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밀양·제천 화재와 생명을 지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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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6   |  발행일 2018-02-06 제29면   |  수정 2018-02-06
[기고] 밀양·제천 화재와 생명을 지키는 길
성상희 (생명평화아시아 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지난달 26일 밀양 세종병원에서 불이 나 5일까지 43명이 숨지고 약 150명이 다쳤다고 한다. 작년 12월 제천의 비극에 이어 대형화재 참사가 또 벌어진 것이다. 인명피해를 가져온 참사의 원인은 건축물 불법 개조, 환자 결박, 방화문 미작동, 소방차의 살수 지연, 정전 후 비상발전기 미가동 등이 지목되고 있다.

지난 정부 시절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그리고 현 정부 들어 작년부터 올해 사이에 집중 발생하고 있는 화재 참사들을 보면서 이번 사고의 참사 원인 중 다음의 점들을 특히 주목한다.

첫째, 병원이 신고를 하지 않고 일부 층에 40평 이상의 증축공사를 했다는 점이다. 세종병원은 1·4·5층에 총 147㎡ 규모의 불법증축이 돼 있다고 한다. 병원은 2011년부터 밀양시에 이행강제금 약 3천만원을 내고 화재 시점까지 한 곳도 철거하지 않았다. 이행강제금을 내고 버티는 것이 돈벌이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이러한 버티기에 행정관청이 이행강제금 부과 외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실질적인 직무유기다. 현행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세종병원은 노인 환자들의 낙상이나 자해를 막기 위해 ‘신체보호대’라는 이름으로 끈을 이용, 환자들의 팔다리를 침상에 묶은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법에 따르면 환자안전을 위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신체보호대로 환자를 묶는 것은 금지돼 있다. 병원이 환자 관리의 편의를 위해 일률적으로 환자들을 결박하는 것 또한 효율과 비용절감이 환자의 안전이라는 보다 중요한 가치를 앞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 세종병원 같은 중소병원의 경우 핵심적인 소방설비인 자동방수장치(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지 않는 등 소방안전에 대한 행정법규가 지나치게 느슨하다는 것이다. 소방시설법 시행령은 의료시설의 경우 ‘바닥 면적이 1천㎡ 이상인 층’에만 연기와 유독가스를 강제배출시키는 제연 설비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웬만한 중소형 병원은 제연 설비 설치의무 건축물에 해당되지 않는다. 스프링클러는 정신의료기관, 요양병원, 노유자 시설 등에는 바닥면적 합계가 600㎡를 넘을 경우 모든 층에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는데, 유예기간을 두어 올해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입원병동을 갖춘 모든 의료시설에 자동방수장치와 제연설비를 갖추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제천 화재 사망자 29명 전원, 밀양 화재 사망자 33명이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으로 사망했다. 가연성 재료인 드라이비트가 주요한 외벽 건축재였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화려한 겉모습을 위해서, 혹은 값싼 난방을 위해서 스티로폼, 드라이비트 등 각종 석유화학제품을 사용하는 내장공사를 거창하게 하는 것이 요즘 건축의 대세다. 침대 매트리스나 환자옷 등 각종 섬유류도 석유화학제품이니 그것에서 또한 유독가스가 배출된다. 편안함, 효율, 수익성이 건축을 포함한 모든 경제활동, 나아가 공동체의 삶 전체를 지배하게 될 때 우리는 제천, 밀양의 화재 참사,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을 끊임없이 겪게 될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효율과 수익성이라는 마술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세번의 참사는 돈벌이를 최고의 가치로 하는 삶의 태도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희생자는 대부분 서민들이었다. 돈벌이가 최우선인 사회의 첫 희생자는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였다.

달리 길은 없다. 알맞게 먹고 적게 쓰며, 자연에 해를 덜 끼치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병원과 같이 공공의 이익과 안전에 중요한 영역은 돈벌이 수단으로 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고, 수익성이 없는 부분은 공적 영역에서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모두가 세금을 올려서 내고 알뜰히 살아야 한다. 이것이 나와 내 이웃의 목숨을 지키고 하늘이 내려 준 자신의 수명을 다하고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이 길은 이번 사고의 원인에 연결돼 있는 석유문명에서 탈출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성상희 (생명평화아시아 추진위원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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