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한 그릇 가득…‘짬뽕의 성지’를 가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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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2   |  발행일 2018-02-02 제33면   |  수정 2018-02-02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전북 군산
63개 천혜의 섬 ‘古群山群島’서 지명 유래
작년 12월 5개 섬 잇는 8.77㎞ 연륙교 개통
4번째 근대 개항장이 지금은 맛의 항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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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전국 4번째 개항장이 되면서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한 군산 내항의 센터인 째보선창. 한때 ‘죽성포’로 불린 이곳은 소설가 채만식의 대표 소설 ‘탁류’의 배경이 된다. 2003년까지 있던 어시장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이 선창은 퇴락하기 시작하다가 최근 근대시간여행길로 알려진 군산구불길을 찾는 관광객 덕분에 재개발될 예정이다.

얼마나 산이 많아서 ‘군산(群山)’인가. 산? 아니다. 실은 ‘섬’이다. 군산은 1899년 5월1일 ‘모던보이’로 변모한다. 제물포·부산·목포에 이은 4번째 개항장.

군산이란 지명은 남쪽으로 50㎞ 떨어진 옥도면 부속도서인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에서 비롯됐다. 단도, 말도, 명도, 방죽도, 소횡경도, 계도, 야미도, 신시도, 단등도, 무녀도, 송도, 흑도, 대장도, 장구도…. 군산 앞뜰을 수놓은 ‘섬꽃(島花)’. 섬을 품고 살아온 군산 역시 금강과 만경강에 둘러싸인 거대한 섬이랄 수 있다. 무려 1천4개의 섬을 가진 전남 신안군과 비교하면 군산에 딸린 섬들의 질감은 좀 고결하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섬들. 63개 뭇섬(유인도는 16개)은 그래서 ‘칠보석’ 같다. 군산인에겐 거기가 ‘이상향’인 셈. 굴비의 고장, 영광 뱃사람에게 부적 같았던 ‘칠산바다’같이 영험한 곳이다.

가장 유명한 섬은 마이산처럼 생긴 망주봉이 선경의 백미를 이루는 ‘선유도’. 남해의 통영 매물도와 비슷한 풍광이다. 예전엔 쉬 갈 수 없었다. 여객선(왕경호)을 타고 3~5시간 가야만 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28일 속세로 성큼 다가선다. 신시도~무녀도~선유도~장자도~대장도, 모두 5개 섬이 연륙교가 된 때문이다. 총 8.77㎞. 그 연륙교로 가려면 새만금방조제의 등에 올라타야 된다. 19년간 공사 끝에 2010년 완공된다. 총연장 33.9㎞, 전북 김제·부안·군산에 걸쳐 있다. 닉네임은‘해상 만리장성’.

대구에서 3시간 남짓 걸려 군산에 도착했다. 초강력 한파가 나그네를 엄습한다. 영하 10℃를 넘긴 해풍은 군산항의 바닷물까지 얼려버렸다. 발 묶인 저 배들은 봄까지 동면을 취할 것이다. 군산은 빈해원, 지린성, 국제반점, 복성루, 쌍용반점 등으로 인해 졸지에 ‘한국 짬뽕의 성지’로 발돋움했다. ‘군산짬뽕벨트’가 형성됐을 정도다. 거기에 ‘이성당’과 ‘영국빵집’의 빵, 그리고 ‘중동호떡’도 수훈갑. 관광객을 수십 분씩 줄 세운다. 군산은 바야흐로 ‘짬빵 항구’.

군산으로 가는 내내 나는 짬뽕보다 ‘째보선창’에 더 꽂혀 있었다. 선창에 가면 ‘째보선창’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착해 보니 한국에 이런 데가 또 있을까 싶었다. 선창은 폭격을 맞은 전장 같았다. 쓰레기로 방치된 거대한 닻, 밧줄, 폐타이어, 선박 엔진…. 대낮이지만 행인을 만날 수 없다. 불과 250m 떨어진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언저리는 관광객으로 들끓는데…. 너무나 대조적이다. 하지만 이런 선창이라서 더 많은 걸 생각게 한다. 앙칼진 해풍이 펄럭거리는 선창 뒷골목. 나는 거길 오래 기웃거렸다. 그런 내가 채만식의 대표 소설 ‘탁류(濁流)’의 주인공 정주사라도 된 것 같았다. 한 콜라텍에서 스며나온 댄스뮤직이 뱃고동처럼 선창을 감싸준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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