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것 보여주고 싶어 붓 대신 실·바늘 들었죠”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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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9   |  발행일 2018-02-09 제34면   |  수정 2018-02-09
■ 손바느질 작가 서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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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느질 작가’로 잘 알려진 서옥순씨는 바느질에 매료돼 바느질로 인간형상을 만드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의 뒤로 그가 만든 작품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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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옥순 작가의 작업하는 손을 보니 자연스럽게 마법사의 손이 떠올랐다. 한땀한땀 수놓인 점들이 선이 되고 이것이 다시 면이 되고 더 나아가 입체적 형상이 완성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실과 바늘로 어떻게 저토록 다양하고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신기했다. 대학 졸업 후 주로 서양화를 그려오던 그는 1994년 독일로 유학을 가서 실과 바늘을 손에 쥐게 됐다고 한다. 그것이 인연이 돼 이제 ‘바느질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바느질의 특성상 기능성이 강하다 보니 일반적으로 예술품보다는 공예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순수한 예술작품이다. 서양화로 탄탄히 기반을 다진 그는 붓 대신 실과 바늘이라는 새로운 재료로 그만의 작품을 완성해가고 있다.

“서양화 그리다 한국적소재 찾아 작품 시도
 저고리 문양으로 내 얼굴 바느질 해서 넣어  
 얼굴, 손, 발 부위 넓혀…입체 작품도 시도
 자신의 형상 만들며 나의존재 새롭게 발견
 가족·지인 작업, 추억 더듬어 보며 행복감”

“머리 복잡하고 힘들때마다 실과 바늘 찾아
 어릴적 복주머니 만들고 놀던 기억 떠올라
 바느질은 인간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작업”



▶어떻게 바느질로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요.

“계명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남편과 함께 독일 브라운슈바익 국립조형예술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독일에서도 초창기에는 서양화를 그렸지요. 하지만 교수님이 서양의 것을 답습하는 것보다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언을 하더군요. 문득 예전에 한국에서 제가 실험적으로 했던 작업이 떠올랐습니다. 한지, 청바지 등을 이용한 작업이었지요. 그래서 할머니의 고무신을 가져가서 석고캐스팅을 해 설치작업 등을 했습니다. 결과는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는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한국적인 재료를 찾다가 바느질을 찾았다는 말씀이군요.

“고무신에 이어 한복저고리를 활용한 작품을 시도했습니다. 대형 한복저고리였는데 여기에 문양으로 제 얼굴을 바느질해 넣었습니다. 사실 실크스크린으로 넣고 싶었는데 비용이 비싸서 포기하고 바느질로 얼굴형상을 만든 것이었지요. 1~2개월 꼬박 바느질을 했는데 그때 늘 앞에 흰 캔버스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그 캔버스에 바느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까만 실로 제 얼굴을 만들었습니다.”

▶교수님의 평가는 어떠했는지요.

“이 작품은 더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교수가 직접 대학 갤러리에 한복작품과 캔버스에 바느질한 작품을 모두 전시하도록 해주었습니다. 자화상 작품은 대학의 다른 교수가 마음에 들어서 사갔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돼 바느질과 자화상에 푹 빠졌습니다.”

▶선생님의 첫 바느질 작품이었는데 판매돼 아쉬움은 없었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냥 놔두었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 당시는 학생인 저의 작품을 교수님이 사가는 것 자체가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유학할 때 아이들도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작품을 판매한 돈으로 세탁기를 샀습니다. 유학생활 동안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서 한국에 가져왔습니다. 지금까지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자화상을 바느질하던데서 그 영역을 계속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얼굴을 소재로 하던데서 벗어나 손, 발 등으로 신체부위를 넓혀갔습니다. 대부분 저의 모습이지만 때로는 가족이나 지인의 모습도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지요. 그래서 작품을 만드는 동안 행복합니다. 자화상을 만들 때는 저 자신을 들여다보고 타인을 작업할 때는 그들의 아름다웠던 모습과 그들과의 추억을 더듬어보는 기회를 가집니다. 캔버스에 바느질하는 평면작업에서 입체작품도 시도했습니다. 입체작품이 만들기는 힘들지만 인간의 형상은 물론 저의 생각을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 좋습니다.”

▶자화상을 만들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작가이자 아내이고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보니 바쁠 수밖에 없고 저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잘 없습니다. 하지만 작업하는 동안, 특히 저의 형상을 만들어가면서 저의 존재를 새롭게 발견해 갑니다. 바늘과 실로 한땀한땀 선을 만들고 형상을 만들어가면서 기억 속 제 모습과 현재의 제 모습을 엮어 나만의 존재를 찾아갑니다.”

▶최근작 중에 특히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미지와 질료-몽상’이란 작품입니다. 이 역시 저의 모습을 담은 것입니다. 저는 프랑스의 사상가 가스통 바슐라르의 저서 ‘촛불의 미학’에 매료돼 몇번이나 읽었습니다. 촛불의 이미지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촛불은 자신을 태워서 세상을 밝혀주잖아요. 사람 역시 에너지를 소모해가며 성취를 하고 이것이 우리 세상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지요. 촛불은 무언가를 꿈꾸게 하는 힘도 있습니다. 촛불 속에서 상상을 하고 자신의 삶을 성찰도 하지요. 나이가 들수록 상상과 꿈을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작품 활동을 통해 무언가를 꿈꾸고 행복해하며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열정도 다져나갑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이고 싶습니다.”

▶바느질을 통해 마음의 평화도 얻는다고 했습니다.

“머리가 복잡하고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무조건 실과 바늘을 잡습니다. 수없이 반복되는,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손놀림 속에서 잡다한 생각들로 가득했던 머리가 비워지고 이런저런 일들로 들썩였던 마음도 평화를 찾아갑니다. 또 어릴 때 할머니 생각도 많이 합니다. 할머니와 함께 알록달록한 천으로 복주머니를 만들고 놀던 기억 등을 떠올리면 우울했던 기분이 사라집니다.”

▶10여년간 유학생활을 했으면 한국에서 처음 활동할 때 어려움이 컸을 것 같습니다.

“1994년 독일로 떠나서 2004년 9월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독일에서도 어렵게 학업을 이어갔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완전히 제로상태에서 시작했지요. 생활비를 벌어가면서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한번은 모 화랑에서 서울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제 작품 2점을 들고 갔는데 작품만 보내고 차비가 없어서 전시장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몇년전 지역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했는데 한 원로작가분이 제 작업을 보시고는 ‘한이 느껴진다’고 했답니다.”

▶작업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을 듯 합니다.

“사실 작업을 그만둘 생각도 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강의, 과외, 인테리어 등을 밤늦게까지 하면서 작업하는 게 무리였으니까요. 하지만 작품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그만두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어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잘 한 일입니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지만 이제는 서옥순이라는 작가의 이름 정도는 알아주니까요. 그게 제 보람이고 힘들지만 작업을 이어가는 동력입니다. 제 작업은 바느질을 이용해 실험적이긴 하지만 인간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작업입니다. 이런 작업을 힘 닿는 데까지 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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