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스무 해 넘은 차를 입양시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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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3   |  발행일 2018-02-03 제23면   |  수정 2018-02-03
[토요단상] 스무 해 넘은 차를 입양시키며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2월부터 가족과 함께 1년간 해외에서 지내게 돼 출국을 앞두고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해 왔다. 이제 한숨 돌리게 되니 아끼던 것들과의 헤어짐이 생각된다. 얼마 전 지인에게 건넨 자동차. 1997년 12월에 구입해서 헛나이를 둘이나 먹었지만 2018년 올해 들어 스물두 살이 된 차에 대해 따로 기억을 남겨둔다.

이제 스물다섯, 열여덟인 아이들의 중간에 있는 또 다른 자식처럼 실로 오랜 기간 함께 지낸 차를 출국하면서 어떻게 할까 심려가 없지 않았던 터라 나름 고민도 하다가 차에 관심을 보이던 지인 한 분에게 건네게 되었다. 주말에 가끔 낚시 갈 때 타겠다 해서, 그 정도 운행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듯싶어 기쁜 마음으로 가져 가시라 했다. 20년 넘게 갖고 있던 것을 폐차시키기는, 아무리 생각 없는 물건이라 해도 마음이 좋지 못했던 터라 정말 기쁜 마음으로 그냥 드렸던 것이다. 차를 보면 떠오르는 여러 생각과 감정들을 칼로 무 자르듯 없애지 않고 그런대로 이어갈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싶은 마음도 컸다.

차를 처음 샀을 때의 즐거움은 당연한 것이고, 당시 유행하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첫선을 보인 신형 SUV를 탄다는 자랑스러움(!)도 없지 않았다. 교통체증이 심한 서울의 도로에서 시야라도 틔워 줘 갑갑한 마음을 달래 주는 높은 차체에 대해 느껴왔던 고마움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5년여에 걸쳐 11만㎞ 정도를 탄 뒤 포항에 내려와서는, 집과 연구실을 오가는 짧은 거리를 다니는데 신발처럼 이용하면서 15년 동안 고작 4만㎞밖에 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진 소리가 다소 크고 외부 도장 상태도 낡아져서 이 차로 중학생 무렵의 딸애를 마중가면 친구들 보기 창피하다며 딸애가 불평했던 것도 마음에 남아 있다.

이렇게 적지 않은 감정들을 쌓으며 20년 넘게 사용해 오던 차를 없애지 않고 지인에게 선사하게 되니, 말 그대로 딸자식을 시집보내는 듯한 감정이 생겼다. 이런 아쉬움도 달랠 겸 당장의 불편함도 덜고자 출국 때까지는 주중에 빌려 타기로 해서 보름가량 짬짬이 탔다. 이렇게 두 주 넘게 타면서 예상치 못한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새롭게 차주가 된 분이 차의 이모저모를 하나씩 고치고 다듬어낸 까닭이다. 세차를 하고 쇽업 쇼바를 교체한 데 더해서 뻑뻑하던 것들은 구석구석 기름칠을 해서 부드럽게 하고, 흔들리던 것들은 하나씩 조여 떨림을 없게 하고, 이런저런 액세서리도 갖추어 놓았다. 한 번씩 새로 빌려서 탈 때마다 차의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체감하게 되면서 지난 세월 동안 이 차를 대했던 나의 태도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차란 이동의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이 앞서서 과시용으로 보일 법한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기계에 의존하는 것의 폐해를 말한 장자의 기심(機心)을 입에 올리기도 했는데, 돌아보니 정작 나의 행동은 방치였다는 자각이 몰려 온 것이다. 지금 심정은 딸애를 시집보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돌보지 않던 자식을 좋은 집에 입양 보낸 셈이 되었다는 자책에 가깝다. 여러 빛깔의 감정을 갖고 차와 나 사이에 심정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만의 주관적인 위장이었던 게 아닌가 싶기까지 하다.

현대사회의 특징으로 객관적인 문화의 우세를 들며 그 원인으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에 따라 개인과 사물 사이의 주관적인 관계가 약화된 것을 지적한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을 강의하기도 했건만, 정작 나 자신이 그러한 주관성을 인간중심주의적인 한계 내에서만 사고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시집올 때 가져 온 장롱을 한평생 애지중지하며 자신의 일부분인 것처럼 살아낸 우리네 할머니들의 심정과 얼마나 멀리 떨어진 생활을 해 왔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으니, 이 배움을 얻는 고마움으로 차를 보내는 마음을 달래본다.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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