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학의 문화읽기] ‘케렌시아’를 문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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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9   |  발행일 2018-01-19 제22면   |  수정 2018-01-19
내 아픈 삶 위로할 나만의 방
케렌시아가 있다면 좋을 것
전시장이나 음악회·공연장…
위로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보라 권하고 싶다
[문무학의 문화읽기] ‘케렌시아’를 문화에서
대구동구문화재단 상임이사·문학박사

‘케렌시아(querencia)’는 스페인어 ‘바라다’라는 동사 ‘케레르(querer)’에서 나왔다. 피난처, 안식처, 귀소본능이라는 뜻. 최근 회자되는 ‘케렌시아’는 투우장의 투우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홀로 잠시 숨을 고르는 자기만의 공간을 의미한다. 헤밍웨이의 소설 ‘오후의 죽음’에서 “소는 거기 들어가면 뒤에 벽이 서 있는 것처럼 안정을 되찾는다”고 표현된다. 가정도 직장도 아닌 제3의 공간, 그런 공간 하나 누구라도 갖고 싶어할 것이다.

미국 사회학자 폴라 에이머는 ‘맨케이브’를 남성성의 마지막 보루라고 해석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존 그레이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남성들은 조용히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가 생각에 집중하며 틀어박혀 지내는 반면, 여성은 다른 이들과 속 시원히 얘기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또한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는 경제적 독립이며 또 다른 하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라고 썼다.

이렇게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공간 하나 갖는 것이 어디 마음 같이 쉬운 일인가? 쉽지 않은 이유가 손 하나로는 모자랄 것 같다.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앞선다. 그런 공간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부분 꿈이나 꿀 뿐이다. 그렇다고 아예 포기하고 살 수는 없다. 꿈이라도 꿔야 하고 갖지 못해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케렌시아가 내 아픈 삶을 위로해 준다면 기를 쓰고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케렌시아는 단순히 수동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곳만은 아니다. 물론 그런 곳이 없지도 않다. 도심 속의 수면 카페가 그런 곳이다. 해먹에 누워 잠을 청하거나 안마의자를 이용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산소 캡슐 안에 들어가서 무공해 공기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카페가 이미 등장했다. 낚시 카페, 만화 카페, 한방 카페 등 다양하게 생기고 있다. 그만큼 휴식과 힐링이 필요한 시대라는 뜻이다. 필요도 필요지만 재미를 극대화시키고 있어 주목된다.

이런 힐링과 재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취미 활동을 하는 곳이고, 창조적인 활동을 하기 위한 공간으로 변모해가기도 한다. 그런 공간의 수요가 생기면 그런 공간을 공급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가 생기기 마련이다. 취업준비생들에게 명절 대피소로 알려진 북카페가 그렇다. ‘퇴근 길에 책 한 잔’이라는 곳에서는 ‘3프리 존’이라고 하여 잔소리 프리, 눈칫밥 프리, 커플 프리를 표방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아이디어가 톡톡 튄다. 이보다 더 진보한 카페는 ‘책맥 카페’다. 책과 맥주가 있는 카페. 책을 읽으며 맥주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 가보고 싶지 않겠는가. 거기서 책이 제대로 읽히는지 아닌지는 경험해 보면 되는 것이지만 맥주 한두 잔 마셨다고 해서 책 못 읽을 이유는 없다. 술과 책의 그 먼 거리를 이리도 가깝게 할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마음을 다독일 케렌시아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문화 현장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예술 문화는 원래 인간을 위로하는 것이 제일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전시장엘 가보기도 하고 공연장엘 가보기도 한다면 분명히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술 현장에서 케렌시아를 찾아낸다면 팍팍한 삶에서, 삶의 위기를 극복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시장이나 음악회, 공연장이나 영화관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그곳을 케렌시아로 삼으면 될 것이다. 대구동구문화재단 상임이사·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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