엄청 고민했을 것이다.

얼마 전 만난 유승민 의원도 그런 점을 수긍했다. 그러면서 통합에 대해 안철수 대표가 좀 더 인파이팅을 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국민의당 국회의원들을 강하게 설득했으면 한다는 주문이다. 며칠 뒤 만난 안철수 대표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심 더 큰 파이팅을 유승민에게 요구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호남 통합의 명분이든 3지대가 됐든둘은 이제 큰 정치실험에 나섰다. 죽을 각오로 죽음의 계곡을 넘겠다고 했고,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했다. 시간은 과연 이들의 편일까. 그 계곡이 깊을수록 나는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 물론 계곡을 기어코 건너야 한다는 전제에서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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