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前職’이 없는 나라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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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5   |  발행일 2018-02-05 제34면   |  수정 2018-02-05
생존 역대 대통령 4명중
3명이 예우 박탈된 상태
검찰소환 임박한 MB만
평창 동계올림픽에 초청
외국정상은 어떻게 볼까
20180205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평창동계올림픽에 초대받았다. ‘전직 대통령’ 자격이다. 우리나라엔 생존한 전직 대통령이 3명 더 있다. 그러나 그들은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12·12 군사 쿠데타, 5·18 유혈진압 사건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을 수 없다. 두 사람은 30년 전 권력승계 과정에서 후임(노태우)이 전임(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 보내면서 친구 사이가 정적(政敵)으로 변했다가 지금은 같은 처지가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으로 파면되는 바람에 예우를 박탈당했다. 더구나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다.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MB와 내부 정적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MB는 두 종류의 초청장을 받았다. 문 대통령이 주재하는 환영리셉션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최하는 개·폐막식 및 주요경기다. 재임 시절 3수 끝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던 MB는 참석 의사를 밝히며 “화합과 통합의 올림픽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오랜만에 외국 친구들 만나 밥 약속이나 잡고 오겠다”고 했다. 리셉션엔 21개국 26명의 정상급 인사를 비롯해 내외빈이 참석한다. MB로선 외국 정상급 인사들과 친밀한 모습을 보여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하겠다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MB가 외국 정상들과 밥 약속을 잡더라도 실제로 지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적폐청산’의 핵심 대상이 된 상태에서 올림픽이 끝난 직후 검찰 포토라인에 설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아울러 리셉션에서의 위상 과시도 어렵다. 유일하게 참석한 한국의 전직 대통령마저 벼랑 끝에 몰려 있음을 외빈들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한국정치의 상황을 잘 아는 펜스 미국 부통령, 아베 일본 총리 등과 환담을 나누는 MB의 모습은 뭔가 자연스럽지 못할 것 같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식 참석 후 2년3개월 만에 만나는 문 대통령과 MB의 악수 장면은 많이 어색할 것 같다. MB는 참석을 결정하며 ‘화합과 통합’을 말했다. 하지만 화합이나 통합과는 거리가 멀어 전직 대통령이 없는 나라가 된 한국정치의 민낯과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리셉션 자리가 되는 셈이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 ‘전직’이 없는 건 대통령뿐만 아니다. 그 시대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국정원장 같은 권력자들도 정권과 쇠락을 같이하고 있다. 평창올림픽을 준비한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전직 장관 두 사람(김종덕·조윤선)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돼 올림픽에 가지 못한다. MB의 집사들(김백준·김희중)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정호성·안봉근·이재만)처럼 권력자의 핵심 측근들은 정권이 끝나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간다.

심지어 직업 공무원으로 평생을 살다가 하필 특정 정권 시절에 책임 있는 자리에 올랐다가 권력형 비위에 휘말려 ‘전직’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런 악순환의 이유로 승자 독식 구조를 많이 꼽는다.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세고, 5년 단임이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나니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들 한다. 물론 헌법개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개헌 너머에 화합과 통합의 정치가 반드시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다. 정치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제도를 흔들어 버린 사례는 숱하다. 언젠가는, 누군가는 원망과 원한을 화합과 통합으로 승화시키지 않으면 그 자신을 포함해서 한때 나라를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전직’ 대접을 받지 못하는 악습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고리를 끊는 일은 힘을 가진 쪽에서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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