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마르코 로호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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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3   |  발행일 2018-01-23 제31면   |  수정 2018-01-23

선진국의 기준을 어느 선으로 정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소득수준이나 민주화·교육·수명 등의 면에서는 우리가 이미 그 선에 닿아 있다고 본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가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전제하에서다. 사실 빈부격차가 심한 우리나라에서는 지표상으로 국민소득이 올라가도 서민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정치인들의 작태를 보면 민주정치라 말하기 부끄럽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춤추는 교육정책에 학생과 학부모가 멍이 들지만 우리가 선진국민을 자칭하기 낯 간지러운 이유는 따로 있다. 공공의식이나 공중도덕·질서 등 소위 공인된 선진국을 방문할 때 부러움과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부러움은 고든 무어나 워런 버핏·빌 게이츠 등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사회에 기부했다는 보도를 접할 때 더욱 커진다.

마르코 로호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실 팔찌 제조회사다. 20대의 초등학교 교사인 신봉국 대표가 이 사업을 시작한다고 할 때 그 업체를 방문했다. 여동생 은숙씨(28)와 함께 시작한 사업장(상주시 개운동)은 말이 회사지 현실은 두 남매의 소꿉놀이 공간 같았다. 산동네에 위치한 부모님 집의 빈 방에다 책상과 작은 작업대를 가져다 놓은 것이 전부였다. 이것이 과연 시작한 지 몇 년 안되는 교사직을 던지고 뛰어들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부모는 얼마나 속이 터질까 걱정이 됐다. 그러나 신 대표 아버지의 반응은 의외였다. 오히려 아들딸을 격려했다. 함께 나누는 세상을 꿈꾼다니 얼마나 가상하냐고 했다. 필자는 긴가민가했다.

마르코 로호의 팔찌 생산은 디자인은 남매가 하고, 실로 팔찌를 만드는 일은 할머니 등 노동력 약자들이 맡는 방식으로 한다. 할머니들은 주로 자신의 집에서 작업을 한다. 남매는 그 집을 방문, 팔찌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재료를 공급하고 완성품을 수거해 인터넷으로 판매한다. 판매액의 5%는 사회에 기부한다. 첫해 121만여원이던 기부금이 지난해에는 3천여만원으로 늘었다. 수익의 5%가 아니라 매출의 5%는 매우 큰 비중이다. 제조업 평균 수익률이 10~15%인 점을 감안하면 예상 이익의 절반 가까이를 기부하는 셈이다.

이들의 성공은 아직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선진국민이 되고 싶은 욕심에서다. 마르코 로호의 건투를 빈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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