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에너지 충전소] 국악인 김지성

  • 김수영 이지용
  • |
  • 입력 2018-01-19   |  발행일 2018-01-19 제38면   |  수정 2018-01-19
“사찰요리 만들고 대접하는 모든 과정서 힐링”
20180119
정음국악 김지성 대표가 직접 만든 호박죽과 가래떡구이를 딸 김주연양(국립국악고 2년)과 함께 먹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20180119
김지성 대표가 지인들과 갓바위에 올라 찍은 사진. <김지성씨 제공>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던 어머니의 다양한 요리를 맛보며 자란 국악인 김지성씨(49·정음국악 대표)는 요리와 예술은 닮은 구석이 많다고 했다. 요리와 예술 모두 자신이 즐거우면서 남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것이고 요리의 미각적인 측면과 예술, 그중 국악의 청각적인 측면은 다른 듯하지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감각은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요리와 예술은 빠른 시간에 완성할 수 없다는 것도 일맥상통하는 점이다. 오랜 연습과 숙성을 통해 그 완성도가 높아진다. 오래 묵을수록 깊고 정갈한 맛이 나는 것도 닮았다.

그런 그에게 요리를 다시 생각하게 한 자그마한 일이 있었다. 7~8년 전이었다. 스승인 이춘희 명창(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에게 추석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스승이 들깨토란탕을 만들어주셨다. 난생 처음으로 이 요리를 먹고는 너무 맛있어 두 그릇을 비웠던 기억이 사라지질 않는다.

“사찰요리라고 만들어 주셨는데 부드럽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담백하면서도 그 깊은 맛에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보약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니 기분이 절로 좋아지고 힘도 솟아나는 듯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 어깨너머로 봐온 것들이 있었던지라 집에서 음식 만들어 먹는 것을 즐기던 그에게 2015년 말 행운이 찾아왔다. 우연한 기회로 사찰요리 잘 하는 분을 알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절에서 생활한 그분은 그곳에서 사찰요리를 두루 익혀 지인들에게 요리법을 전수하고 있었다. 그분의 집에서 매주 목요일 몇명이 모여 사찰요리를 배우는 모임에 김 대표는 주저하지 않고 참여 의사를 표시했고 그분의 배려로 수강생이 됐다.

7∼8년 前 스승이 만들어준 들깨토란탕
깊고 담백한 맛에 보약 먹은 듯 힘 절로
맛 못잊어 2016년부터 사찰요리법 수강

“요리 몰두하면 일상의 번잡함 사라지고
즐겁게 먹을 가족·제자들 떠올라 행복”
국악·사찰요리 함께 즐길 공연도 계획
19년째 월요일 갓바위 등반도 에너지원


20180119
20180119
김지성 대표가 만든 우엉·깻잎 김치(위)와 사찰요리.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와 함께 자주 절에 다녔습니다. 그래서 절에 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 지금도 틈만 나면 절을 찾습니다. 아마 그래서 사찰요리에 더 끌린 것 같습니다. 절에 가서 사찰요리를 맛본 경험이 있고 스승 댁에서 먹은 들깨토란탕 맛을 잊지 못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2016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간 거의 빠지지 않고 강의를 들었다. “공연과 몸살 등으로 2~3번 빠지고 다 들었으니 꽤 많은 요리를 배웠습니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수업을 하는데 그 시간이 늘 기다려졌습니다. 그리고 내가 만든 요리를 맛볼 때의 기분도 좋았습니다. 기대, 설렘, 그런 것이지요. 특히 요리가 잘 만들어졌을 때 행복감도 들었습니다. 요리를 배운 뒤 집에 와서 가족과 제자들을 위해 만들어줄 때의 기분도 좋습니다.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흐뭇하고요. 그 과정에서 저 스스로가 힐링되는 기분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그는 요리하는 과정을 즐긴다고 했다. 요리할 재료를 시장이나 마트에서 구입하는 것부터 이를 다듬고 씻고 썰고 다지는 등의 손질 과정, 불에 직접 요리를 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많이 들고 육체적 노동도 따르지만 상당히 재미있고 창조적인 과정이라 여기는 것이다.

“요리에 몰두하다 보면 일상생활에서의 여러 번잡함이 사라지고 오직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이를 즐겁게 먹을 사람들의 모습만 떠오릅니다. 특히 사찰요리를 하다 보면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치 보약을 정성스럽게 달여서 먹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 더욱 좋지요.”

그는 사찰요리를 배우면서 자연은 물론 농사, 농부의 위대함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그동안 그저 맛으로만 먹었던 음식을 새롭게 바라보고 그 음식이 자신의 입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모두에게 감사할 일들이었다.

“사찰요리를 배우면서 어수리나물 등 그동안 제가 몰랐던 식재료들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사찰요리는 제철재료로 만들기 때문에 철따라 나오는 식재료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요리 꽤나 한다는 제가 이렇게 식재료에 대해 몰랐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많이 부족한 제 자신을 새롭게 보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김 대표가 이처럼 사찰요리를 공들여 만드는 것은 가족은 물론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의 식사도 챙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늘 1~2명의 학생이 집에서 저와 같이 살면서 공부합니다. 좀 더 집중해서 배워야 할 때가 된 아이들을 아예 집에 데려와 몇개월 집중적으로 가르치면 실력이 쑥 커지니까요. 이렇다 보니 늘 학생들이 있어서 이들에게 요리해 주는 재미도 상당히 큽니다.”

그는 사찰요리를 좀 더 공부해 요리와 국악을 접목한 색다른 공연도 펼칠 계획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몸에 좋은 사찰요리도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김 대표는 요리와 함께 갓바위 오르는 것으로 자신의 고갈된 에너지를 충전시킨다. 2000년부터 매주 월요일 갓바위를 오른다는 그는 “애를 낳고 갑자기 체중이 불어서 다이어트를 하려고 시작했다. 처음 1년간은 매주 3일씩 갓바위를 찾았다. 어느 순간부터 이것이 습관이 돼 정기적으로 갓바위를 오르지 않으면 찝찝한 마음이 들고 몸도 무거운 것 같다”며 “갓바위를 오르면서 육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도 다지고 있다”고 했다.

여름에는 오전 5~6시, 겨울에는 9~10시쯤 간다는 그는 이 때문에 월요일에는 아예 다른 스케줄을 잡지 않는다고 했다. 공연이나 강의 등의 요청이 들어와도 월요일은 가급적 피한다.

“불심이 강해서 갓바위를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저를 위한 운동입니다. 애를 낳고 소소하게 아팠던 것들도 갓바위를 오르면서 사라졌습니다. 거문고, 민요 등을 배우고 공연하면서 여러 가지 욕심을 내었던 것들도 갓바위를 오르면서 많이 비웠습니다.”

그는 요리와 산행 모두 일상의 번잡함을 덜어내는 과정이라 했다. 무언가에 몰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니 늘 밝고 환한 웃음을 간직한 그의 얼굴이 왜 그렇게 평화로우면서도 에너지가 넘치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