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虎, 虎, 虎…난 조선범에 미친 놈이다”

  • 이춘호
  • |
  • 입력 2018-01-19   |  발행일 2018-01-19 제33면   |  수정 2018-01-19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소설가 배성동
20180119
7천년 전 울산만 고래와 동고동락했던 조선범의 서식지 영남알프스. 그 한 능선인 배내고개의 칼바람을 시베리아 타이가의 자작나무숲 바람이라 여기면서 성성한 두 팔을 펼쳐 스스로 범 제스처를 취하는 소설가 겸 영남알프스학교 배성동 이사장. 매년 겨울이면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고 완벽한 생태계의 시베리아 호랑이 보호구역을 탐사한다. 그건 남한으로 돌아올 통일시대 범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작업이라고 본다.

‘발이 없는 사람을 보기 전까지는 내게 신발이 없음을 슬퍼했다.’

고대 페르시아 격언인데 지금은 내 좌우명이다. 한민족사에는 ‘발없는자’들이 너무나 많았다. 머슴, 백정, 화전민…. 늘 무지렁뱅이, 상종 못할 자로 배척당했다. 그들은 세상을 향한 발언권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호랑이(이하 범) 역시 또 다른 발없는자였다. 민초들은 그 호랑이를 ‘조선범’이라고 섬겼다. 단군신화에도 나오고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로도 등장할 정도로 조선범은 너무나도 신령한 존재였다. 하지만 한말로 접어들자 더 이상 인간과 공존할 수 없었다. 범민족이 범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1919년부터 5년간 사살된 호랑이는 65마리, 표범은 385마리. 포수들의 무분별한 사냥으로 인해 범을 위한 먹이사슬이 끊어지고 만다. 끝내 배고픈 범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호환(虎患)’은 범이 아니라 인간이 먼저 촉발시킨 것이었다.

단군신화·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 韓 호랑이
1921년 경주 대덕산서 잡힌 이후 자취 사라져

울산 반구대 암각화 속 태곳적 조선범의 흔적
주무대 영남알프스를 베이스캠프 삼아 추적
10년 동안 시베리아를 집 드나들 듯…10번째
현지인에 ‘7500만분의 1의 사나이’로 불려져
수집한 한반도 범 사진으로 2년 전 ‘맹호展’도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범 잡는 병졸까지 생겨났다. 범의 씨를 말리려고 했다. 범 잡는 자에겐 승전 장수에 준하는 엄청난 상을 임금이 직접 챙겼다. 민초들에겐 범 잡는 길이 바로 출세의 길이었다. 사지로 몰린 범은 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멸종되고 만다.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주민 김유근씨까지 중상을 입힌 153㎏짜리 대덕산범. 한국 마지막 범으로 기록된다.

이제 조선범을 보려면 시베리아로 가야 한다. 범이 없는 대한민국. 아직 독립이 안 된 나라 같았다. 그래서 난 홀로 범의 흔적을 찾아나섰다. 그건 어떤 계획도 집념도 아니라 그냥 내 ‘숙명’이었다.

10년째 범을 추적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영남알프스는 물론 조선 각지에서 잡힌 각종 범 자료사진부터 수집하기 시작했다. 1944년 신불산과 고현산 표범, 1960년 가지산 표범…. 그래서 2년 전 영남알프스에서 ‘맹호전’을 간월재 입구에서 개최할 수 있었다.

나는 툭하면 시베리아로 간다. 지난해 말에도 한 달 일정으로 연해주 최북단 아그주(Agzy)를 다녀왔다. 벌써 열번째 시베리아 일정이다. 한 번 가려면 수백만원이 깨진다. 누구의 도움 없이 사비로 다녀온다. 범을 보려면 일단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된다. 러시아 범전문가, 현지 통역가이드, 현지 소수민족 등이 동행해야 된다. 그래서 범 관광은 어불성설이다. 4~5번 비행기와 헬리콥터, 산악용 차량을 갈아타야 된다. 100㎞ 반경에 단 한 명의 사람도 만날 수 없다.

