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1급기밀’ 박대익 중령役 김상경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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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6   |  발행일 2018-01-26 제43면   |  수정 2018-01-26
“‘방산비리’ 실화 다룬 첫 韓영화…그 자체로 의미있는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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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항공부품구매과 과장으로 부임한 박대익 중령에게 군수본부의 실세인 천 장군(최무성)은 이제 ‘식구’가 됐음을 강조한다. 복무수칙보다 더 중요한 건 ‘군인의 길’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은 ‘정의’라고 첨언하는 그다. 하지만 박 중령은 그와 식구되기를 거부하고 내부고발자가 되기로 한다. 공군 전투기 추락 사고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차세대 전투기 도입에 관한 은밀한 뒷거래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1급기밀’은 실제했던 국내의 방산비리를 소재로 다뤘다. 군과 정·재계 등 사회 최고위층이 연루된 ‘F-X사업’을 포함,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굵직한 세 개의 사건을 하나로 압축했다. 김상경은 그 중심에서 군 내부자들의 은밀한 거래를 폭로하는 사이다 같은 인물, 박대익 중령을 연기했다. 이제껏 올곧고 반듯한 캐릭터를 소화해온 김상경에겐 딱 적역인 캐릭터다. 그 역시 “용기 있는 선택에 대한 깊이 있는 메시지로 사회 부조리를 꼬집고 세상을 바꾸는데 일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와 관련해 이번에도 길몽을 꿨나.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오찬하는 꿈을 꿨다. 나도 그게 신기한 게 데뷔할 때는 우리집에 전직 대통령 세 분이 방문하시는 꿈을 꿨다. 대부분 작품이 잘될 때 그런 꿈을 꾸는 편인데 ‘살인의 추억’때는 대통령뿐 아니라 불나는 꿈까지 꿨다. 그래서 이번에도 느낌이 좋다.”(웃음)


과거 굵직한 3개의 사건을 하나로 압축
“용기 있는 선택에 대한 깊이 있는 메시지
부조리 꼬집고 세상 바꾸는데 일조 기대”

“정치색 무관…‘화려한 휴가’도 마찬가지
예상과는 달리 유머 곁들여진 시나리오
많은 이 부담없이 볼 수 있겠다 싶어 출연”
촬영전 실존인물 김영수 소령 만나기도


▶방산비리를 다룬 극 영화는 처음이다. 그 점이 출연 결정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은데.

“지금껏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던 민감한 소재를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는 처음 예상한 것과는 달리 무겁지 않고 유머까지 곁들여 있어 재밌었다. 비유를 하자면 ‘화려한 휴가’와 비슷했다. 어떤 무거운 의식의 흐름과 사건이 이야기를 끌고 가기보다는 장르물을 대하듯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상업코드가 곳곳에 배치된 잘 쓰인 시나리오였다. 나는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 그런데 ‘화려한 휴가’때는 그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베’로 분류되면서 ‘빨갱이’ 소리까지 들었다. 하지만 5·18 민주화운동을 제대로 몰랐다는 게 늘 부채감으로 남아 있어서 출연했다. 이번에도 비록 군의 비리를 다룬 이야기지만 많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과거 세건의 방산비리 사건을 압축했다. 그중 2009년 ‘PD수첩’에 출연해 해군 납품 비리 의혹을 고발했던 김영수 소령은 직접 만났다고 들었다.

“김 소령은 당시 ‘PD수첩’에 출연해 ‘한 해군장교의 양심선언’이라는 제목으로 해군 납품 비리 의혹을 고발했다. 방송 이후 재수사로 해군 간부 등 현역과 군무원 등 31명이 사법처리 됐다. 그러나 김 소령은 배신자로 낙인 찍혀 한직을 전전했고, 2011년 권익위에서 주요 부패 신고자로 선정돼 훈장까지 받았지만 스스로 전역을 택했다. 당시 김영수 소령을 만나 취재를 한 PD가 바로 현 MBC 최승호 사장이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김 소령을 만나서 그때 겪었던 사건과 에피소드들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영화 시사회장에도 오셨는데 많이 달뜬 모습이었다.”

