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대구 칠곡 읍내동 안양마을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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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2   |  발행일 2018-02-02 제36면   |  수정 2018-02-02
암벽서 얼굴 불쑥 내밀며 반기는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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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상군의 가운데에 양각되어 있는 본존불. 높이는 1.8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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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존불 왼쪽에 새겨져 있는 9층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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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마을 마애불상군 입구의 석등. 일본식 석등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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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상군과 ‘청주양씨영가좌’ 비석과 암자.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의 기도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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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마을. 공들여 쌓은 돌담이 예쁜 작은 마을이다.

☞ 여행정보

팔달교 지나 5번국도 칠곡중앙대로를 따라 간다. 붉은 벽돌의 제일맨션 단지 부근에서 도로가 살짝 고개 지는데 그곳이 아시랑 고개 일대다. 조금 더 가면 왼편에 칠곡향교가 보이고 600m 정도 더 가면 왼쪽에 대중금속공업고등학교와 학정역 효성해링턴 플레이스 공사현장이 있다. 좌회전해 학교 앞쪽을 지나 들어가면 안양마을 골짜기다. 돌담이 있는 마을 맞은편에 마애불상군이 위치한다. 마을 지나 계속 오르면 명봉산 아래 안양지가 있다. 마애불 앞을 흐르는 시냇물의 수원지로 맑고 호젓해 잠시 들를 만하다.

수평의 도로가 살짝 고개진다. 오른쪽 길가에서 달랑거리는 칠곡 목련아파트 이정표를 본다. 아, 여기가 아시랑 고개구나. 할머니가 아들을 기다리며, 사내가 주막을 찾아 오르며, “아시랑”이라 중얼거렸다는 고개. 그것은 아무 뜻 없는 혼잣말이라는데 사라지지 않는 체기처럼 쓸쓸한 곡조다. 아시랑 고개를 지나면 읍내동으로 들어선 것이다. 점점 주변 건물들의 밀도가 낮아지고 있음을 느끼며, 도롯가에 선 칠곡향교의 홍살문을 지난다.

읍내동 자연부락인 안양마을 앞 골짜기
병풍처럼 펼쳐진 암벽 마애불상군 33구
한가운데 높이 1.8m 마애불 본존 浮彫
볼 때마다 보는 방향 따라 표정 달라져
본존 제외한 상하좌우 조각은 모두 線刻


◆안양마을 마애불상군

곧 높은 옹벽 위에 자리한 대중금속공업고등학교가 보인다. 바로 옆에는 하얀 아파트가 옹벽보다도 훨씬 높이 세워지고 있는 중이다. 그사이에 꽉 낀 도로를 빠져나가면 남북으로 긴 제법 너른 골짜기가 시작된다. 논밭의 골짜기다. 낮게 층이 진 논에는 벼의 밑동들이 진나라 시황제의 군사처럼 열 지어 서 있다. 골짜기를 이루는 산들은 낮고 하늘은 넓은데 도처의 기운은 어쩐지 바다 밑 미광처럼 가맣다.

모여 앉은 집들이 보인다. 마을은 안양, 읍내동의 자연부락이다. 어여쁜 돌담을 두른 낮은 집들 가장자리에 2층, 3층의 집들도 들어서 있다. 마을 앞 골짜기를 따라 시내가 흐른다. 시멘트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에는 대숲이 벽으로 막아서고 왼쪽에는 화사석(火舍石)이 없는 불완전한 석등 두 기가 길을 연다. 고사리모양의 궐수(蕨手)가 있는 지붕돌과 둥근 기둥 등을 보아 일본식 석등인 듯하다. 석등 사이 낮은 울타리로 구획된 길을 따라 몇 발자국 들어가면 병풍과 같은 암벽이 펼쳐져 있다.

명봉산의 남쪽 끝자락에 뚝 떨어지듯 선 암벽이다. 바위면 전체가 북동쪽을 향해 있어 햇살이 잘 들지 않는 편이다. 그래선지 바위의 빛깔도 밝지 않고 음습하다. 특이한 것은 마치 강한 횡압력을 받은 듯 주름진 모습이다. 그 바위 면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안내판에는 ‘화강암 바위에 영산회상도를 새긴 것’이라 적혀 있다.

