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대구 중구청장이 될 자격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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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8   |  발행일 2018-01-18 제31면   |  수정 2018-01-18
[영남타워] 대구 중구청장이 될 자격
이창호 사회부장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을 처음 본 것은 27년 전쯤이다. 그가 주인으로 있던 옛 국세청 옆 ‘분도서점’에서다. 기자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가끔씩 그곳에 들러 신간 서적을 훑어봤다. 서점 주인과 손님 사이, 서로 알 리가 없었다. 굳이 인사를 나눌 계기도 없었다. (내 기억 속엔) 그는 늘 계산대 옆에 방석을 깔고 앉아 한땀 한땀 정성 들여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렀다. 2006년, 그 서점 주인은 중구청장이 됐다. 적이 놀랐다. 필자는 그때까지도 그가 재능이 있는 사람이란 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가 구청장이 되기 전 예술기획과 문화운동을 했다는 것도 뒤에야 알게 됐다. 필자가 과문(寡聞)하고 불민(不敏)했던 탓이다.

윤 구청장은 내리 3선을 했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6개월의 노정(路程)에 서 있다. 만감이 교차해서일까. 그가 보내 온 새해 연하장엔 각별한 소회(所懷)가 담겨 있었다. ‘한결같이 가꿔 온 근대골목에서 중구의 미래를…미래 자산을 계속해서 발굴해…’라고. 지난 열두 해, 신명을 바친 도심재생에 대한 애정과 긍지가 짙게 배어 있었다.

“한 도시의 발전은 주어진 자원(유산)에 의해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그 자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하는가에 달렸다.”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설파다. 대하(大河)와 같은 ‘로마인 이야기’ 집필을 끝내고 난 뒤였다. 만약 시오노가 대구 중구의 도심재생 현장을 둘러본다면 소감이 어떠할까. 비슷한 얘길 하지 않겠나. 중구의 발전은 새것이 아닌 오래된 것을 쓸모가 있도록 부활시켰기에 가능했다고.

윤 구청장이 취임 이후 중구에서 펼친 도심재생 사업은 줄잡아 20여 가지. 윤순영표(標) 도심재생의 키포인트는 ‘문화와 역사로 잘살자’쯤으로 정의된다. 문화·역사형 도심재생이 아파트를 짓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 1번은 ‘대구 근대골목’사업이다. 떠나간 도심을 돌아오는 도심으로 살려 놓아서다. 어둡고 잊힌 도심 골목길을 ‘100년의 정(情)’이 살아 숨 쉬게끔 복원했다. 그 골목길 켜켜이 쌓여있던 숨은 역사에 멋진 스토리텔링을 입혔다. ‘근대로의 여행’이라는 골목투어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관광객이 구름같이 몰렸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도 전국구 핫플레이스로 떴다. 쇠퇴일로의 방천시장에 대봉동이 낳은 불세출의 가수 ‘김광석’을 녹여낸 결과다.

중구 도심재생은 윤순영의 열정과 아이디어, 그를 믿고 따라준 시민문화운동가·공무원의 땀과 지혜가 만들어낸 노작(勞作)이다. 지난 세월 뚝심 있게 한길로, 사람 냄새 묻어나는 도시를 만들어 온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6개월 뒤면 중구청장은 ‘새 얼굴’로 바뀐다. 걱정도 적지 않다. 자리매김한 중구 도심재생 사업이 기존의 철학을 지켜가며 변함없이 진행될 수 있을지 말이다. 수없이 봐 왔다. 지자체장이 바뀌면 모든 게 바뀐 전례를. ‘전임 단체장의 정책’이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사장됐다. 이는 안타까운 예산 낭비다. 주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

중구청장 선거에 누가 뛰는지 신문에서 읽었다. 차별화된 중구 도심재생 행정을 계승·발전시킬 적임자가 누구인지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게 있다. 새 중구청장은 도심재생만큼은 그 방향성과 연속성을 훼손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문화·역사 기반 도심재생은 후퇴돼선 안 될 중구의 경쟁력이자 미래다. 절대로 ‘리셋(Reset)’ 되어선 안된다. 새로운 중구청장도 ‘문화 경영인’ 자질을 갖춘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크고 번듯한 것보다 작고 소박한 것에 더 관심을 두는 사람이면 좋겠다.
이창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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