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대구스타디움 딜레마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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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4   |  발행일 2018-01-24 제30면   |  수정 2018-01-24
거액 들어간 대구스타디움
세금 먹는‘흡혈세기’ 전락
뒷날은 생각않은 과시욕탓
市 태스크포스 구성 발표
제대로 된 대책 나올지 관심
[동대구로에서] 대구스타디움 딜레마
유선태 체육부장

2002년 6월10일 제17회 한·일월드컵 한국-미국전, 경향 각지는 물론 해외에서 찾아온 팬들로 인해 경기장은 만원이었다. 전반에 선제골을 허용한 한국은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끌려가다 마침내 후반 30여분쯤 안정환이 헤딩으로 동점골을 만들었다. 경기장에서 내뿜어지는 열기와 함성은 대구 전역을 뒤덮고 남았다. 한국-터키 3·4위 결정전이 열린 같은달 29일, 경기시작 10초 만에 선제골을 내준 한국은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형제의 나라에 2-3으로 무릎을 꿇고 3위 자리를 내주었지만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관중석을 가득 메운 국민의 모습은 지금까지 뇌리에 분명히 남아있다. 1년 후, 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가 열렸다. 우여곡절 끝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 덕분으로 관중몰이에 성공했다. 2011년에는 하계올림픽, 동계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4대 스포츠대회로 일컬어지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와 ‘미녀새’ 이신바예바의 출전은 흥행의 기폭제가 됐다.

위에서 열거한 팩트가 만들어진 공간은 대구스타디움이다. 2001년 개장 이후 가장 뜨거웠던 순간들이다. 아쉽지만 이를 제외하면 대구스타디움은 차갑다. 프로축구 대구FC가 2003년부터 홈구장으로 쓰며 매년 20경기 정도 치르지만 시합 때마다 6만6천422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디움의 10분 1조차 채우지 못한다. 1년 내내 대구스타디움 부근은 ‘적막강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구스타디움을 짓는 데 2천836억원의 건설비가 들어갔다. 대구시는 2001년부터 2016년까지 건설비 가운데 지방채로 조달한 1천855억원을 갚았다.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땐 62억원을 들여 최첨단 전광판과 트랙을 새로 설치했다. 그러나 대구스타디움은 지금까지 흑자를 낸 적이 없다. 개장 후 17년 동안 합산해 보면 어림잡아 600억원 이상 적자가 났다. 대구스타디움에 지불된 경제적 비용만큼 대구시민이 기쁨과 즐거움을 얻었다면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대구시민 절대 대부분은 이에 동의하지 못한다. 그래서 서글프고 밉고 돈이 아깝다. 이쯤 되면 대구스타디움은 혈세 빨아들이는 ‘흡혈세기’와 다르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적자행진이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대구시민은 앞으로도 매년 수십억원의 돈을 스타디움 관리비로 쏟아부어야 한다.

대구스타디움 만성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도시 규모나 재정에 비해 지나치게 크게 지어진 탓이다. 2002 월드컵의 한일 공동개최가 결정되고 한국에서 분산 개최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훗날은 생각하지 않고 남들보다 크게, 좋게 보여야 한다는 그릇된 과시욕이 빚은 결과다. 대구보다 재정규모와 시장이 큰 부산의 아시아드주경기장 규모는 대구보다 1만석이 적다. 당시 월드컵 대구 유치와 대구스타디움 건설을 결정한 사람들은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있다.

선거철이 코앞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대구시는 느닷없이 이달 말 스타디움 활용방안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태스크포스가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1%도 하지 않는다. 늘 그랬듯이 대구스타디움에 들어가는 돈이 태스크포스에 들어가 있는 공무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 권영진 대구시장이 대구스타디움 활용 방안과 관련해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한 직원에게 특진을 시켜주겠다고 말했지만 소득이 없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대구시장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조만간 너나 할 것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믿지 않는다. 학습된 경험이 너무 많다.유선태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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