주름진 암벽의 한가운데에 주불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벽을 찢고 앞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모습이다. 왼손은 시무외인을 취하고 있다. 중생의 두려움과 근심을 없애 준다는 뜻이다. 오른손은 여원인을 취하고 있다. 중생이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한다는 뜻이다. 정면의 얼굴은 부처를 품은 산꾼 같다. 왼쪽의 얼굴은 온화하나 곧은 관리 같고, 오른쪽의 얼굴은 냉철한 무사 같다. 볼 때마다 바라보는 방향마다 표정이 달라지고 시선은 분명한데 그 끝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본존불의 왼쪽에 9층 탑이 새겨져 있다. 실제 확인이 된다. 오른쪽에는 관음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잘 보이지 않는다. 조사에 따르면 본존불의 상하좌우에 삼산보관을 쓴 협시보살, 승려상, 공양 중인 속인상 등 총 33구의 크고 작은 조각이 있다고 한다. 최대 불상군으로 알려진 경주 남산 탑곡마애조상군을 능가하는 수다. 각 크기는 1.8m에서부터 0.18m까지 다양하고 본존불을 제외하고는 모두 선각이며 상의 크기도 작은 편이다.

◆마애불 곁의 사람들

암벽 앞은 자못 넉넉한 땅이다. 이곳은 원래 논농사를 위해 물을 가두어 놓던 못이었다고 한다. 그때 마애불은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았는데 개발이 진행되면서 물이 빠져나가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한 신실한 불교 신자가 배를 타고 건너가 이 바위에 불상을 조각했다고 한다. 마애불 오른쪽 앞에는 작은 암자가 들어서 있다. 그곳에는 한 스님이 약 6년 전부터 기거하며 마애불을 지키고 있다. 절 이름도 없고 마애불 외에 다른 불상도 모시지 않았다. 그는 암벽 위의 큰 나무를 베어내기도 하고, 빗물이 마애불 쪽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도랑을 내기도 하는 등 마애불의 손상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마애불상군이 7세기 신라시대의 작품이라는 견해가 있었다. 1991년 대구시 문화재위원이 현장을 조사한 뒤 신라시대 마애불이 아니라는 1차적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그러나 2011년경 위덕대 박물관 팀에 의해 다시 현장조사가 이루어져 신라시대의 마애불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시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었다. 지난해 이러한 논란을 끝내기 위해 대구시 차원에서 조사가 진행되었고 결국 삼국시대의 작품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전문가들은 “일부 신라 양식의 특성이 발견되지만 표면이 고르지 않은 바위 면에 불상군을 조성한 점, 주변에 예배를 위한 건축물 흔적이 없는 점 등 일반적인 삼국시대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일대 주민과 무속인들은 마애불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마애불 오른쪽에는 ‘청주양씨영가좌’라 새겨진 비석이 있다. 스님이 오기 훨씬 이전에 이곳에 자리했던 사람의 흔적이다. 한때는 무속인들이 살기도 했다 한다. 그들의 믿음이나 마음에 대해서는 말 없이 가늠만 할 뿐이다. 다만 시대와는 상관없이 적어도 우리보다 먼저 존재했던 어떤 사람의 공력에 감탄을 느낀다.

그러나 조금 음험한 감이 있다. 이미 먼저 도착해 웅크리고 앉아 내내 알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는 사람 때문에, 검은 바위 때문에, 습한 기운 때문에, 자꾸만 표정이 바뀌는 부처의 얼굴 때문에, 그리고 어쩌면 이 차가운 계절 때문에. 뒤돌아보면 마을의 집들이 보인다. 공들여 쌓은 돌담과 나뭇가지에 숨은 새들과 경계 없이 눈을 마주치는 고양이가 있는 마을. 안양이란 안양정토(安養淨土)를 뜻하는 것일까.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땅, 괴로움이 없으며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 말이다. 마을에 빛이 많다. 등 뒤에 선 어둠 때문에 마을은 더 밝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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