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어게인 1988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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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30   |  발행일 2018-01-30 제30면   |  수정 2018-01-30
30년 전 88올림픽처럼
2018 평창올림픽 역시
세계평화 디딤돌 가능
평창 남북대화 실패 땐
가늠 어려운 긴장 우려
[화요진단] 어게인 1988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당시 2030세대는 아스팔트 위의 전사였다. 미완의 혁명이긴 했지만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여세를 몰아 ‘분단 고착 올림픽 결사반대’를 외쳤다. 이제 5060세대가 된 이들은 바야흐로 대한민국의 중심에 섰다. 88서울올림픽 대신 2018평창올림픽을 맞닥뜨린 게 달라진 상황이다. 아스팔트 시위대의 선봉이었던 청와대 586들도 먼 훗날 올림픽 성공의 짐을 떠안아야 할 기구한 운명에 처할 줄은 당시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것도 30년 전 자신과 비슷한 2030세대의 만만찮은 비판에 직면하고 있으니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88올림픽은 숨은 의도야 어찌됐던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개방화, 선진화를 급속히 진전시켰다. 지금까지 유지되는 소위 ‘87년 체제’가 닻을 올린 것도 그 즈음이다. 88올림픽이 예정돼 있지 않았다면 87년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87년 체제’는 온전히 아래로부터의 혁명도, 그렇다고 위로부터의 개혁도 아니다. 국민의 폭발적 요구에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 이끌어낸 사회적 대타협의 산물이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쏠리는 국제사회의 관심이 정부와 시민의 과도한 긴장관계를 일정 부분 제어했다고 볼 수 있다. 올림픽 반대 데모대열에 서있던 유시민 작가의 후일담은 솔직하다. “올림픽 전후로 대한민국이 많이 바뀌었다. 정보화 시대로 가는 길을 열었고, 민주주의 의식도 크게 성장했다. 축산물 수입 규격조차 없던 한국이 글로벌 국가로 도약한 계기가 됐다”고 했다. 관련산업이 획기적으로 성장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 국민이 갖게 된 강한 자부심과 일체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대외적 성과도 적잖았다. 북한은 온갖 방해공작을 자행했다. 그렇지만 역대 가장 많은 160개국이나 참가했다. 옛 소련과 중국은 대규모 선수단을 보냈다. 막 싹 틔운 페레스트로이카, 글라디노스트에 탈냉전의 불씨를 붙인 것도 서울올림픽이었다. 평화 무드를 타고 대한민국은 소련·중국 등 공산국가와 잇따라 수교했다. 3년 뒤 남북한은 유엔에 동시가입했다.

30년 만에 다시 맞은 올림픽, 2018평창올림픽은 어떠한가. 88올림픽에 비견될 성과를 낼 수 있을까. 평창올림픽의 시대적 요청은 새로운 데탕트(긴장 완화)다. 경제활성화·균형발전·관광객 증가·국가신뢰도 향상도 중요하지만, 평창올림픽은 ‘평화’를 향한 세계인의 열망을 담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 놓인 한반도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다. ‘지구종말 시계’는 자정 2분전을 다급히 알렸다. 냉전이 최고조였던 1953년과 같다. 북한이 인류멸망의 시계바늘을 움직인 것이다. 그런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키로 했다. 심사가 뒤틀리지만 평화를 향한 긍정적 시그널임은 분명하다. 다만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정도다. 마주보고 질주하던 기관차가 일시정지하면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출발선에 나란히 선 것이다. 반전이고 기회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도 그 지점에 있는 것 같다. “바람 앞 촛불 지키듯 대화 지키는데 국민 힘 모아 달라”는 대통령의 호소에 예사롭지 않은 ‘불길함’이 묻어있다. “평창으로만 끝나면 그 후 우리가 겪게 될 외교안보상 어려움은 가늠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미국이 ‘남북대화를 100% 지지한다’고 한 것은 대화에 큰 기대를 걸어서가 아니다. ‘그 길이 아냐. 꼭 하고 싶다면 한 번 해보라’는 식이다. 그러면서 ‘마지막 대화 기회’를 준 느낌이다. 만약 남북대화가 실패하거나, 북한이 또다시 도발할 경우 ‘가늠하기 어려운’ 사태가 기다린다는 의미다. 남북대화가 복원불능의 상태로 내몰릴 수도 있다. 그땐 정말 ‘마지막 대화 기회’가 된다. 국내 여론도 우려스럽다. 기대가 크면 배신감도 커진다.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며 대화에 나섰는데, 북한이 칼을 빼 등 뒤를 노리면 여론은 악화될 것이다. 평창을 무대로 한 남북대화는 이런 부담 속에 진행되고 있다. 북한을 평창에 오도록 하는 것보다 평창 이후 대화를 살려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부가 평창 이후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조바심을 버리고 북한을 당당하게 대해야 한다. 그래야 ‘평창 이후’의 국면에 대응할 수 있다.

이재윤 경북본사 총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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