▶많은 군인이 이 영화를 볼 텐데 그들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김영수 소령이 ‘PD수첩’에 출연해서 처음으로 한 말이 ‘두렵다’였다. 군인은 상부의 지시 없이는 어떤 인터뷰도 할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정복차림으로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았다. 물론 방송 출연을 결정하기 전까지 김 소령은 3년간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해왔다. 이 사건은 도저히 군대 내에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옷 벗을 각오로 방송에 출연한 거다. 그분의 투철한 신념과 용기있는 행동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특히 군인들이 많이 봤으면 하는데, 대다수 군인들은 나라에 대한 깊은 충성심을 갖고 생활한다. 문제는 이에 반하는 극소수 군인이다. 그 점에서 군대는 물론 대한민국 전체가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자는 의미까지 함축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극 중 박대익 중령은 반듯하고 언제나 정의 편에 서 있을 것 같은 당신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캐릭터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내게 들어오는 시나리오 대부분은 ‘그것이 알고 싶다’류의 시사·교양 프로 같은 작품들이다. 당연히 부담감이 들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류의 이야기에서 정의로운 캐릭터를 연기해 나가야 하니까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매번 소재가 다르고 캐릭터의 성격이 달랐다는 점이다.”

▶당신은 어떤 배우라고 생각하나.

“나는 고전 쪽에 속하는 배우다. 캐릭터에 몰입해 푹 빠지는 스타일이라 작품이 끝나도 쉽게 빠져 나오질 못한다. 그래서 장국영이 자살했을 때 그 심정이 이해됐다. 유작이었던 ‘이도공간’이 엄청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라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한 것 같다. 나도 예전 ‘생활의 발견’을 찍고 난 후 한 달간은 매일 북한산에 올라가서 혼자 앉아 있다 오곤 했다. (최)민식이 형도 ‘악마를 보았다’에 출연하고 나서 마음이 피폐해졌다고 말했는데 만약 내가 그 역을 했더라도 그랬을 거다. 지금도 공포영화나 수위가 센 캐릭터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만큼 작품선택을 신중하게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선택의 기준은 뭔가.

“‘살인의 추억’이 끝나고 백권 넘게 시나리오를 받았다. 그런데 비슷한 아류작이 80~90%를 차지했다. 아예 2년 동안 형사 역할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덕분에 다작을 안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는데 일단 출연작이 겹치는 게 싫다. 너무 힘들다. 육체적인 피로는 물론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도 그렇고 서로에게 너무 미안했다. 작품 선택의 기준은 우선 내가 감동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이야기에 충분히 납득 가능한 의미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공포영화를 안하는 건 단순히 무서워서다. 앞서 말했듯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해서 하는 편이고, 또 그것을 항상 현실과 결부시킨다. 가령 귀신을 보는 장면이 있다면 실제로 귀신을 봐야 한다는 게 지론이기 때문에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는 나 스스로 견디기가 힘들다.”

▶연기의 지향점이 궁금하다.

“시나리오마다 매번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그 캐릭터에 맞는 동작이나 말투가 중요하다. 예전에 로버트 드니로가 5개월 동안 길거리에 앉아서 행인들을 관찰하고, 더스틴 호프먼은 실제로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환자들과 생활을 했다고 하더라. 내가 지금까지 했던 연기들도 그런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다만 주연을 맡았더라도 나를 드러내는 연기는 하고 싶지 않다. 내 캐릭터보다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작품으로 기억돼야 한다는 게 내 연기의 지론이자 지향점이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서 보여줬던 캐릭터들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당신의 실제 모습이 아닐까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는데.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은 실제의 내 모습과는 다르다. 사람들과 만나서 재밌게 노는 건 좋아하지만 경수나 동수처럼 소심하고 찌질하진 않다. 오히려 나보다는 홍상수 감독님과 닮았다.(웃음) 그에 비해 난 와일드한 스타일이다. 뒤끝도 없다. ‘생활의 발견’을 하면서 바뀐 습관이 있는데, 모니터를 보지 않게 됐다. 모니터 속 내 모습이 너무 찌질한 거다. 그전까지 검사, 변호사, 부잣집 아들 같은 폼나는 역할들만 했는데 경수는 너무 찌질해서 못보겠더라. 그런데 그게 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모니터에 신경 안쓰고 온전히 연기에만 집중하게 되니까 결과적으로 모든 게 좋아졌다.”

▶최근 행복한 순간을 하나 꼽으라면.

“나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질문이 나온 김에 늦둥이 둘째를 봤다는 사실은 행복과 결부시켜 말하고 싶다. 7개월 됐는데 건강하게 태어난 것도 그렇지만, 아이가 울고불고 때쓰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이란 이런 거였지’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덧붙여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연기를 하고 있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도 나에겐 소중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글=윤용섭기자 hhhhama21@nate.com
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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