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시대공감] 하얀거탑이 보여주는 시대정신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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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9   |  발행일 2018-02-09 제22면   |  수정 2018-03-02
선인 비난하고 악인 옹호한
11년 전 시대정신이 이어져
출세 위한 흙수저의 분투에
젊은 시청자들이 감정이입
공감과 찬사 끊이지 않는 것
20180209

매우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07년 방영작 MBC 드라마 ‘하얀거탑’이 다시 방영되는 것이다. 리마스터드 버전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재방송이다. 11년 전 드라마의 재방송은 거의 없는 일이거니와, 심야시간도 아닌 정규 미니시리즈 방영 시간대에 편성됐기 때문에 정말 놀랍다. 이런 일은 한국 방송사에 전무후무할 것으로 보인다.

너무나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에 시청자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면 큰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발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찬사와 호평이 대부분이다. 무려 11년이나 지났는데도 흘러간 작품이라는 느낌이 거의 없어서 젊은 시청자들까지 드라마에 공감하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2007년에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했던 정서가 하나의 시대정신이 되어 아직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하얀거탑’의 동시대성이 유지됐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드라마 주인공은 착하다. 상대편은 악하다. 악인과 주인공이 경쟁할 때 악인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열한 꼼수를 쓰며 주인공을 괴롭히지만, 착한 주인공은 광명정대한 방식으로 결국 악인을 물리친다. 시청자는 착한 주인공에 감정이입하며 권선징악의 결말을 응원한다. 이에 반해 ‘하얀거탑’은 착하지 않은 주인공을 내세웠고, 시청자가 주인공의 부정한 행각을 열렬히 응원하는 새 시대를 열었다.

주인공 장준혁은 굴지의 대학병원 외과과장 자리를 노리는 패기만만한 의사다. 은퇴할 기존 외과과장은 장준혁을 내치고 외부 인재를 수혈하려 한다. 장준혁과 외과과장이 각자 자기 세력을 규합해 외과과장 자리를 놓고 세 대결을 벌인다는 설정이다.

보통 주인공은 자리 욕심 같은 사적 욕망을 부리지 않는다. 반면에 장준혁은 의료권력인 외과과장 자리에 혈안이 돼있다. 기존 외과과장이 내세운 장준혁의 경쟁자보다도 탐욕이 더 강하다. 가장 탐욕적인 주인공. 여기서부터 일반 주인공과 다르다. 외과과장이 되는 방식도 깨끗하지 않다. 재력가인 장인을 내세우며 ‘백’에 기대고, 막후 정치에 골몰하고, 뇌물을 쓰는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일반적인 드라마의 악인에 더 가까운 캐릭터다.

이러한 장준혁을 시청자들이 열렬히 응원한 것이다. 심지어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착한 인물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장준혁의 친구인 최도영은 모든 일을 원리원칙대로 처리하며 사리사욕을 배격하고 오로지 환자만 생각하는 ‘참의사’다. 그는 출세욕에 사로잡혀 진흙탕 이전투구를 벌이는 장준혁을 경멸하고 비난한다. 이런 최도영이야말로 전통적인 주인공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놀랍게도 시청자들은 최도영을 비난했다. 선인을 비난하고 악인을 옹호한 시대정신. 바로 그 시대정신이 아직까지 이어져 ‘하얀거탑’에 공감과 찬사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장준혁은 시골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전투하듯 살며 대학병원 의사까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장준혁과 한 편인 장인 역시 자수성가형이다. 반면에 장준혁 반대편인 선임 외과과장은 대대로 의사인 명문가 출신이다. 외과과장이 내세운 장준혁의 경쟁자도 유학파 상류층 출신이다. 그들이 거대한 기득권의 성채인 ‘하얀거탑’을 이루고 있는데 흙수저 국외자인 장준혁이 그 거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악전고투를 치르는 내용이다. 시청자는 흙수저가 금수저 군단과 붙는데 도덕이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 장준혁을 윤리적으로 비난하는 최도영도 의사집안 출신인 일종의 귀족이다. 그런 최도영의 윤리관에 시청자는 세상물정 모르는 ‘씰데없는 소리’라고 했다. 장준혁이 사다리 타고 올라가 인생역전하는 것이 도덕윤리에 우선했다.

출세를 욕망하는 주인공에 젊은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현상이 2007년에 나타났던 것인데, 2018년에도 마찬가지다. 요즘엔 10억원을 벌 수 있다면 감옥행을 감수하겠다는 청소년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사다리가 부러진 양극화의 세상에서 사회적 신뢰가 무너졌고 각자도생의 국면이 도래했다. 그래서 장준혁의 분투에 젊은 시청자들이 감정이입한 것이다. ‘하얀거탑’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부정을 저질러도 좋다고 말이다. 욕망이 윤리를 포식한 시대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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