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오인천 감독의 ‘페이크 다큐’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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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9   |  발행일 2018-01-19 제43면   |  수정 2018-01-19
살 떨리는 ‘공포의 끝’을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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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잡아야 산다’ 언론시사회 당시 오인천 감독.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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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일까. 대통령 후보 시절 고민정 아나운서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뜻밖에도 1967년에 개봉한 한국 고전영화를 꼽았다. “고등학생 때 본 ‘월하의 공동묘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 평생 가장 무서웠던 영화다. (웃음) 지금 다시 봐도 무서울 것 같다.” 2017년 3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도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는 이 영화를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과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와 함께 ‘내 인생의 영화’로 꼽았다. 무언가 의미 있는 영화가 나오길 기대한 고 아나운서는 당시 이 대답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고 했다.


공포영화 맘껏 찍으려 제작사까지 차려
다큐 형식을 빌려 허구를 실제처럼 가공
작년 12월 같은 날 개봉한 ‘야경’‘월하’
오인천 감독 페이크 다큐 연작으로 화제

택시 연쇄살인 실화 모티브로 한 ‘야경’
‘월하’는 1967년 作 ‘월하의…’재해석
전작 ‘소녀괴담’‘십이야’‘잡아야…’도
공포에 로맨스·코믹·액션 조화로 재미



권철휘 감독의 ‘월하의 공동묘지’는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한국 공포 영화 역사에서 주요하게 거론되는 작품이다. 영화는 한국 공포영화의 전형을 담고 있는데 가부장제를 배경으로 삼는 것이나 선악이 분명한 캐릭터, 억울한 죽음으로 생긴 원한과 복수까지. 영화평론가 허지웅의 지적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미처 영화를 보지 못한 세대가 대중 매체를 통해 접한 단편적 정보를 재료로 허구의 기억을 만들어낸 측면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당시 문 대통령을 포함한 관객들을 극장에 불러 모으는데 성공하면서 관객들의 뇌리에 깊이 남아있다.

이 한국 공포영화의 클래식이 무려 50년 만에 재탄생했다. 바로 ‘월하의 공동묘지’를 재해석한 영화 ‘월하’가 지난해 6월 촬영을 마치고 12월 개봉한 것이다. ‘월화의 공동묘지’를 단순히 리메이크한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해석해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풀어냈다니. 이런 흥미진진한 시도를 한 이는 누구인가.

바로 오인천 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출신의 그는 공포영화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학생 때부터 공포나 스릴러 장르를 주로 만들어왔는데 ‘크랭크업’(2008), ‘모멘토’(2010), ‘변신이야기’(2011) 같은 단편영화들은 공포, 스릴러, 드라마, 액션 같이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작품이었다. 그는 이런 작품들로 2011년 서울 세계단편영화제에서 연출상을 수상하고 세계 3대 판타지영화제인 판타스포르토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으며 일찍이 실력을 인정받았다. 안병기 감독 이후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공포영화 전문 감독이랄까.

장편영화 데뷔작이었던 ‘소녀괴담’(2014) 역시 공포에 로맨스를 더한 영화였다. 배우 강하늘, 김소은과 작업한 영화는 공포문학 작가 이종호 대표가 설립한 공포영화 전문 제작사 ‘고스트픽쳐스’의 창립 작품이기도 했다. 같은 해 유럽판타스틱영화제연맹 아시아영화상을 수상한 데뷔작으로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긴 오 감독은 이후 옴니버스 공포영화 ‘십이야: 깊고 붉은 열두 개의 밤 Chapter 1’(2013)과 코믹 액션영화 ‘잡아야 산다’(2016)를 연이어 내놓는다. 2016년 ‘잡아야 산다’로 오 감독은 상하이 국제영화제 성룡액션주간에 공식 초청받기도 한다. 이렇게 계속 상업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그는 오롯이 자신이 찍고 싶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2016년 다소 무모해 보이는 개인 영화 제작사를 차린다.

그렇게 설립한 ‘영화맞춤제작소’의 박지영 대표는 그의 아내이기도 하다. 원래 문화 홍보와 컨설턴트 업계에서 활동했던 박 대표는 본지와도 인연이 있다. 2016년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이 주관한 칠곡 역사·문화 스토리텔링 전국 공모전에 박 대표가 쓴 ‘이쾌대의 사건’이 수상(장려상)을 한 것이다. ‘월하의 공동묘지’를 50년 만에 재해석한 영화 ‘월하’는 ‘영화맞춤제작소’의 창립 작품이 되는 셈이다.

지난해 12월20일 개봉한 ‘월하’는 ‘월하의 공동묘지’에 등장했던 기생월향지묘 비석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설정 아래 일련의 탐사 팀이 이 비석을 찾으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공포영화다. 오 감독이 연출은 물론이고 각본과 촬영까지 맡았다. 배우 윤진영과 일본 배우 히로타 마사미가 출연했다. 공포영화 마니아들이 속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미 화제가 되었다.

같은 날 개봉한 영화 ‘야경: 죽음의 택시’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레전드 편으로 알려진 실제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제작해 배우 주민하와 정보름이 출연했다. 단독 취재에 중독돼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상실한 기자가 취재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담았다.

두 작품 모두 한국 관객들에겐 다소 낯선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이미 찍힌 기존의 영상을 가져와 작가의 의도대로 편집하여 새로운 영상작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발견된 영상’이라는 뜻으로 실재 기록이 담긴 영상을 누군가가 발견해 관객에게 보여준다는 설정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현재는 거의 공포영화의 하위 장르로 국한되어 쓰인다. 이 기법은 실제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해 관객들에게 더 큰 공포를 안겨줄 수 있어 효과적이다. 허구임에도 실제 사건이라 강조하는 마케팅 기법을 사용해 홍보하기도 한다. ‘블레어 윗치’(1999)나 ‘파라노말 액티비티’(2010)가 이런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한국영화에서도 ‘목두기 비디오’(2003) 같은 작품이 제작되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야경: 죽음의 택시’가 제41회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포커스 온 월드 시네마 부문 공식 초청, 미국 로스앤젤레스 호러 영화제 서머 시즌 베스트 감독상, 제3회 미국 노스 아메리칸 필름 어워드 베스트 스릴러상을 수상한 데 이어 ‘월하’ 역시 제2회 암스테르담 국제필름메이커영화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외국어각본상, 외국어감독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고 한다.

이런 빛나는 성과에도 오 감독의 ‘페이크 다큐 공포 스릴러 프로젝트’는 단관 개봉에 그치고 올해 초 곧장 IPTV와 VOD로 출시되었다. 이런 프로젝트가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를 구할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오 감독의 ‘무모한 도전’이 무한도전이 될 때까지 손뼉 치며 응원할 거다. 그 손뼉 함께 쳐주시라.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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