이번 일정은 예상 못한 극심한 장염의 고통 속에서 진행됐다. 한밤엔 영하 50℃를 오르내리는 혹한의 타이가. 10㎞마다 우데게이족 등이 설치해놓은 산막이 유일한 숙소다. 오후 4시30분이 되면 어둠이 밀려온다.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밤이 지속된다. 나는 한 마리 ‘심해어’로 갇힌다. 여기선 적막을 배운다. 인내의 한계를 확인한다. 식은땀에 젖은 혼미한 의식을 뚫고 복음처럼 들리는 야성의 울부짖음. 간간이 포성처럼 밀려든다. 난 그게 범의 울음소리라 믿는다. 범을 위해 시베리아에 왔지만 나는 아직 그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100번 정도 오면 한 번은 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현지 전문가도 10년 만에 겨우 한 번 볼 수 있는 게 범이란다. 사냥 반경이 500㎞에 달하는 야생 범. 인간의 동선을 손금처럼 읽고 있다. 그가 인간 앞에 나타날 확률은 없다. 범이 허락해야 범과 마주할 수 있다. 내가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진 상태여야 할 것이다. 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담대하고 고요한 맘의 상태가 아닌 다음에야 범은 없다. 호기심 앞에선 범은 하나의 ‘신기루’에 불과하다. 우리가 아는 방송에 오르내리는 범은 고성능 감사카메라에 찍힌 영상이다.

훈춘 등 한·중·러 삼국 접경지대는 이제 내 고향이다. 하도 자주 다녀와서 내 국적도 희미해져간다. 어떤 때는 시베리아 소수 민족의 일원이 된 것 같았다. 현지인은 날 ‘7천500만분의 1의 사나이’라고 부른다. ‘남북한 국민 중 범에 가장 미친 자가 바로 배성동’이란 치켜세움이다.

항상 내 얼굴에선 태초의 바람이 일렁거린다. 누군 내 눈에서 범 눈빛을 읽고 간다. 또 누군 독립군의 유전자를 본다. 범이 다닌 길은 한때 독립군의 길이었고 한때는 빨치산의 피신루트였다. 또 한때는 장돌뱅이가 생계를 캐어내던 ‘극한의 길’이었다. 나도 그 길에 나를 가만히 포개본다.

시베리아 범의 마지막 서식지로 알려진 시호테알린산맥, 그중 테트로버해안에 펼쳐진 라조호랑이보호구역 등 5곳으로 흩어진 시베리아 범 보호구역을 돌면서 나는 조선범이 다시 우리 산하를 찾는 날을 서둘러 준비하고 있다. 그 베이스캠프는 단연 울산, 청도, 양산, 밀양, 경주와 맞물린 영남알프스여야 된다. 7천년 전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바로 그 언저리에 있기 때문이다. 태고의 조선범은 영남알프스를 주무대로 울산 앞바다의 귀신고래와 동고동락했다. 조선범이 한반도에 다시 돌아오면 그때는 분명 통일이다. 범이 살 수 없다는 건 인간도 살 수 없다는 말이고 그곳은 ‘생태절망구역’이다.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그 완벽한 시베리아 생태계를 민족의 허리가 끊어진 이 한반도에 계속 공급하고 싶다. 그래서 난 시베리아를 동경하는 것이다. 5년 전 발족된, 울산 언양읍에 사무실을 둔 <사>영남알프스학교는 통일인문학을 준비하는 망루다. 누군 그 학교가 무슨 성과를 냈는가에 더 관심이 많다. 범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성공이듯 이 학교가 별다른 지원 없이 자원봉사자의 힘만으로 아직 문 닫지 않고 있다는 사실, 그게 가장 큰 성공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냥 살아있다는 것의 경이로움을 얘기하려는 것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