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도덕주의 정치와 협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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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4   |  발행일 2018-01-24 제31면   |  수정 2018-01-24
[영남시론] 도덕주의 정치와 협치
고성국 (정치평론가·정치학 박사)

“촛불혁명이 문재인정부를 탄생시켰다.” 이 구호는 문재인 대통령과 문재인정부의 핵심세력뿐만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한 번이라도 촛불을 들었던 단체와 사람이라면 누구나 외치는 정치 슬로건이다. 문재인정부가 어떤 정치 사안이나 정책 이슈를 주장할 때 가장 쉽게 가장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홍보전략이기도 하다. ‘촛불의 뜻’ ‘촛불민심’은 문재인정부에서는 ‘만능 키’로 작동하는 듯하다.

‘촛불혁명’이란 용어는 근본적으로 도덕적 윤리적 용어다. ‘촛불’은 ‘부정의한 박근혜 권력을 타도하고 응징하기 위한 정의’로 규정되었다. ‘촛불’이 ‘선, 정의’라면 촛불의 반대편에 섰던 사람과 세력은 ‘악, 불의’가 된다. 이 도식이 기계적으로 확장되면 박근혜, 박근혜 세력, 자유한국당, 태극기 집회, 대선 때 홍준표 후보를 찍은 25%의 국민이 모두 악과 불의가 되고, 적폐가 되고 청산의 대상이 된다. 이 같은 이분법적 도식구도는 문재인정부가 ‘촛불’을 높이 치켜들면 들수록 더욱 강화되고 고착되는 정치대결구도가 된다.

정치와 사회를 ‘선·악 대결구도’ ‘불의와 정의의 대결 구도’로 설정하는 정치를 도덕주의 정치라 한다. 도덕주의 정치는 자기진영의 절대화와 상대 진영의 적대화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한다. 지속적으로 적을 만들어내고 이를 공격함으로써 자기세력을 확장한다. 도덕주의 정치에서는 적의 실체가 있는지의 여부는 관심 대상이 아니다. 자기진영과 자기편을 동원해 결속시킬 수 있다면 설사 적이 실체가 없는 허상이건, 왜곡 조작된 것이건 상관없다.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냉전시대의 매카시즘과 좌·우 양측이 잊을만 하면 만들어냈던 각종 간첩·스파이 사건들이 그렇다.

도덕주의 정치에서 적의 존재는 자기편, 자기진영을 격동시켜 진영논리에 따라 맹목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다. 문재인정부가 상대진영에 ‘적폐세력’이라는 딱지붙이기를 하자, 박근혜·이명박 진영에서는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응전한다. 이 과정에서 실체적 진실은 가려지고 옥석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복잡하고 정교한 정치력 대신에 거친 밀어붙이기가 횡행한다. 이렇게 되면 정치의 실종은 불문가지다.

민주주의는 협치다. 민주주의가 일방적 밀어붙이기 정치가 아니라 대화와 타협의 정치라면 그렇다. 대화와 타협은 적대적 공생이 아니다. 서로를 ‘적폐청산세력’ ‘좌파선동세력’으로 규정한 상황에서의 대화는 요식적 퍼포먼스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다. 도덕주의 정치가 협치와 병존할 수 없는 이유다.

도덕주의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도덕주의 정치에서는 가속페달을 밟는 게 무조건 선이다. 적대적 대결 상태에 있는 각 진영에서 목소리 큰 강경파가 득세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한국정치는 보수와 진보 간, 전 정권과 현 정권 간, 전전 정권과 전전전 정권 간 타협 없는 쟁투가 전개되고 있다. 이 쟁투의 맨 밑바닥에 도덕주의 정치가 웅크리고 있는 한 적당한 수준 적당한 시점의 마무리, 봉합, 타협은 불가능하다. 정치는 없고 투쟁만 남게 된다는 뜻이다. 짧게는 국민들이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던 1년여의 세월 동안, 길게는 1987년 6월 항쟁과 민주화 이행과정의 30년 동안 한국정치는 통합 지향성보다는 갈등 지향성을, 현실주의보다는 도덕주의를, 대화와 타협보다는 투쟁과 밀어붙이기로 시종해 왔다.

역사적 경향과 추세로서 민주주의가 정착·심화·발전되어 가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치로서의 민주주의가 성숙되어 가고 있는지는 반성적으로 성찰해야 할 때가 되었다. 갈등과 투쟁의 도덕주의 정치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국민이기 때문이다. 도덕주의 정치가 지지세력과 자기진영을 결집시킬 요량으로 선동정치와 포퓰리즘 정치를 구사할 경우 국민이 감당해야 할 정치·사회·경제·문화적 부담이 누적돼 가중된다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쯤에서 도덕주의 정치를 과감하게 접고 협치의 정치를 시작할 것을 정부와 여야 정치권에 촉구한다. 고성국 (정치평론가·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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