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맹의 철학편지] 신자유주의는 자유방임이 아니라 ‘유효한 경쟁’에 기초해, 너희 젊은이들이 더 경험하고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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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09   |  발행일 2018-02-09 제39면   |  수정 2019-03-20
20180209

파업을 한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수억원에서 수백억원까지 손해배상소송을 하거나 어마어마한 배상 판결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에 대한 뉴스를 들은 적이 있을 거야. 하지만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권 위에 법률이 ‘경영권 보호’라는 이름의 핵폭탄을 터트리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 이건 아예 노동조합을 만들지 말거나 노사쟁의는 꿈도 꾸지 말라는 얘기가 아닐까? 태형아, 소유권이 노동권을 깡그리 짓밟아버리는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징표라고 나는 생각해.

철학자 미셸 푸코(1926~84)는 1978~79년 강의록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어. “경제는 국가를 위해 정당성을 생산하며 국가는 이 경제의 보증인이다. 달리 말하면, 경제가 공법(公法)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확산되던 당시 이미 푸코는 경제적인 것이 정치적 주권을 생산하고 침식한다고 기술해. 그런데 이 말의 핵심은 신자유주의적 통치가 그 이전의 통치권력과 어떻게 달라진 것인가 하는 점일 거야.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를 19∼20세기 초반의 이념적 자유주의가 리모델링하여 다시 나타난 새로운 자유주의쯤으로 오해해. 국가나 사회의 간섭이 없는 그 어떤 상태로서의 자유주의. 그러나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러한 상태는 이념적 상태일 뿐이야. 유감스러운 사실은 이 신자유주의는 사람들의 상식적 믿음과는 다르게 국가에 의한 개입주의에 기초한다는 것이지. 이 국가는 경제 과정 자체에 대한 개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이고 제도적인 개입을 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이 국가는 이전의 국가 권력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간단하게 20세기 전반의 케인스주의 정책과 비교한다면, 케인스주의에서 국가는 경제에 비교적 자율적으로 움직였고 경제 과정 자체에도 직접적 개입을 하면서 복지국가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어. 케인스주의의 핵심 중 하나인 ‘금융 억압’도 국가 권력의 경제 권력에 대한 자율성에 기초한 것이었고. 그런데 197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국가 권력에 의한 정치의 자율성은 침식되고 국가에 의한 법적·제도적 개입은 세계적 금융 자본으로서의 경제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버려. 우리나라의 경우엔 삼성이 그 경제 권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내 생각에 삼성은 경제 권력의 대표적 기표에 불과해. 몇몇 사람들에 의해, 몇몇 기업들에 의해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야.

태형아, 우리가 어떠한 공부를 하든지 갖추어야 할 기본적 요건으로 역사 의식, 과학적 태도, 삶에 대한 직관,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역사를 모르면 모호해지고, 과학이 없으면 애매해지고, 직관이 없으면 흐릿해지고, 행동이 없으면 모든 것이 캄캄해질 거야.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사고하고 행동해야 할까? 다시 푸코로 돌아가 보자. 푸코는 권력을 세 개의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해. 주권적·규율적·생명 권력. 푸코는 흥미롭게 이 유형들을 이렇게 설명해. 주권적 권력은 삶과 죽음에 대한 주권자의 권한이 ‘죽게 만들거나 살게 내버려두는’ 권한이라면, 생명 권력은 그 권한이 ‘살게 만들거나 죽게 내버려두는’ 권한이라는 것. 주권적이고 규율적 권력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보았듯이 예속적 주체인 피지배자들로부터 재산, 용역, 노동, 피, 그리고 목숨을 강제로 빼앗아 올 수 있는 권한이라고 할 수 있겠지.

반면 신자유주의 생명 권력은 주권적 권력이나 규율적 권력처럼 체제 순종적 주체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야. 그것은 시장원리의 내면화를 통해 자기 스스로를 경영의 주체로 만들지. 만일 그가 그런 주체 형성 모델에 적응할 수 없다면 가차 없이 사회 바깥으로 던져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이고 사회라는 것이야. 하이에크(1899~1992)는 “신자유주의가 결코 고전적 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방임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다만 ‘유효한 경쟁’에 기초한다”고 말하고 있어. 이 경쟁이 어떠한 것인지는 아마도 태형이 너와 같은 젊은이들이 더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분명한 것은 대통령, 국회의원 혹은 몇몇의 재벌 총수가 바뀐다고 해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일 거야.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새롭게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을 행동해야 할까? 오늘도 질문으로 끝을 맺어야겠구나. 생명 권력에 대한 설명과 고민은 나중에 생명과학을 이야기하면서 좀더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푸코에 대한 책은 너무 많아 어떤 책을 권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그래도 좀 더 쉽게 읽히는 책을 한 권 소개하마. 일본 소장 철학자 사토 요시유키의 ‘신자유주의와 권력’(후마니타스 刊). 푸코, 들뢰즈, 데리다, 알튀세르에 대한 그의 다른 책 ‘권력과 저항’(난장 刊)도 권하고 싶은 책 중의 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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