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튤립과 비트코인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8-02-09   |  발행일 2018-02-09 제22면   |  수정 2018-02-09
비트코인 투자 58% 청소년
삶이 팍팍하다는 것을 방증
투기 가짜상품과 긴밀 연관
불로소득의 환상 조장 중단
근로의 가치 재정립 나서야
[경제와 세상] 튤립과 비트코인
박상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지금 전 세계는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 열풍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상 앞서가야만 한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열풍은 예외가 아니다. 열풍이 아니라 광풍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으리라. 아마도 최근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를 들라면 비트코인일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비트코인에 대한 투기 광풍은 튤립의 버블과 비교되곤 한다. 네덜란드는 1609년에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를 설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덜란드 전역에 은행과 증권거래소가 들어섰으며 네덜란드 업자들은 독점 속에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엄청나게 불어난 자본은 다른 투자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주식을 사고는 싶었으나 돈이 없던 사람들은 꿩 대신 닭이라는 생각으로 부의 척도로 간주되던 튤립 재배에 모든 것을 걸고 일확천금의 꿈을 꾸게 되었던 것이다. 1636년 내내 오르던 튤립 알뿌리의 가격 상승세는 1637년 1월 절정에 달한다. 하루에 두세 배씩 오를 때가 있었고 한 달 동안 몇 천 퍼센트나 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버블도 오래 가지는 못하고 1637년 2월5일 갑자기 가격이 하락세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매자가 사라졌다고도 할 수 있었다.

비트코인 가격은 1월5일 2천744만원에서 2월2일 기준 850만원까지 70% 이상 급락했다. 비트코인 투자자의 58%가 청소년이라고 한다. 이들은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한탕주의’를 내세워 투기 중독에 빠지고 있다. 그러면 왜 이러한 투기의 광풍에 쉽게 빠지는가. 중독행위의 심리적 바탕에는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회피하고자 하는 욕구가 숨어 있다. 자신의 내적 고통을 마주하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무의식적 두려움 때문에 무언가에 몰입함으로써 이를 피해보려는 행동인 것이다. 이러한 중독현상은 도박이든, 음주든, 쾌락을 추구하는 성적 행동이든 대개 비슷하다고 한다.

청소년들이 비트코인에 열광하는 것은 지금 이들의 삶이 팍팍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나와도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사회, 안정적인 일자리는 쉽지 않고 날마다 치솟는 집값에 결혼은 엄두도 못내는 상황에서 상대적 박탈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열심히 일해서 월급을 받고 그 월급을 쪼개 저축을 해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카더라’ 통신은 비트코인과 같은 곳에 투기를 조장하게 되는 것이다. 운이 좋아 많은 이득을 얻게 된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심한 변동성을 가질 뿐만아니라 투자의 규칙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암호화폐 시장은 젊은 투자자들의 기대와 같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 높은 언덕이 있다면 낮은 골짜기는 필연적으로 있기 마련이다. 투자에 실패했을 경우 남는 것은 심한 좌절과 절망·우울이다.

비트코인 광풍은 ‘비트코인 블루’(비트코인 우울증)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하루 저녁에도 수백만원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에서 직장에서 받는 월급은 아무것도 아닌듯이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월급을 받는다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근로에 대한 가치를 재정립할 때라고 말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까.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는 우리 사회는 비트코인과 같이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듯이 보이는 로또와 같은 투기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노력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헝가리의 정치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상품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품인 척 거래되는 대표적인 가짜 상품으로 화폐·토지·노동을 이야기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불고 있는 투기 열풍이야말로 이 가짜 상품들과 긴밀히 얽혀 있다. 지금 단번에 벌어두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처럼 불안을 조장하는 행위와 불로소득의 환상을 심는 작태는 중단돼야 한다. 미래의 기둥인 청소년들이 건강한 근로의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형성할 수 있도록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박상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