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땀한땀 ‘예술’이 되다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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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9   |  발행일 2018-02-09 제33면   |  수정 2018-02-09
■ 손바느질의 진화
천연염색 모시·삼베·명주 섬유 활용
산·꽃·나무 바느질, 직물회화로 창작
풍경·정물화…추상화까지 표현 넓혀
깊고 부드러운 색감, 한국화 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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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섬유미술연구회 고운물빛의 서령희 회장(오른쪽)이 회원들과 함께 다양한 바느질 작품을 만들고 있다. 서 회장이 만들고 있는 것이 직물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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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령희 회장이 만든 직물회화.

이젠 바느질로 옷이나 가방을 만들고 천에다 꽃·새 등의 수만 놓는 것이 아니다. 자수·퀼트 등을 하는 이들도 많지만 실용성이 강조된 이런 손바느질에서 벗어나 예술작품을 만드는 이들도 늘고 있다. 손바느질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바느질의 변화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한국섬유미술연구회 고운물빛(이하 고운물빛)’. 대구 수성구에 사무실을 겸한 공방을 두고 있는 고운물빛은 실과 바늘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나 시도해 보고 있다.

흔히 바느질 하면 한국의 전통자수, 프랑스자수로 잘 알려진 서양자수, 서양식 누비라고 할 수 있는 퀼트 등을 떠올린다. 물론 이곳에서도 이런 바느질을 한다. 하지만 직물회화라고 해서 직물을 이용해 그림을 만들어가는 예술작품도 제작하고 있다. 고운물빛은 섬유미술가 서령희씨와 그에게 바느질과 직물회화를 배운 제자들로 구성됐다. 제자 대부분은 자수·퀼트 등을 통해 바느질 작업의 기초 실력을 쌓아왔기 때문에 창조적 감각이 강한 직물회화까지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서령희 회장은 “고운물빛에서는 전통방식 그대로 만든 조각보를 비롯해 퀼트·프랑스자수 등을 이용해 실용적인 것은 물론 직물회화처럼 예술성이 강한 작품들을 두루 만들기 때문에 바느질의 새로운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며 “고운물빛에서만 배울 수 있는 직물회화에 특히 흥미를 보이는 회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직물회화는 다양한 모양의 직물로 산·꽃·나무 등의 형태를 만들어 작품을 완성한다. 풍경화·정물화 등의 구상화도 가능하지만 비구상화·추상화 등으로 표현을 넓힐 수 있다. 모시·삼베·명주 등의 섬유를 직접 염색해 다채로운 색감의 천을 이리저리 겹쳐가면서 바느질로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간다.

서 회장은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란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현대미술의 특징을 살릴 방법을 고민하다가 전통 조각보 기법을 활용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나아가 그림 같은 느낌의 작품을 시도하게 됐다. 천연염색한 천들의 색감이 깊고 부드러워 마치 한국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밝혔다.

2013년부터 고운물빛 회원으로 활동해온 정은수씨는 “바느질을 좋아해서 전통자수·서양자수·규방공예 등을 배웠다. 2012년 서령희 회장의 개인전을 보고는 흔히 봐왔던 바느질 작품과는 완전히 달라 깜짝 놀랐다. 그래서 곧바로 배우기 시작했다”며 “조각보 등을 만드는 것도 재밌지만 직물회화는 창작성이 강해서 훨씬 매력적”이라고 밝혔다.

이승희 회원도 직물회화에 매료돼 고운물빛 활동을 하게 된다. 손으로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껴 퀼트·재봉틀 등을 배운 그는 우연히 고운물빛 공방에 들렀다가 서회장의 작품에 매료돼 곧바로 회원으로 등록하고 활동하게 됐다.

올해로 4년 차에 접어든 그는 “전통자수·서양자수 등 하나에만 매달리지 않고 실과 바늘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배울 수 있어 좋다. 직물회화라는 새로운 분야도 접하면서 바느질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단순히 기능적인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고 설명했다.

고운물빛에서의 활동이 단순한 취미생활에 그치지 않고 박물관 전시와 판매 등으로 이어져 회원들의 의욕이 더 커지고 있다. 서 회장과 회원들이 만든 작품은 상주명주박물관에 상설전시되고 있으며 이들은 1~2년마다 회원전도 열고 있다. 이들의 솜씨가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조각보 등을 주문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흔히 손바느질된 물건들을 보면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왠지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평화로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듯한 경험도 할 수 있다. 아마 오랜 기간에 걸쳐 기억저장고에 하나둘 모아두었던 좋은 추억들이 바느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풀려져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학창시절 떨어진 교복의 치맛단이나 단추 등을 꿰매주던 어머니의 모습, 한복을 정성스레 짓던 할머니의 모습 등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그 모습은 사랑의 또다른 표현이었다. 그래서 그 모습은 잊히지 않고 늘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 바느질이 날개를 달았다. 사랑을 엮어주었던 바느질이 예술을 향한 창작활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운물빛같이 직물회화를 시도하는 곳도 있지만 ‘바느질 작가’로 잘 알려진 서옥순씨처럼 바느질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이명미 화가, 구본창 사진작가도 바느질을 작품에 접목해 주목을 받았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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