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차기 경북도지사의 과제 ‘韓中해저터널’

  • 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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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5   |  발행일 2018-01-25 제31면   |  수정 2018-01-25
[영남타워] 차기 경북도지사의 과제 ‘韓中해저터널’

대한민국은 ‘반도(半島)’가 아니라 ‘도(島)’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지 않고서는 외국으로 나가는 일을 상상할 수 없다. 대륙으로 가는 길이 철조망에 가로막히면서 대한민국은 ‘섬’이 되었다. 같은 반도인 이탈리아가 하늘길, 바닷길뿐만 아니라 육로로도 해외여행을 가고 해외출장을 가는 것과 대비된다. 로마역에서는 정기승차권 ‘유레일패스’만 구입하면 기차로 유럽 28개국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우리가 70년간 당연하다 여겨온 익숙함은 대륙으로 가는 육로의 절박한 필요성마저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이 희한한 정치지리적 환경은 남북 분단이 잉태한 또 하나의 상실(喪失)이 아닐 수 없다.

‘섬나라’ 대한민국에서 대륙과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딜까 하고 지도를 들여다보면 어렵지 않게 충남 서산을 찾을 수 있다. 최근 경북·충남·충북의 12개 시·군(울진·봉화·영주·예천·문경·괴산·청주·천안·아산·예산·당진·서산)이 발주한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바로 이 서산에서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를 연결하는 ‘한중(韓中)해저터널’ 건설 구상이 제시됐다. 총연장 325㎞인 이 터널이 현실화하면 국가 교통망의 대변(大變)은 물론 국가 중심축의 대이동까지 예상된다. 한국에서 선박을 이용해 유럽까지 화물을 수송하는 데 보통 45일 걸리지만 한중해저터널을 거쳐 중국횡단철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면 14일 정도 소요된다는 분석이다. 시간·비용 등 가히 유라시아 물류 혁명이라 하겠다.

충남 서산은 한중해저터널의 한국 기점인 동시에 현재 추진 중인 중부권 동서내륙철도의 서쪽 기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동서내륙철도 동쪽 끝에 울진이 있다. 요컨대 울진에서 중국까지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가는 길이 생긴다. 경북도가 이 해저터널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12개 시·군은 2016년부터 주민 60만명의 서명을 받아내는 등 동서내륙철도 건설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결과 지난해 문재인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지역공약으로 확정된 데 이어 사전타당성조사 용역비가 2018년도 정부예산에 포함되는 결실을 거뒀다. 한중해저터널 길이와 비슷한 총연장 340㎞의 동서내륙철도 건설비용은 3조7천억원으로 추정된다.

12개 시·군이 당초 설정한 이 철도의 의미는 서해안 신산업벨트와 동해안 관광벨트의 연결, 내륙산간지역 동서 간 신규 개발축 형성, 청주공항 활성화, 세종시 연계성 제고, 충남·충북·경북도청 소재지 연계에 의한 광역 행정축 형성 등이다. 경북도청이 안동·예천으로 이전하면서 김관용 도지사가 들고 나온 한반도 허리경제권 개념에 부합한다. 하지만 한중해저터널~동서내륙철도 연결 안이 제시되면서 한반도 허리경제권 구상은 자연히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작은 그릇으로는 큰물을 담을 수 없는 법. 보다 큰 밑그림이 필요해졌다.

북한을 거치지 않고 대륙으로 직행하는 이 혁명적 발상에 경북도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경북이 새로운 실크로드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된다는 점과 경북북부를 중심으로 경북 전체가 새롭게 성장·변화하는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경제·사회·문화적 의미 때문이다. 이 노선이 지나는 12개 기초단체 중에는 경북 5개 시·군이 포함돼 있다. 도청이 이전됐지만 도청신도시를 비롯한 경북북부의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중해저터널은 거대 시장의 새롭고 직접적인 통로로, 경북을 상상 그 이상으로 변모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한중해저터널~동서내륙철도 연결 구상은 현재 충청지역에서만 이슈가 되고 있다. 여권에서 지방선거 공약으로 내걸 조짐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용역의 또 다른 주체인 경북에선 크게 부각되지 않아 안타깝다. 차기 경북도지사와 경북도는 이 구상을 기초단체에만 맡겨 둘 것이 아니라 도의 지상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 충청권과 공조해 국책 과제로 조기 관철시켜야 한다. 수도권론자들의 탐욕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미 인천~웨이하이, 평택~웨이하이 노선이 검토된 바 있는 데다 동서내륙철도 위로 경강선(인천~서울~강릉)까지 완공된 터라 자칫 서산~웨이하이 노선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통합대구신공항을 넘어서는 운송·물류혁명이 예상되는 만큼 경북도와 차기 도지사의 관심을 촉구한다. 울진에서, 예천에서 기차 타고 유럽으로 가는 상상. 그것만으로도 벌써 흥분되지 않는가.

변종현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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